[함께 살아가는 말 132] 풀물

 


  가게에서 ‘양송이 스프’를 사다가 끓입니다. 퍽 어릴 적에 먹던 일이 떠올라, 나도 한 번 집에서 가루를 풀어 천천히 끓이고는 밥상에 올립니다. 서양사람은 스프를 먹으니 ‘양송이 스프’라는 이름이 적힐 텐데, 서양사람이 한겨레 ‘죽’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는다면, 그 가게에서는 서양사람한테 어떤 말로 죽을 말할는지 살짝 궁금합니다. 서양사람은 ‘죽’을 서양말(영어)로 옮겨서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zuk’이나 ‘juk’이라 적으며 가리킬까요. 다섯 가지 푸성귀를 가루로 내어 찻물처럼 마신다는 ‘야채 스프’를 마십니다. ‘야채 스프’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야채(野菜)’는 일본 한자말이고, ‘스프/수프(soup)’는 영어일 텐데, 일본에서 먼저 이런 풀물을 마신 뒤, 한국에 들어왔나 싶기도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가게에서 파는 ‘양송이 스프’는 ‘양송이 죽’이요, 사람들이 마신다는 ‘야채 스프’란 ‘풀물’입니다. 푸성귀를 달이거나 끓인다는 뜻에서 ‘푸성귀 물’이라 할 수 있어요. 푸른잎 푸성귀나 풀을 갈아 마실 때에 흔히 ‘풀물’이라 할 테니, ‘야채 스프’ 같은 이름은 ‘푸성귀 물’이라 다듬을 때에 어울리겠지요. 몸을 생각하는 먹을거리라 하면, 몸을 살리며 마음 살리는 흐름을 살펴, 마음을 생각하는 말을 한 번쯤 짚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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