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책읽기
집 바깥에서 퍽 오래 돌아다니며 아이가 종이책을 손에 쥔 일이 꼭 한 차례만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본다든지, 이모와 삼촌을 만날 적에는, 굳이 종이책을 손에 쥘 까닭은 없다. 할머니는 할머니책이고 이모는 이모책이 되니까. 사람들과 몸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는 따로 종이책을 곁에 안 두어도 된다. 다만,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았다. 아이 눈과 머리를 생각해서 새 그림책 몇 권을 건넨다. 마침 우리 집에 미리 닿은 책꾸러미 있어, 앙증맞은 그림 깃든 그림책을 읽어 보라고 내민다.
마음에 안 들 만한 그림책을 건넸으면 큰아이는 시큰둥하게 여겼으리라. 큰아이가 졸립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하지만, 퍽 마음에 들 만한 그림책이기에, 한동안 그림책을 펼치면서 혼자 조잘조잘 이야기살 입히며 읽는다. 한글은 못 읽지만 그림은 읽을 줄 아니까, 그림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읽는다.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아이가 읊는 말이랑 그림책에 적힌 말이랑 얼추 비슷하다. 그림책 그린 이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그림과 글을 잘 엮었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달게 잔 다음, 새 아침에 겨울눈이 아직 안 녹았는지 다 녹았는지 살펴보자. 마을 마늘밭을 밤새 포근하게 덮은 흰눈이 얼마나 남는가 살펴보자. 눈밭에서 신나게 뒹굴어 보자.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