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는 길 (도서관일기 2012.12.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시에서 살아가든 시골에서 살아가든 비닐봉지가 참 많이 나온다. 장바구니와 가방을 챙기며 저잣거리 마실을 다니더라도 비닐봉지 몇 장씩 받을밖에 없고, 택배를 받을 적에도 이웃들은 으레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서 보낸다. 비닐봉지는 잘 펴서 갠다. 까만 비닐봉지는 쓰레기통처럼 쓰고, 조금 큰 비닐봉지는 따로 건사해서, 먼 마실 다닐 적에 식구들 옷가지 담을 때에 쓴다. 속 비치는 비닐봉지는 차곡차곡 모아, 서재도서관에 갈 때에 챙긴다. 서재도서관 책꽂이마다 곰팡이가 올라오기에, 이 곰팡이한테서 책을 지키려고 책을 비닐봉지로 싼다. 따로 어찌저찌 손을 쓰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하자고 생각한다. 우리 서재도서관은 사진책도서관인 만큼, 어느 책보다 먼저 사진책을 비닐로 싼다.
한낮 빛살이 스며든다. 겨울철에는 창문을 닫으면 교실 안쪽이 퍽 따숩다. 유리창은 바람을 막으면서 햇볕이 곱게 들어오도록 해 준다. 아이들은 따순 교실을 이리저리 내달리면서 논다. 두 아이는 서로 술래잡기를 한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다리에 붙으며 숨는다고 애쓴다. 큰아이는 스티커책에서 종이딱지를 하나하나 떼어 손가락에 붙인다. 이러다 문득, 손가락에 붙인 종이딱지가 스티커책에 나오는 그림하고 똑같다고 깨달아, 스티커책에 종이딱지를 옮겨 붙인다.
서재도서관에 깃든 책은 내가 이제껏 살아오며 건사한 책이다. 내가 즐겁게 읽으며 장만한 책이요, 두 번 열 번 백 번 되풀이해서 읽은 책이다. 오늘 내가 이 책을 알뜰히 돌보며 지킨다면,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 책을 누릴 수 있으리라. 종이책이 차츰 줄어들 앞날이 될 테고, 새 도서관이 선다 하더라도 ‘갓 나오는 책’을 두는 흐름으로 갈 뿐, ‘예전에 나온 책’을 새삼스레 그러모으는 몫은 안 한다. 나는 새로 나오는 책도 꾸준히 사서 읽지만, 예전에 나온 책도 바지런히 사서 읽는다. 우리가 읽을 책이란 ‘새로 나오는 책’이 아니라 ‘삶과 사랑이 감도는 이야기가 있는 책’일 테니까.
여느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언제나 ‘새로 나오는 책’만 다룬다. 도서관 일꾼조차 아직 ‘삶과 사랑이 감도는 이야기가 있는 책’을 알려주거나 다루지 못한다. 우리 아이나 이웃한테는 ‘읽을 만한 책’을 알려줄 일은 없다. 읽을 만한 책은 사람들 스스로 찾으면 된다. 책지기 노릇을 하는 사람이 할 몫이란, ‘삶을 밝히는 이야기’와 ‘사랑을 꽃피우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환하게 깨달아, 즐겁고 예쁘게 아이들과 이웃들한테 나누어 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지키자면 책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된다. 곧, 도서관이라는 시설이 따로 없더라도, ‘책에 깃드는 삶’을 사랑하는 매무새 되어 하루하루 스스로 곱게 누린다면, 여느 사람 누구나 책을 지키는 일꾼, ‘책지기’가 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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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