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그림

 


  2001년 어느 날, 국어사전 만드는 출판사 일터. 내 일동무이자 오랜 고향동무가 그림책 하나를 보더니 “야, 여기 좀 봐. 자전거 이상하지 않니?” 하고 묻는다. “응? 뭐가?” “야, 자전거가 이렇게 생기면 안 굴러가잖아.” 그무렵 내 고향동무는 자전거 타기에 흠뻑 빠져 지냈다. “음, 그래? 그런가?” “잘 보라구. 체인이 이렇게 달리면 굴러갈 수 없어. 또 페달만 이렇게 붕 뜬 채 있으면, 어떻게 서겠니? 야, (그림책에 나오는) 얘가 삐삐냐?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게?”


  나는 신문배달을 자전거를 타고 했는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똑똑히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그저 그림이 예쁘장하네 하고만 생각했다. 나도 고향동무 못지않게 자전거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자주 타는데, 어떻게 나는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이 엉터리인 줄 못 깨달았을까. 자전거 그림 엉터리로 나온 그림책은 내가 그무렵 일하던 한솥밥 출판사이다. 출판사 이름과 자리는 다르지만, 한 출판사이다. 그래서 그림책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그 그림책 편집한 이한테 ‘자전거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십 분쯤 이야기하는데, 그 그림이 뭐가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나중에는 그 출판사 일터로 찾아가서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를 하고, 마당에 선 자전거를 보라 하면서 알려주지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그림이 잘못되었어도 고칠 생각이 없다는 소리이다. 이리하여, 그 그림책은 열 해가 넘는 동안 ‘엉터리 자전거 그림’이 실린 채 아이들이 들여다본다.


  그림책 작가는 왜 자전거를 엉터리로 그릴까? 너무 쉽고 마땅한 이야기인데, 그림책 작가 스스로 자전거를 안 타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더러 타더라도, 자전거를 그리면서 ‘자전거를 곰곰이 들여다보고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속에 또렷이 아로새기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그림책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가 자전거를 안 탄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에 담으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을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 자전거를 잘 안 타니까, 자전거 그림이 잘못 나오거나 잘 나오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나무 그림이나 꽃 그림이 얼마나 나무답거나 꽃다운가를 깨닫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며 살피지도 못한다. 새 한 마리 벌레 한 마리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고운 삶벗이요 이웃인 줄 깨닫지 못한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 그림 그리는 솜씨는 무척 발돋움했다. 한국 그림책 편집자들 편집 솜씨는 매우 나아졌다. 그러나, 그림 하나에 담고 그림책 한 권에 싣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매무새는 한참 멀구나 싶다. 예쁘장하게 그려서 그림책이 되지 않는걸. 그럴듯하게 그린대서 그림책이 그럴듯해지지는 않는걸.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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