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책

 


  나중에 긴글 따로 쓸 생각인데, 긴글에 앞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느껴, 두 아이 재운 깊은 밤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꿈을 꾸다가 슬그머니 일어난다.


  적잖은 이들이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라는 책을 읽는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는 이가 드물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이녁 나름대로 ‘책을 꼼꼼히 읽었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책은 꼼꼼히 안 읽어도 된다. 무엇을 밝히는 책인지 찬찬히 아로새겨서 내 삶으로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여 슬기와 넋을 빛낼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면 된다. 그러니까,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읽으면서도, 또 읽고 나서도, 스스로 ‘우리 글 바로쓰기’를 못하는 까닭이라 한다면, 꼼꼼히 줄거리를 살피고 이야기를 좇기는 하지만, 스스로 말삶·글삶·생각삶·사랑삶·일삶·놀이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너무 마땅한데, 말마디와 글줄만 바로쓸 수 없다. 삶을 바로세울 때에 비로소 말과 글을 바로세운다. 지난날 몇몇 독재자가 ‘한글전용’을 외치기는 했으나, 이들 몇몇 독재자가 외친 ‘한글전용’이란 ‘한글로 담는 한국말을 알차게 가다듬어 쓰기’가 아니라, ‘말을 담는 그릇인 글만 한글로 적는 시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아직도 한국사람 스스로 ‘한글’과 ‘우리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가누지 못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이 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쭉 훑으면 ‘책읽기’가 되는 줄 잘못 안다. 이른바 ‘통독’을 한대서 책읽기가 되지 않는다. 통독 여러 차례 한대서 책읽기라 하지 않는다. 한 줄을 읽더라도 알맹이를 짚어 ‘내 것’으로 삼켜야 책읽기가 된다. 한 줄조차 슬기로이 깨닫지 못하고서 한 권을 다 읽는들 무슨 덧없는 짓일까.


  책읽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내 삶에 맞추어 즐길 책읽기이다. 사진찍기나 글쓰기도 이와 같다. 살림하기와 아이키우기도 이와 같다. 훌륭하게 잘 해내야 할 무엇이란 없다. 스스로 사랑을 기울여 즐길 삶만 있다. 책을 내 삶으로 여겨 하나하나 알뜰살뜰 맛난 밥상 차려 먹듯, 슬기로우며 즐겁게 이야기빛을 누릴 노릇이다.


  그러면,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는 어떤 책인가. 아직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똑똑히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섣불리 통독하면 하나도 못 배우는 책이다. 내가 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도 이와 매한가지이지만, 이런 책은 아주 더디 읽어야 한다. 하루에 다섯 쪽 읽어도 많이 읽는 셈이다. 하루에 두어 쪽씩 천천히 읽으며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야 한다. 뒷줄거리 궁금해서 빨리 넘기는 소설책하고 다르다. 지식이나 정보를 다루는 책이 아니니까, 이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천천히 곰삭혀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성경책을 통독한다지만, 정작 성경책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슬기롭게 깨우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경책은 굳이 안 읽어도 된다. 삶을 헤아리도록 도우려는 성경책인 만큼, 내 마음을 읽을 줄 알면 된다. 내 마음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줄 알면 된다. 그러고 나서 내 식구들 마음을 읽고, 내 이웃과 동무 마음을 읽으면 된다.


  이른바 ‘양심’이라고도 하는 내 마음을 읽을 노릇이다. 곧, 나 스스로 ‘내 착한 마음’을 읽고, ‘내 참다운 마음’을 읽으며, ‘내 고운 마음’을 읽으면 된다. 착함과 참다움과 고움은 어디 먼 데에 없다.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읽기를 할 수 있다고 느끼면, 비로소 종이책을 손에 쥐어 ‘다른 이웃이 다른 삶을 일구며 적바림한 다른 이웃 마음’이 알알이 담긴 책이 어떠한 빛인가 하는 대목을 읽으면 된다. ‘마음을 읽는 책’이라고 깨달으면 책읽기가 쉽지만, 마음 아닌 다른 지식조각이나 정보덩어리를 생각한다면 책읽기는 그저 어렵기만 하다.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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