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205

 


새로운 아름다움
―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옮김
 이봄 펴냄,2012.12.15./11500원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사람들 살림집 둘레에 공장 있는 모습을 아주 끔찍하게 떠올립니다. 공장 굴뚝은 사람들 살림집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위로 솟은 굴뚝은 한 해 내내 시커멓거나 새하얀 먼지덩어리를 내뿜습니다. 옆으로 난 구멍은 한 해 내내 시커멓거나 알록달록한 쓰레기물을 내놓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징그럽고, 코로 맡아도 메스껍습니다.


  식품공장, 화학공장, 유리공장, 제철공장 들은 저마다 쉬잖고 먼지와 쓰레기를 흩뿌립니다. 여기에,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원목과 온갖 자재, 공장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길디길게 빼곡히 이어지는 전깃줄과 송전탑, 또 공장을 들락거리는 커다란 짐차, 이래저래 마을사람 숨통을 꽉꽉 죕니다. 그러나, 적잖은 마을사람은 이런 공장에 일거리 얻어 드나드느라, 공장을 나쁘게 말하지 못합니다.


  마을 곁에 공장이 한 군데만 있더라도, 사람들이 마시는 바람이 매우 지저분합니다. 마을 언저리에 공장이 하나만 있더라도, 바깥에 빨래를 널어 해바라기 시키기 어렵습니다. 마을 둘레에 공장이 한 곳만 있더라도, 마을사람 어느 누구도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샘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공장 없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공장에서 컴퓨터도 만들고 손전화도 만들며 소시지도 만듭니다. 공장에서 수백만 마리 닭을 잡아서 비닐봉지에 넣어야, 골골샅샅 가득한 닭집에서 닭고기를 튀겨서 팝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기름을 뽑으며, 돈을 찍습니다. 공장에서 옷 만들 천을 짜며, 화학조미료를 만들고, 술과 담배를 만듭니다.


- “이 나무 좀 봐.” “그냥 마른 나무잖아.” “새싹이 돋았어.” “와, 정말이네.” “잘 보이진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야.” “‘싹이 돋는다’라고 하는구나.” (11쪽)
- “이런 눈 속에.” “응.” “누가 보지 않아도 핀다는 것, 참 싱그러운 느낌이야.” “누가 보지도 않는데.” “응.” (15쪽)


  도시에서는 샘물도 냇물도 우물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땅을 파서 땅밑에서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먼 시골마을을 통째로 물에 가두는 댐을 지어, 물관을 길디길게 이어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넘치는 자동차와 건물과 공장하고는 동떨어진 채, 맑은 바람이 불고 따순 햇살이 곱게 드리우는 시골마을 밀어내고 댐을 지어야, 비로소 도시사람은 이녁 목숨을 살리는 물을 얻습니다.


  전기를 생각해도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발전소를 못 지어요. 도시 한복판에 발전소를 지었다가는 엄청난 전자파 때문에 도시사람이 몽땅 미칠 텐데요. 도시하고 한참 동떨어진 조용하고 정갈한 시골마을 한복판에 발전소를 지어요. 시골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송전탑이 논밭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든 말든, 송전탑이 국립공원 멧기슭 따라 줄줄이 놓이든, 도시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렇게 송전탑 서는지조차 몰라요.


  밥을 생각해도 전기나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도시 한복판에다가 논이나 밭을 일구지 못해요. 어마어마한 자동차물결이 내뿜는 배기가스를 생각해 봐요. 배기가스 먹고 자란 푸성귀나 곡식이나 열매를 누가 먹겠어요. 도시사람 먹는 모든 먹을거리는 도시하고 멀디멀게 떨어진 한갓지며 아름다운 시골에서 거두어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란 사람들 바글바글 모인 삶터라 한다지만, 막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자리입니다. 도시는 스스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거든요. 도시는 스스로 어느 것도 일구지 못하거든요. 도시에서는 물도 바람도 밥도 정갈하며 넉넉히 얻을 자리가 없는걸요.


-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완전히 캄캄해.” “응.” “아, 그렇게 하니 정말로 걷기가 훨씬 편해.” “다행이네.” “네가 안 보여.” “안 보여도 옆에 있어.” (33쪽)
- “세스코, 앞을 봐 봐. 저녁놀이 너무 예뻐! ‘저녁놀’이라는 단어 참 좋지. 이렇게 아름다우니까, 그에 어울리도록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준 것이겠지.” (69쪽)


  도시사람 살리자며 시골마을에 갖가지 위험·위해시설이 들어섭니다.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도시를 먹여살리는 갖가지 위험·위해시설’하고 멀찍이 떨어진 데에 살림집 얻으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집 가까이 공장이 없어야 하고, 찻길하고 떨어져야 하며, 짐승우리가 없어야 합니다. 집 둘레에 송전탑이 안 지나가야 하고, 고속도로나 기찻길이 없어야 합니다. 마을 언저리에 골프장이나 관광단지가 없어야 합니다. 참말, 시골사람은 시골마을에 시골집 건사하기 퍽 힘겹습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 먹여살리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키우는 짐승우리 때문에,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이 파리랑 모기가 득시글득시글해서 얼마나 애먹는가를 하나도 모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 먹여살리는 곡식과 푸성귀를 때깔 좋게 굵직하게 거두어야 한대서 비료와 농약을 얼마나 많이 써대느라, 막상 정갈한 흙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숨이 막히는가를 조금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골사람 가운데 도시사람 탓하는 이는 거의 없어요. 굳이 누구를 나무라지 않아요. 시골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한테 고된 흙일 안 시키려고 일찌감치 당신 딸아들을 모조리 도시로 보냈어요. 어린이와 젊은이가 송두리째 도시로 가면서 시골숲은 조용하고, 시골들은 비료와 농약 냄새로 넘치며, 시골바다는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로 동산이 생깁니다.


  먼지랑 쓰레기하고 살기 싫어서 도시를 떠난 우리 식구들이지만, 정작 시골에 와서도 수많은 쓰레기하고 이웃해야 합니다. 게다가, 시골마을에는 뜻하지 않은 새로운 쓰레기마저 있습니다. 이른바 새마을운동을 벌이던 어느 독재정권 때에, 시골지붕을 온통 슬레트지붕으로 갈아치우면서 ‘아직까지 끔찍하게 이어지는 석면 쓰레기’가 마을마다 넘칩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이며 ‘농촌 소득증대’라는 허울을 내세워 온 시골밭마다 ‘비닐농사’를 짓게 한 나머지, 이 땅을 파든 저 땅을 파든 비닐쓰레기가 줄줄이 나옵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비닐농사 지은 집집마다 비닐 그러모아 태우는 냄새가 온 마을을 가득 채웁니다.


- “우주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건 이 숲속에서도 인간뿐이야 …… 상상력이 없다면 인간다움이 없는 게 아닐까.” (62쪽)
- “숲속에는 무언가 그리운 향기가 있어. 왜일까.” “우리들은 계속 도시에 살았는데 말이지. 그리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봄이 가까워졌어.” “응. 해가 길어졌어.” (65쪽)


  마스다 미리 님 만화책 《주말엔 숲으로》(이봄,2012)를 읽습니다. 주말에 숲으로 가는 발걸음은 아주 즐겁습니다. 도시에서 찌든 먼지를 훌훌 털 수 있어 즐겁습니다. 숲을 이루는 풀과 나무는 도시사람이 내놓는 찌든 먼지를 아낌없이 받아들이며 푸르디푸른 새숨을 베풉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이든, 이런저런 쓰레기물이든, 그런저런 비닐봉지이든, 숲은 너그러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숲은 도시에서 만들어 내놓는 쓰레기를 언제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바다는, 들은, 냇물은, 도시 쓰레기를 언제까지 받아들이며 맑게 걸러내는 구실을 할 수 있을까요. 쓰레기를 푸른빛으로 보듬는 아름다운 숲자락은 앞으로 언제까지 푸른빛을 싱그러이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 “이곳(시골)에 와서 밤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지만, 도쿄의 하늘에도 별은 똑같이 있는 거잖아. 보이지 않아도 사실은 빛나고 있는 거였어.” (83쪽)
- “이 하눌타리의 씨에는 하눌타리나무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 “모양은 이상한데 말이지.” (133쪽)
- “하야카와, 저 새는 뭐야?” “세스코, 저건 참새야.” “아, 네.” “아는 새가 처음 본 새처럼 보이는 건, 새의 아름다움이 보였다는 거야, 분명.” (151쪽)


  별은 시골에도 도시에도 있습니다. 다만, 도시는 하늘이 먼지띠로 꽉 막혀, 마치 별이 없는 듯 느낄 뿐입니다. 도시에는 건물과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은 탓에, 아름다운 숲을 거의 못 느끼거나 못 볼 뿐입니다.


  서로서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아침에는 밝은 햇살이 베푸는 아름다운 노을을 누리고, 낮에는 싱그러이 흐르는 구름이 물들이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누리며, 저녁에는 땅거미 지면서 하나둘 돋는 앙증맞은 별빛을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대학입시로 시달리는 일이 끝나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별바라기를 하며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햇살 먹는 해바라기를 하면서 구리빛 흙빛 얼굴로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두레와 품앗이를 물려받아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기쁨과 웃음을 흐드러지게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경제성장 안 해도 돼요. 경제개발 안 해도 돼요. 수출·수입 안 해도 돼요. 주식투자 사라져도 돼요. 텔레비전 없어도 돼요. 신문·잡지 안 봐도 돼요. 하늘을 보고, 꽃을 보며, 나무를 보면 돼요. 이웃을 보고, 동무를 보며, 살붙이를 보면 돼요. 바다를 보고, 들을 보며, 숲을 보면 돼요. 참다운 나를 보고, 착한 나를 보며, 고운 나를 보면 돼요.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 길어올려요. 4345.12.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2-12-3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성장 안 해도 돼요. 경제개발 안 해도 돼요."
-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경제성장은 그만 하고 그 돈으로 불우한 이웃이나
도와주면 좋겠다고요. 한 쪽에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하는 생각으로요.
스마트폰 같은 과학의 기계도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점점 더 좋은 것이 나오니
세상이 어디로 가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한 반대의 의견도 있으리라 생각되어요.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

숲노래 2012-12-31 02:22   좋아요 0 | URL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참다운 길을 생각할 수 있으면
걱정스럽지 않겠지만,
오늘날 사회는 자꾸자꾸 슬픈 쪽으로 치닫는구나 싶어요.

그래도, 참삶에 눈을 뜨며
슬기롭고 따사롭게 사랑 나눌 사람들이
천천히 늘어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