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27] 짐시렁
순천 기차역에서 기차표 한 장 끊습니다. 기차에 올라탄 다음 내 커다란 짐을 시렁에 올려놓습니다. 시렁이 조금 더 넓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떨어지지는 않겠지요. 책 몇 권과 물과 먹을거리 담은 작은 가방은 발밑에 둡니다. 기차가 슬슬 움직이고, 안내방송이 흐릅니다. “선반에 올려놓은 물건은 ……”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려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그래, 모두들 ‘선반(懸盤)’이라고만 말하는구나. 하기는, 버스에서든 기차에서든 비행기에서든 배에서든 모두 ‘물건(物件)’이나 ‘화물(貨物)’이라고만 말하지, ‘짐’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짐칸’이라 하는 사람보다 ‘화물칸’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고, ‘짐차’라 하는 사람보다 ‘화물차’라 말하는 사람이 많으며, 그냥 ‘트럭(truck)’이라고까지 하지요. 짐을 올려서 ‘짐시렁’일 텐데, 이런 낱말을 쓸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만, 책을 얹는 ‘책시렁’ 같은 낱말은 더러 쓰는구나 싶어요. ‘옷시렁’이나 ‘이불시렁’이나 ‘그릇시렁’ 같은 낱말 쓸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부엌에서 그릇 물기 빼려고 놓는 것은 ‘살강’인데,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으레 ‘식기건조대(食器乾燥臺)’ 같은 메마른 낱말만 씁니다. 434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