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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95
임윤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9월
평점 :
시와 바다
[시를 말하는 시 13] 임윤,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 책이름 :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 글 : 임윤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11.9.30.)
- 책값 : 8000원
아이들이 남긴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배가 안 고프면 밥자리에서 밥을 덜 먹거나 안 먹지요. 또는 똥을 못 누면 밥을 꺼리거나 미룹니다. 푸지게 똥을 누고 슬슬 배가 고프면, 따로 아이들을 부르지 않아도 밥상 앞에 달라붙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어른이 곁에서 숟가락으로 떠먹이지 않아도 바지런히 수저질을 합니다.
밥을 차리려고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마련합니다.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장만하려고 땅을 얻습니다. 땅을 얻어 찬찬히 일굽니다. 찬찬히 일군 땅에 씨앗을 심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거나 즐기는 씨앗을 잘 갈무리해서 심습니다. 사람이 따로 씨앗을 심지 않아도 스스로 잘 돋는 풀이 있습니다. 냉이나 쑥이나 미나리나 숱한 나물은 씨앗을 안 심어도 스스로 척척 자랍니다. 상추나 시금치는 으레 씨앗을 뿌린다지만, 상추도 시금치도 씨앗 없이 스스로 자랄 때에 한결 맛나며 몸에 맞으리라 느껴요.
.. 도끼로 장작을 쪼개면 / 자작자작 쏟아지는 햇살 .. (자작나무 빗자루)
밥을 차리다가, 밥을 먹다가, 똥을 누다가, 밭을 바라보다가, 풀을 쓰다듬다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구별에 맨 첫 목숨이 태어났을 적에, 맨 첫 목숨은 무엇을 먹으며 살았을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맨 첫 목숨은 짐승이 아니었겠지요. 아니, 짐승이었을 수 있겠지요. 첫 목숨이 풀이었든 짐승이었던 벌레였던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느 목숨이었건, 첫 목숨은 오직 햇살, 바람, 흙, 이렇게 세 가지만 먹었으리라 느껴요. 지구별 첫때에도 물이 있었을까요. 아마, 물이 있었겠지요. 그러면, 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물이 있는 별은 왜 물이 있고, 물이 없는 별은 왜 물이 없을까요.
흙은 또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흙에 물기가 없으면 죽은 흙이라 합니다. 물기 있으며 기름질 때에 온갖 씨앗이 흙에 뿌리를 내려요. 그리고, 물과 흙은 바람을 마시면서 싱그럽게 거듭납니다. 바람을 마시는 물과 흙은 햇살 따사로운 기운을 받아들여 푸르게 빛납니다.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마시기만 하여도 숨결을 푸르게 이었으리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니,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마실 때에는 푸른 숨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바람똥을 누겠지요. 바람을 마시니까요. 풀을 먹는 사람은 풀똥을 누어요.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똥을 누지요. 누구나 먹은 대로 똥을 눕니다. 그래서, 달팽이를 보면 잘 알 만해요. 달팽이는 스스로 먹은 대로 똥빛이 바뀌어요. 사람도 달팽이하고 똑같아서,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먹은 대로 똥빛이 바뀝니다. 그러니까, 맑고 푸른 숨결 깃든 먹을거리로 몸을 채우면, 맑고 푸른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똥을 눕니다.
.. 자동차 조립공장엔 / 디지털시계 빨간 눈알이 깜빡거렸다 / 출렁거리는 컨베이어 속도에 고정된 사내 / 이 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엔진을 / 그의 가슴에도 장착한다 .. (날개 돋친 시간)
생각이 맑은 사람은 스스로 맑은 일을 찾아서 하기에 생각이 맑습니다. 맑은 것을 바라고 찾으며 생각할 때에 온 넋이 맑게 빛납니다. 맑은 이야기를 떠올리고 맑은 웃음을 지을 적에는, 언제나 맑은 말이 샘솟습니다. 맑지 못한 이야기에 휘둘리거나 맑지 않은 사건과 사고와 문명에 휩싸일 적에는 맑지 않은 말마디가 튀어나오겠지요.
글을 쓴다 할 적에는, 맨 먼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맑은 꿈 드리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문학빛 돋보이는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사회고발이나 사회비판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시골 흙내음이 글마다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군사훈련 받는 사람은 군사훈련 총소리 칼소리 글마다 스며듭니다. 까르르 웃고 뒹구는 아이들과 뛰노는 사람은 까르르 웃음소리 글마다 배어나기 마련입니다. 매캐한 배기가스와 시끄러운 소리 가득한 도시에서 자가용 굴리는 사람은 어수선한 도시내음 글마다 가득합니다.
.. 초점 흐린 능선에 쌓이는 초가을 눈밭 / 오래던 그 머리비듬처럼 흩날리는 / 한 장의 기억 / “오마니” .. (김 씨가 함흥으로 돌아가던 날)
임윤 님이 쓴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실천문학사,2011)을 읽습니다. 임윤 님은 스스로 무슨 꿈을 꾸면서 어디에서 삶을 누렸을까요. 임윤 님은 스스로 어떤 숨결 되어 어떤 글을 빚고 싶을까요.
드넓은 바다를 누비었다는 임윤 님은 이녁 글자락에 드넓은 바다내음 얼마나 살포시 담았을까요. 파랗게 빛나는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임윤 님은 이녁 글밭에 무엇을 심었을까요.
바닷물에 뛰어들어요. 바닷물에 온몸을 맡겨 함께 출렁여요. 바닷물 넘실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닷물이 모래밭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요.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뛰어놀아요. 햇볕에 몸을 말리고, 모래밭에 몸을 파묻어요. 바닷소리를 듣고, 바다내음 마셔요. 바다로 드리우는 햇살 먹고, 바다에 깃드는 숱한 이웃을 만나요. 게와 고둥이 내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갈매기와 갯강구가 내 살결에 대고 노래합니다. 4346.2.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