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알과 책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갈 적에 읍내 버스역에서 내리곤 합니다. 읍내 버스역에서 내리고 보면, 이웃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광주나 순천이나 서울로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때때로 만납니다. 이분들, 곧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맨몸으로 도시로 가는 일이 없습니다. 상자나 보따리나 꾸러미가 참 큽니다. 시골에서 살며 당신이 일군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서 버스 짐칸에 싣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아주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가 커다란 상자 셋을 버스 짐칸에 싣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니, 이 할머니는 저 상자들을 어떻게 버스역까지 싣고 오셨담? 작은 수레에 상자를 싣고 시골 버스역 앞까지 날랐을 테고, 군내버스 일꾼이 버스에 실어 주었을 테며, 이곳 읍내 버스역에서도 시외버스 일꾼 손을 빌어 짐칸에 실으시겠지. 도시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에는 또 여러 사람 손길을 빌어 택시 타는 데까지 가실 테고.


  시골에서 살아가고 보니, 시골 살다 도시로 나들이 가는 할머니들 마음을 알겠습니다. 그래서 나도 도시로 볼일 보러 갈 적에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짊어집니다. 유자도 짊어지고 석류도 짊어지지만, 요즈음은 감알을 짊어집니다. 도시사람은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딸기나 바나나는 사다 먹어도, 감알 사다 먹는 사람은 퍽 드문 듯해요. 봄이고 겨울이고 바나나는 끊이지 않고 먹어대는 도시사람이지만, 막상 가을과 겨울 지나 봄까지 감알 신나게 즐기는 도시사람은 얼마 없다고 느낍니다.


  시골 버스역 언저리에 웅크리고 앉아 감알 파는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쉰 알 한 꾸러미를 장만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가서 기차로 갈아탄 다음 서울에서 내려, 다시 전철로 갈아타 인천으로 갑니다. 내 오랜 단골 헌책방에 닿습니다. 가방에서 감알 천천히 꺼냅니다. 먼길 달리느라 힘들었을 고흥 단감을 헌책방 일꾼이 책 손질을 하는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감빛 참 이쁘고, 곁에 있는 책빛 또한 이쁩니다. 감내음이랑 책내음이 곱게 어우러집니다. 4346.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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