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175 : 다정(多情)


이쯤 되면 다정(多情)은 틀림없는 병이다
《편해문-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2012) 86쪽

 

  한자말 ‘다정’을 쓰고 싶을 때에는 그냥 쓰면 됩니다. 따로 한자를 밝히면서 묶음표에 적지 않아도 됩니다. 이처럼 묶음표를 따로 쳐서 밝혀야 하는 낱말이라면,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인 한편, 한국말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한국사람이 꽤 많이 먹는다고 하는 어느 과자는 ‘情’이라고 하는 한자를 드러내어 씁니다. 한글로 ‘정’이라 쓰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묶음표를 치면서 ‘정(情)’처럼 쓰지도 않아요. 그냥 ‘情’이라고만 씁니다.


  이러한 말씀씀이를 올바로 바라보는 사람이 너무 적은데, 한글로 안 적고 다른 글로 적는 낱말, 이를테면 한자로 적거나 알파벳으로 적거나 가나로 적는 글은 한국글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닙니다. 바깥말이요 바깥글입니다.


  ‘러브’나 ‘love’는 한국글도 한국말도 아닙니다. ‘마인드’나 ‘mind’는 한국글도 한국말도 아니에요. ‘스토리’나 ‘story’ 또한 한국글도 한국말도 아니지요. 한국말이요 한국글이 되자면, ‘사랑’과 ‘마음’과 ‘이야기’여야 합니다. 곧, ‘다정’이 되든 ‘정’이 되든 한국말이나 한국글이 아닌 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쓸 한국말을 슬기롭게 찾고 생각하며 알아야 할 노릇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다정(多情)’은 “정이 많음. 또는 정분이 두터움”을 뜻한다 합니다. ‘정(情)’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을 뜻한다 합니다. ‘정분(情分)’은 “사귀어서 정이 든 정도”를 뜻한다 합니다. 이 같은 말풀이로는 세 가지 한자말 ‘다정-정-정분’을 헤아리기 힘들지만, 가만히 살피면 ‘마음’을 조금씩 달리 나타내는구나 하고 짚을 만합니다.

 

 다정(多情)은 틀림없는 병이다
→ 따순 마음은 틀림없이 병이다
→ 따순 손길은 틀림없이 병이다
→ 따스함은 틀림없이 병이다
→ 살가운 마음은 틀림없이 병이다
→ 살가움은 틀림없이 병이다
 …

 

  한국말은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은 한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아오며 이웃과 나누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한겨레 삶빛이 드러나고, 한겨레 삶무늬가 나타나며, 한겨레 삶사랑이 샘솟는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은 “빙그레 웃다”요 “싱긋 웃다”이며 “방실방실 웃다”입니다. 빙글빙글 웃기도 하고, 싱긋빙긋 웃기도 하며, 빙긋빙긋 웃기도 합니다. 웃음을 나타내거나 가리키는 낱말은 끝이 없어요. 사람마다 다 달리 나타내고, 때와 자리에 따라 늘 다르게 보여줍니다.


  우리 마음은 언제나 다릅니다. 언제나 다른 마음이라서 “따순 마음”일 때가 있고 “따스한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기도 하며 “따사로운 마음”이기도 해요. “뜨뜻한 마음”이라든지 “뜨거운 마음”일 때가 있을 테고, “보드라운 마음”이거나 “포근한 마음”일 때가 있어요.


  한자말이자 바깥말인 ‘다정-정-정분’하고 1:1로 맞춤할 만한 한국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따스함-따뜻함-따숨-따사로움-뜨거움-포근함’ 같은 한국말하고 1:1로 맞춤할 만한 한자말이나 바깥말 또한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자리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누던 말인 만큼 1:1로 맞출 수 없어요.


  따스한 마음은 ‘살갑다’ 할 수 있습니다. 살가운 마음은 ‘사랑스럽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은 ‘넉넉하다’ 할 수 있어요. 넉넉한 마음은 또 무엇이라 할 만할까요.


  생각을 해 봐요. 생각을 차근차근 이어 봐요. 마음을 헤아려 보셔요. “정을 나눈다”고 하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생각을 해 봐요. “마음을 나눈다”고 말한다면, 이때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가 생각을 해 봐요. “따스함을 나눈다”라든지 “넉넉함을 나눈다”라든지 “사랑을 나눈다”라든지, 이런 한국말을 ‘정’이나 ‘다정’이나 ‘정분’이라는 한자말이나 바깥말로는 가리키지 못할 테지요.


  마음을 기울일 때에 알맞게 쓸 말을 찾습니다. 마음을 쏟으면서 내 뜻 알뜰살뜰 꽃피울 말을 깨닫습니다. 한국말 ‘마음’과 ‘사랑’은 뜻도 테두리도 쓰임새도 넓이도 깊이도 끝이 없는 아름다운 낱말입니다. 4346.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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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따순 마음은 틀림없이 병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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