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서럽다 창비시선 311
이대흠 지음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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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은 시골살이를 노래한다
[시를 노래하는 시 42] 이대흠, 《귀가 서럽다》

 


- 책이름 : 귀가 서럽다
- 글 : 이대흠
- 펴낸곳 : 창비 (2010.1.25.)
- 책값 : 7000원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어지러운 온갖 소리들이 살림집으로 스며들어, 아이들이 곱게 잠들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전철 지나가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술에 절디전 사람들 소리, 길에서 손전화로 수다 떠는 소리, 장사꾼 짐차 몰며 지나가는 소리, 집집마다 돌며 물건 팔거나 교회 나오라고 알리는 소리, …….


  시골로 옮겨 살아가는 오늘, 온갖 자질구레한 소리에서 홀가분합니다. 다만, 시골에서도 장사꾼 짐차는 지나갑니다. 때때로 순천부터 고흥 두멧시골까지 찾아와 교회 나오라 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새벽 울리는 마을방송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도 방송이 흐르지만, 옆마을에서도 방송이 흐릅니다. 마을마다 같은 이야기를 알릴 때면, 여러 마을 방송소리가 메아리처럼 겹쳐서 울립니다. 마을에 자가용 모는 분은 없지만, 집집마다 경운기는 있기에, 경운기 탈탈탈 지나가는 소리가 있어요.


..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 알 수가 없다 / 비가 온다는 말은 /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  (비가 오신다)


  바람이 붑니다. 봄에는 살랑살랑 보드랍게 불고, 여름에는 때때로 모진 비와 함께 세차게 불다가, 가을에는 산들산들 따사롭게 불며, 겨울에는 시리디시리게 불다가도 확 풀리며 포근하게도 붑니다.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를 가르는 멧새와 들새 날갯짓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바람 사이사이 묻는 풀내음과 나무내음을 맡습니다. 봄철에는 바람을 타고 흐르는 풀벌레 노랫소리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풀벌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에는 새로운 풀내음과 새삼스러운 물내음이 묻어납니다. 봄에 처마에 둥지를 고치며 알을 낳는 제비들은 놀라운 노랫소리와 앙증맞은 똥내음을 들려줍니다. 저마다 싱그러운 소리요 산뜻한 내음입니다. 모두 푸른 소리요 맑은 내음입니다.


.. 처음 밥 짓기 시작했던 건 여덟살 때 / 어머니 논일 가시면 가마솥에 밥 안치고 / 가래나무로 불을 때면 싸게 인 불이 화르릉 타오르고 / 넘는 불 부지깽이로 다독이다보면 / 솥뚜껑 아래로 주르륵 흐르던 눈물 / 색도 희멀건 그 밥물을 왜 눈물이라 했을까 ..  (낯익은 빗방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이 복닥복닥 떠들면서 놉니다. 참새마냥 쉬잖고 조잘거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조금도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마루를 달리고 부엌을 달리며 마당을 달립니다.


  작은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똥을 푸지게 누고는 감알이랑 밥을 배불리 먹고선, 어머니 곁에서 꺅꺅거리다가 스르르 잠듭니다. 일찍 일어난 만큼 일찍 낮잠에 빠져듭니다. 너는 참 재미난 아이로구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마려우면 누고. 그래, 그렇게 놀고 뒹굴면서 하루하루 크겠지.


  큰아이는 밥상맡에서 자꾸 만화책을 넘깁니다. 스스로 밥을 떠먹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들어 네 식구 되고부터 큰아이가 스스로 밥떠먹기를 게을리(?)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생 밥을 늘 떠서 먹이니, 저도 떠먹이는 밥을 먹고 싶은 눈치입니다. 큰아이더러 네 나이 몇 살인데 아기처럼 떠먹이기를 바라느냐고 다그쳐도 떠먹여 주면 아주 좋아해요. 그래, 네 동생이 스스로 떠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너한테도 떠먹여 주마. 앞으로 한두 해 이렇게 하면 그 뒤로는 너는 혼자서 야무지게 밥 잘 먹을 테고, 때로는 아버지 일손을 거들며 밥을 차릴 수도 있을 테니까.


.. 아이, 두 딸을 둔 동생 나는 그네들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돌도 안된 내 아이에게 선물꾸러미를 놓고 가는, 십년 넘은 공직생활 청탁 한번 안 받아 꽉 막혔다는 말 듣는, 감봉이다 감원이다 새치가 반쯤은 박혀버린 ..  (아우)


  아침빨래를 마당에 널었더니 눈발이 날리면서 꽁꽁 얼어붙습니다. 고흥 두멧시골이 제아무리 포근한 겨울살이라 하더라도, 눈발이 흩날릴 적에는 집안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군요. 작은아이가 이불에 똥을 질렀기에 오늘은 이불 한 채를 빨았는데, 이불은 어떻게 말리나 근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잘 말릴 수 있겠지요.  엊그제부터는 밭자락과 논둑에서 풀을 뜯습니다. 이제 막 돋는 광대나물이나 봄까지꽃이나 별꽃을 뜯습니다. 냉이도 캐고 씀바귀도 캡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을 부르는 봄풀을 뜯어 흙을 헹군 뒤 냠냠짭짭 먹으면, 겨울내음과 봄맛이 얼크러집니다. 쌉쌉한 맛에는 푸른 이야기가 감돕니다.


  바람을 헤치며 면소재지로 자전거를 달리곤 합니다. 우체국에 들러야 하거나 가게에 가야 하거나 면사무소로 가야 할 적에는 자전거를 몹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쐬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맞습니다. 여름에는 비오는 날에도 신나게 달리고, 겨울에는 눈발을 먹으며 달립니다. 여름에는 제비들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달리고, 겨울에는 들고양이 논 한복판에서 해바라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달립니다. 여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가 자전거를 북돋우고, 겨울에는 휭휭 매서운 칼바람이 자전거를 살찌웁니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는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자전거수레가 지나갈 만한 넉넉한 거님길이 없고, 찻길로 자전거수레를 끌면 자동차 소리 너무 시끄러우면서 자동차 배기가스 끔찍하게 매캐해요.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자전거를 달릴 만하지만, 한갓지거나 느긋하게 달리기 힘듭니다. 다리쉼을 할 만한 자리가 없고, 둘러볼 만큼 어여쁜 숲이나 나무나 들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논둑길도 달리고 밭둑길도 달립니다. 때로는 숲길을 달리고, 어느 때에는 고갯길을 넘습니다. 바닷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바다내음을 맡습니다. 자동차 거의 없는 찻길에서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자동차 찾아볼 수 없는 시골길에서 아버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끕니다.


  시골은 온통 노래로구나 싶습니다. 옛사람은 일하면서 노래를 불렀지요. 모를 심고 풀을 뜯고 길쌈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지요. 빨래를 하고 젖을 물리며 밥을 짓는 동안 노래를 불렀어요.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며 방아를 찧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하며 이런 노래를 부르고, 저런 놀이를 하며 저런 노래를 불렀어요.


  오늘날은 시골에도 집집마다 텔레비전 있어, 노래를 부르며 일하거나 놀기보다는 연속극에 눈과 마음이 사로잡히면서 노래를 잊는다 할 텐데, 그래도 시골에는 노래가 있습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요. 바람과 함께 노래를 불러요. 구름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별이랑 달이랑 노래를 불러요.


.. 기사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 어칳게 그런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 저번챀에도 / 내가 모셔다드렸는디 ..  (아름다운 위반)


  이대흠 님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2010)를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내 귀는 날마다 새롭고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반가운 소리에 귀가 숨쉬고, 즐거운 노래에 귀가 빛납니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쁘게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 노래하는 소리를 즐기며 홀가분하게 설거지를 하고 비질을 하며 빨래를 합니다.


  큰아이를 불러 옷가지를 갭니다. 작은아이를 불러 들마실을 갑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살이를 누리면서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도시사람은 어떤 도시살이를 누리면서 어떤 도시노래를 부르나요. 도시사람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어떤 사랑을 속삭이나요.


  귀가 서럽지 않을 노래를 부르는 도시사람이 그립습니다. 눈이 서럽지 않을 이야기를 빚는 도시사람을 기다립니다. 마음이 서럽지 않을 빛을 길어올리는 도시사람 어딘가에 틀림없이 푸르게 웃음꽃 나누면서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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