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책읽기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리려고 애쓰면서 멧자락에 구멍을 낸다. 땅밑으로 길을 판다. 섬과 섬 사이에, 섬과 뭍 사이에, 자꾸자꾸 다리를 놓는다. 기계를 띄워 훌훌 날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멍을 파고 땅밑을 파고, 또 무엇을 하면서 ‘길을 반듯하게 펴기’는 하되, 막상 우리 삶자락인 마을과 숲을 파헤친다. 더 빨리 달리기만 하는 동안,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이 어떤 모습이고 빛깔이며 내음인가를 헤아리지 않는다. 길들여진다. 톱니바퀴처럼 되고 말아, ‘내 눈’을 스스로 잃고, ‘내 귀’를 스스로 잊으며, ‘내 코’와 ‘내 마음’과 ‘내 사랑’에다가 ‘내 팔’과 ‘내 다리’까지 송두리째 내버린다.


  걷지 않고서 ‘여행’이 될까. 멈추지 않고서 마실이 될까. 노래하지 않고서 나들이가 될까. 가슴속에서 샘솟는 꿈이 피어날 푸른 숨결 없이 삶이 될까.


  점 둘을 찍고는 금을 죽 그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더 빨리 달리기만 하려는 몸짓은 내 보금자리와 이웃 보금자리를 깡그리 무너뜨린다. 서울과 부산은 점이 아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는 드넓은 마을과 숲과 사람이 있다. ‘고속철도가 지나는 길’이나 ‘송전탑이 놓이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 마을이요 숲이다.


  더 빨리 읽어서 무엇하는가. 더 많이 읽어서 무엇하는가. 더 많이 가져서 무엇하는가. 삶을 읽으려는 책이고, 사랑을 나누려는 삶이며,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아닌가. 4345.1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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