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8. 헌책방 앞 겨울 붕어빵 - 헌책방 작은우리 2012.11.30.

 


  찬바람 부는 날씨가 되면, 서울 불광3동 헌책방 〈작은우리〉 앞에는 붕어빵을 굽고 물고기묵을 뜨끈한 국물에 덥히는 자리가 생깁니다. 봄과 여름 동안 헌책방을 찾는 책손은 뜸하지만,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무르익는 동안, 헌책방 앞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가을을 놓고 책을 읽는 철이라 여기기 때문은 아니요, 겨울이 되어 이불 뒤집어쓰며 읽을 책을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찬바람 부는 철에 붕어빵을 굽고 물고기묵을 덥히기 때문에 사람들 발길이 북적입니다.


  동네사람들이 천 원 이천 원, 때로는 삼천 원 사천 원어치 붕어빵이나 물고기묵을 먹거나 싸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식구들 배를 채우는 기쁨을 헤아립니다. 단돈 얼마로 내 몸과 식구들 몸에 따순 기운이 감돌 수 있습니다. 날이 추울수록 따스한 먹을거리 하나가 그립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헌책방에도 찬바람이 깃듭니다. 차가운 바람이 솔솔 스며들어 책 하나 쥐는 손을 자꾸 비벼야 합니다. 그러나, 내 눈을 틔우고 내 생각을 열어젖히는 살가운 책을 만날 때마다 손이 시나브로 얼어붙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내 눈과 마음은 온통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에 쏠리니, 내 손으로도 내 발로도 내 몸으로도 추위가 아닌 즐거움을 한껏 누립니다.


  동네 아이들이건 동네 어른들이건, ‘헌책방 앞 붕어빵’이라고는 못 느끼곤 합니다. 아마, ‘빵집 옆 붕어빵’이나 ‘족발집 옆 붕어빵’이라고들 느끼리라 봅니다. 찬바람 수그러들어 따순바람 불 적에는 이내 붕어빵을 잊겠지요. 따순바람 불 때에는 다른 먹을거리를 찾거나 길거리 나무마다 새로 트는 잎사귀와 꽃망울에 눈길이 가겠지요.


  따순 기운 도는 붕어빵 하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따순 넋 북돋우는 책 하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김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으로 몸을 움직이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 솔솔 피어나는 책 하나로 마음을 빛내는 꿈을 살찌웁니다. 몸을 튼튼하게 다스리면서 마음 또한 튼튼하게 건사합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돌보면서 몸 또한 예쁘게 가다듬습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나눌 밥을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즐거이 나눌 살가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바쁜 발걸음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바쁜 마음으로는 스스로 즐겁지 못합니다. 바쁜 삶으로는 하루를 빛내지 못합니다. 느긋하며 따사롭고 넉넉하며 포근한 마음밭일 때에 책씨도 꿈씨도 사랑씨도 이야기씨도 자랄 수 있습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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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2-12-07 17: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바쁜 삶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요구하는 이 시대에 느긋하고 따사롭고 여유로운 마음밭을 생각해봅니다..

숲노래 2012-12-08 01:09   좋아요 0 | URL
늘 즐거우며 너그러운 하루 누리셔요

saint236 2012-12-07 20:18   좋아요 0 | URL
흠 저런 곳이 아직 있었군요. 예전에 저기가서 많이 사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숲노래 2012-12-08 01:10   좋아요 0 | URL
헌책방 마실 즐겁게 누리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