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어떻게 하는가
[말사랑·글꽃·삶빛 41] 삶과 함께 배우는 말

 


  나는 일본사람이 쓴 책을 퍽 많이 읽습니다. 그러나 일본말로 된 책으로는 안 읽어요.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습니다. 얼마 앞서, 일본사람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그리고 한국사람 오경화 님이 옮긴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09)라는 만화책 5권을 읽는데, 150쪽에 “나뭇가지 하나만 쓸게요. 이파리랑, 나무피.”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이 대목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나무피’라는 낱말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나무피’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안 나옵니다. 이 낱말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나무피’라니, 나무에서 피가 나기라도 할까요.


  국어사전에 실리는 낱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무껍질’이고, 하나는 ‘목피(木皮)’입니다. 하나는 한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쓰던 낱말이요, 다른 하나는 이 땅에서 권력을 누리던 이들이 ‘한겨레 말’을 ‘중국 글자’를 빌어 나타내던 낱말이에요.


  우리 집 어린 아이들하고 읽으려고 장만한 그림책 《열 배가 훨씬 더 좋아》(낮은산,2004)는 서양사람 레너드 베스킨 님이 그리고 한국사람 박희원 님이 옮겼습니다. 이 책 12쪽을 읽다가 “산돼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멧돼지 엄미가 가장 튼튼하지.”처럼 나오는 대목을 보고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산돼지’하고 ‘멧돼지’는 서로 다른 돼지가 아니거든요. 한겨레는 예부터 ‘멧돼지’라 일컬었고, 이를 한자 ‘山’을 빌어 ‘산(山)돼지’처럼 적기도 해요. 그러니까, 한겨레는 ‘멧돼지·멧토끼·멧새·멧골·멧나물’이요, 한자를 빌어 ‘산돼지·산토끼·산새·산골·산나물’인 셈입니다.


  창작을 해도 한국말로 합니다. 번역을 해도 한국말로 합니다. 한국사람이 쓴 글을 읽든, 외국사람이 쓴 글을 읽든, 우리들은 한글로 적바림한 한국말을 읽습니다. 곧, 창작을 하는 사람이나 번역을 하는 사람은 한국말을 슬기롭고 똑똑하게 알아야 합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모른다면 한국말을 엉터리로 쓸 테고, 한국말을 똑똑하게 모른다면 한국말을 어리숙하게 쓰겠지요.


  그런데, 말만 익힌대서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나뭇가지’라면 ‘나무껍질’이요 ‘나뭇잎’이고 ‘나무열매’처럼 낱말을 엮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은 말대로 익히면서, 삶은 삶대로 익히고, 문화와 역사와 사회는 문화와 역사와 사회대로 익힐 수 있어야 해요.


  번역 일을 하는 분들이 외국말만 알뜰히 익히면서 한국말은 어설피 익힌다면, ‘한국사람이 읽을 한국글’을 제대로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외국말을 알뜰히 익히면서 언제나 한국말 또한 알뜰히 익혀야 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학생도 ‘영어 공부는 영어 공부대로 알뜰히’ 하면서 ‘한국말 공부는 한국말 공부대로 알뜰히’ 해야 올발라요. 한국말을 알뜰히 익히지 않으면, 정작 ‘영어를 한국말로 제대로 들려주지 못’하거든요. 곧, “외국말 : 한국말 : 외국 문화 : 한국 문화”를 “3 : 3 : 2 : 2”로 익힐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외국말을 익히는 데에 들이는 품만큼 한국말을 슬기롭게 익힐 수 있어야 하고, 외국말에 깃든 외국 문화를 살피는 데에 들이는 품처럼 한국 문화를 살피는 데에도 품을 곱게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번역은 ‘글자 바꾸기’가 아닙니다. 번역은 이웃 문화를 우리 문화로 알려주는 일입니다. 번역은 이웃 삶과 사랑과 이야기를 우리 삶과 사랑과 이야기로 녹여서 나누는 일입니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만큼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게 가르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이에요. 대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영어를 더 잘 배우려고 애쓰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한국말을 더 깊고 넓게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요. 회사원이 된 뒤에도 영어학원을 다니는 분들이 있는데, 회사원이 된 뒤에도 한국말을 슬기롭고 똑똑하게 배우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분은 찾아보기 아주 힘들어요.


  사회가 뒤집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교육이 어긋났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생각이 제자리를 못 잡거나 뿌리를 잃었다고 해야 할까요. 영어를 잘해서 한국문학을 나라밖에 알려야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지 않습니다. 영어만 잘한다 하지만 ‘문학을 모르’고 ‘문화를 모르’면, 한국문학을 영어로 옮기지 못해요. 외국문학을 한국말로 옮기는 이들은 ‘영어만 잘하’기에 번역을 할 수 있지 않아요. 외국나라 문화와 삶과 이야기를 환히 꿰뚫으면서 한국 문화와 삶과 이야기 또한 맑게 보듬을 만한 눈높이일 때에 비로소 번역을 할 수 있어요.


  문학을 하는 분들은 누구보다 한국말을 아름답고 해맑게 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치는 교사와 교수 자리에 서는 분들도 누구보다 한국말을 어여쁘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식인도 전문가도 모두 한국말을 슬기롭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공무원과 회사원도 이와 같아요. 대통령이 될 사람도, 국회의원으로 나설 사람도,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가누는 매무새를 길러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여느 어버이도 한국말을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하게 쓸 줄 아는 어른이어야겠지요. 그래야,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믿음직한 말을 배워요.


  번역이든 통역이든 말입니다. 창작이든 문학이든 보고서이든 서류이든 모두 말이에요. 말로 이루어지는 일이요 삶이며 이야기입니다. 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말을 이루는 바탕이 어떠한가를 깨달을 때에 바야흐로 마음속에서 빛줄기가 샘솟아요.


  국어학자만 배우는 한국말이 아닌 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국어교사만 잘해야 하는 한국말이 아닌 줄 깨닫기를 빌어요. 어떤 전문가나 우리 말글 운동꾼 몇몇 사람만 새롭게 배우거나 가꿀 한국말이 아니라고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국어사전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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