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사진책 읽는 마음

 


  널리 이름난 사진책을 읽으며 즐겁습니다. 거의 아무런 이름 알려지지 않은 사진책 읽으며 즐겁습니다. 널리 이름난 사진책은 그만큼 널리 읽히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거의 아무런 이름 알려지지 않은 사진책은 아직 피어나지 않은 숱한 이야기를 나 스스로 길어올리며 새롭게 마주합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알면 아름다운 사진책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움을 느낄 줄 알면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해설사가 ‘자, 자, 바로 이 그림이 세계 명작입니다!’ 하고 콕 짚으며 알려주어야 ‘우와, 저 그림이 훌륭한 그림이로구나!’ 하고 놀랄 까닭 없어요. 문학평론가가 ‘자, 자, 바로 이 글이 노벨상 탄 작품입니다!’ 하고 콕 짚어 알려주어야 ‘우와, 저 글이 훌륭한 글이로구나!’ 하면서 놀랄 까닭 없지요. 사진평론을 하는 누군가가 ‘자, 자, 바로 이 사진을 보시라니까요!’ 하고 외친대서, 굳이 저 사진을 볼 까닭 없습니다. 내가 찾는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바라거나 즐기려는 사랑스러움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아름다움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사랑스러움은 어떤 틀로 묶어 놓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숲은 조그마한 숲대로 아름답습니다. 너른 숲은 너른 숲대로 아름답습니다. 큼지막하게 뽑아 붙인 사진 한 장은 이러한 사진대로 아름답습니다. 엽서 크기만 한 작은 사진 한 장은 이러한 사진대로 아름답습니다. 이쁜 가시내를 찍은 사진은 이 사진대로 아름답지요. 늙은 할배를 찍은 사진은 이 사진대로 아름답고요.


  아름다움을 느끼려는 사진이기에, 빛이 조금 모자라거나 넘쳐도 돼요. 사랑스러움을 즐기려는 사진인 터라, 살짝 기울어지거나 조금 흔들려도 되지요. 밥물을 맞추어 불을 지필 적에, 쌀알 무게와 물 무게를 낱낱이 따지지 않아요. 즐겁게 먹을 밥을 떠올리면서 손가락과 눈썰미로 물을 맞추어 불을 지핍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풀 적에 밥알 몇 얹어야 한다고 하나하나 세지 않아요. 즐겁게 밥을 퍼서 즐겁게 입에 넣고 즐겁게 냠냠짭짭 씹어요.


  사진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쓰고, 사진기라는 기계는 초점이나 셔터값이나 빛느낌이나 빛값이나 이런저런 숫자와 정보를 살펴야 한다지요. 디지털은 디지털대로 파일을 쓰고 포토샵 같은 풀그림을 쓴다지요. 필름은 필름대로 어느 필름을 쓰려 하는가, 또 필터는 무엇을 끼우려 하는가, 인화와 현상은 어떻게 하려는가, 이것저것 살펴야 한다지요. 기계를 쓰며 찍는 사진이다 보니, 아무래도 ‘기계 다루는 이야기’를 많이 할밖에 없다지요.


  그런데, 셈틀 켜서 글을 쓸 적에도 기계를 다루는 셈이에요. 쌀을 씻어 냄비에 담아 가스렌지에 불을 올릴 적에도 기계를 다루는 셈이에요. 곰곰이 돌아보면, 낫이나 호미 같은 ‘연장’도 ‘기계’인 셈입니다. 퍽 다루기 쉽다 하는 기계일 테지만요.


  사진책 읽는 마음이란, 어느 기계를 얼마만큼 잘 다루거나 썼느냐를 읽으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진책 읽는 마음이란, 사진을 찍은 아무개가 얼마나 즐겁고 사랑스럽게 아름다운 빛을 누리려 했는가를 어깨동무하듯 나누려는 마음입니다. 사진책을 읽으며 이녁 삶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을 내놓은 분은 어떤 마음 되어 사진을 즐겼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저 사진책을 빚은 분은 어떤 마음 가꾸며 사진을 누렸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실컷 즐깁니다. 이 사진책을 즐기고, 저 사진책을 즐깁니다. 한국 사진책을 즐기고, 일본 사진책과 서양 사진책을 즐깁니다. 아시아 사진책을 즐기고, 중남미 사진책을 즐깁니다. 저마다 쓰는 말은 다르다 하더라도, 함께 밝은 빛을 바라보면서, 서로 밝은 그림을 사진 하나로 엮습니다. 사진은 빛이 되고, 그림이 되며,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은 사랑이 되고, 꿈이 되며, 삶이 됩니다. 4346.2.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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