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6] 빌림옷

 


  한복을 빌립니다. 한겨레가 입는대서 ‘한복(韓服)’이라 일컫는다는데, 한겨레가 입는 옷이라면 ‘한겨레옷’이라고 일컬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한겨레밥’이고 ‘한겨레집’이며 ‘한겨레말’이라고 말할 때에 알맞구나 싶어요.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하면, 한겨레는 우리 스스로 ‘한겨레’라 일컫지 않았어요. 그저 내 둘레 모두 한겨레이기에 굳이 옆사람이나 나 스스로를 일컫는 다른 ‘겨레 이름’을 빚지 않았어요. 곧, ‘한복’이니 ‘한겨레옷’이나 하는 금긋는 말마디는 덧없습니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옷’을 입을 뿐이었어요. ‘밥’을 먹고, ‘집’을 지으며, ‘말’을 할 뿐이지요. 1900년대에 들어선 뒤로도 언제나 ‘옷·밥·집·말’일 뿐이었는데,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러시아나, 여러 이웃나라 문화와 이야기가 수없이 스며들면서 비로소 우리 겨레와 다른 겨레 사이를 나눌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느꼈구나 싶어요.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비로소 붙이려고 하던 때에는 ‘한문을 쓰던 권력자와 지식인’이 주름잡던 때라, 그무렵 사람들은 한자로 ‘韓服’ 같은 말마디를 적었겠구나 싶습니다. 아무튼, 옆지기 옷(한복)을 빌리려고 나들이를 나옵니다. 옆지기 동생 시집잔치에 입을 옷을 빌립니다. 옷을 빌려주는 곳으로 찾아가니 ‘빌려준다’라는 말만 씁니다. ‘대여(貸與)’라는 말조차 쓸 일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빌려서 입는 옷이니 ‘빌림옷’입니다. ‘빌림차’이고 ‘빌림돈’이며 ‘빌림책’입니다. 비벼서 먹는 밥이기에 ‘비빔밥’이듯, 빌려서 쓰는 터는 ‘빌림터’가 됩니다. 4345.11.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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