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는 행복해
김양수 지음 / 링거스그룹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13

 


즐겁게 놀던 아이가 예쁜 어른 된다
― 시우는 행복해
 김양수 글·그림
 링거스 펴냄,2011.5.9./12000원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잘 노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으며 함께 살아가자니, 또 몸이랑 마음이 힘든 옆지기하고 지내자니, 어떻게 보면, 놀이라 할 놀이를 못 누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이를 실컷 누리지 못한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집일이 많고 집살림에 바쁘다뿐, 어른인 나는 어릴 적하고 사뭇 다른 놀이를 누린다고 해야 하는구나 싶어요. 밥짓기는 새삼스러운 놀이가 됩니다. 빨래하기도 새로운 놀이가 됩니다. 비질이나 걸레질도 남다른 놀이가 됩니다. 가만히 따지면, 어떤 일이든 모두 놀이로 여길 만합니다. 놀이가 아닌 일이 없고, 놀이처럼 즐기지 않을 만한 일이 없어요.


  밤에 오줌 누러 마당으로 내려와 달바라기를 해도 놀이입니다. 아이들과 마을 한 바퀴 천천히 거닐며 별바라기를 해도 놀이입니다. 평상에 앉아 구름바라기를 해도 놀이입니다. 곧 찾아올 봄에 들풀 뜯어 먹어도 놀이입니다.


- 나중에 시우가 많이 컸을 때 이처럼 아빠가 널 위한 만화를 그렸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10쪽)

 


  살아서 움직일 때에는 모두 일이면서 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논다 하면, 아이들 놀이는 모두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놀이가 일이니까요. 잘 놀던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다 마른 빨래를 갤 적에 아이 몫으로 여러 점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비질을 할 적에 빗자루를 나를 수 있고, 겨울날 방바닥에 까는 담요를 털 적에도 아이가 영차영차 나를 수 있습니다.


  밥상에 수저 올리는 아이는, 수저 올리기가 심부름이자 일이요 놀이가 됩니다. 어린 동생 작은 숟가락에 밥을 떠서 먹이는 큰아이는, 밥먹이기가 일이면서 놀이가 됩니다. 아니, 놀이이면서 일이 될 테지요.


  작은아이를 재우려고 웃옷 한 벌 벗긴 다음 잠자리에 팔베개로 누이고는 한 시간 남짓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잘 낌새 없이 노닥거립니다. 큰아이가 글씨쓰기 놀이를 이럭저럭 마칠 무렵, 큰아이더러 불을 끄라 이야기합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시골집 불을 씩씩하게 끕니다. 깜깜한 밤이어도 혼자 대청마루 오줌그릇에 쉬를 눌 줄 알고, 부엌에 있는 물을 스스로 챙겨 마실 줄 압니다. 깜깜한 방에서 넘어지지 않고 제 잠자리로 잘 찾아듭니다. 오른손으로는 작은아이를 팔베개 하고 왼손으로는 큰아이를 다독이면서 재웁니다. 내가 먼저 까무룩 곯아떨어질까 싶기도 하다가, 두 아이를 먼저 재우고 나도 스르르 잠듭니다.


  두 아이 잠든 모습을 느끼며 한숨을 돌리다가 문득, 작은아이 아직 안 태어나고 큰아이 하나만 돌보던 지난날에는, 이렇게 자장노래를 오래오래 부르며 큰아이와 노닥거린 일이 드물었다고 깨닫습니다. 그래도 큰아이는 제 어버이를 믿고 스스로 잘 놀고 혼자 대견하게 자라는구나 싶어요.

 


- 시우가 조금씩 TV에 나오는 가수들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난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남들 앞에선 한 번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의 심리. 물론 시우가 내 맘 같지는 않다. (62쪽)


  내 어린 나날을 돌아보면, 온통 놀이입니다.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놉니다. 마음속으로 온갖 이야기를 꾸며서 놉니다. 만화책 《유리가면》 49권을 보면, 주인공 마야가 어릴 적에 연극놀이를 아주 즐겼다고 나오는데, 《유리가면》 마야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어릴 적에는 좁다란 골목길을 널따란 우주로 여기고, 낮은 뒷동산을 드넓은 들판으로 여기며 놀았지 싶어요.


  놀이 아닌 일이 없습니다. 놀이 아닌 심부름이 없습니다. 여기에, 노래가 끊이지 않아요. 동무들끼리 노래를 끝없이 부릅니다. 혼자서도 노래를 자꾸자꾸 부릅니다.


  무슨 노래를 그렇게 많이 불렀을까요. 무슨 놀이를 그렇게 하루 내내 즐겼을까요. 학원도 놀이방도 방과후학교도 뭣도 없었지만, 동무들끼리 놀든 혼자서 놀든, 하루 내내 수많은 놀이가 넘나듭니다. 나뭇가지 하나로도 놀고, 나뭇잎 하나로도 놉니다. 종이 한 장으로도 놀고, 연필 한 자루로도 놉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손가락으로도 놀고, 가만히 드러누워서도 놉니다.


  오늘 밤 비로소 한 가지 새로 알아차립니다. 내가 어릴 적에 참말 개구쟁이답게 뛰놀았기에, 두 아이랑 옆지기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내가 어릴 적에 늘 신나게 놀았기에, 우리 집 두 아이가 날마다 신나게 놀기를 바라고, 앞으로 열 살이 되건 열 몇 살이 되건, 흐드러지는 놀이잔치와 같은 하루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시우는 고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부모로서는 먹여야만 한다. 시우,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아빠, 그런데 이거 무슨 고기야?” “소고기.” “그럼 소가 먹는 고기잖아? 사람한테 주면 어떡해?” “뭐래는 거야?” (104쪽)


  김양수 님 만화책 《시우는 행복해》(링거스,2011)를 읽습니다. 김양수 님 집안에 아이가 찾아온 뒤 겪는 여러 이야기를 재미나게 그립니다. 예쁜 그림결로 예쁜 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 즐겁지요. 아이하고 노는 하루란 참 즐겁지요. 아이가 하는 말도 재미나고, 아이한테 들려줄 말도 재미납니다.


  그런데, 만화책 《시우는 행복해》에 나오는 시우가 얼마나 즐거운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우는 시우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갈 테지만, 고작 너덧 살 예닐곱 살 일고여덟 살에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많이 봅니다. 이 아이 시우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합니다. 아이 아버지인 만화쟁이 김양수 님은 집안일을 하지 않습니다. 김양수 님은 돈벌이를 하느라 아이하고 더 오래 더 느긋하게 더 재미나게 몸을 섞어 뛰놀지 못합니다.


  김양수 님도 어릴 적에는 개구쟁이 되어 뛰놀지 않았을까요. 아니, 제대로 논 일은 없었는가요. 텔레비전을 왜 아이하고 함께 보는지 생각할 줄 아는 어버이이기를 빌어요. 왜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 연속극을 보아야 할까요. 열 살도 열다섯 살도 아닌 너덧 살 예닐곱 살 일고여덟 살 아이한테 연속극을 보여줄 만한가요.


  아이들이 고기를 굳이 먹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아이가 풀을 안 먹으려 하고 과자나 소시지 맛에만 길들여지면 걱정입니다. 아이 몸을 살찌우는 영양소는 어떻게 얻는가를 슬기롭게 살펴야지요. 무턱대고 고기만 먹인다고 될 일이 아니요, 고기를 먹이려 하면 어떤 고기를 어떻게 먹여야 즐거운가를 헤아려야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모두 다 어쩔 수 없는’지 모를 테지만, 시우 또한 나무나 풀이나 꽃하고 사귀는 이야기를 《시우는 행복해》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우를 낳아 돌보면서 기저귀를 갈거나 씻기거나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지어 차려 먹이거나 하는 ‘아주 자잘하고 수수한’ 삶에서 우러나는 웃음꽃은 이 만화에 그닥 드러나지 않습니다.


  집안일 안 하는 아버지가 바라보는 ‘아이 육아일기’는 너무 뻔하달까요. 여러모로 겉돈달까요. 가슴속으로 따사로이 스며들어 사랑스레 어루만지는 꿈이 드러나지 못한달까요.


  즐겁게 놀던 아이가 예쁜 어른이 돼요. 신나게 뛰고 구르고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놀던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어른이 돼요. 흙과 풀과 나무를 만지면서 놀던 아이들이 믿음직한 어른이 돼요.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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