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도 1번 걷기여행 - 주머닌 가볍고 꿈은 무거운 철부지 두 남자의 에세이포토
신미식.이민 글 사진 / 뜰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20

 


내 마음 돌아보는 사진마실
―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
  신미식·이민 글·사진
  뜰 펴냄,2010.8.18./15000원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바다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바닷물을 늘 만지면서 살아갑니다. 바다가 아이들 보금자리입니다. 숲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숲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나무와 풀을 늘 만지면서 살아갑니다. 숲이 아이들 보금자리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시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도시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도시 물질문명을 늘 만지면서 살아갑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도시가 아이들 보금자리입니다. 도시가 아이들 삶자리요, 배움자리이고, 사랑자리이거나 꿈자리가 되겠지요.


  바닷가 아이들은 바다를 숨쉬면서 바다를 가슴 깊이 받아들여 바다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숲속 아이들은 숲을 숨쉬면서 숲을 가슴 깊이 맞아들여 숲 이야기를 노래로 부릅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를 숨쉬면서 도시를 가슴 깊이 아로새기며 도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겠지요.

  도시 아이들은 어떤 도시를 어떤 빛깔과 무늬와 냄새로 아로새길까요. 도시 아이들은 어떤 도시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까요. 도시가 들려주는 소리에 익숙한 아이들이 시골로 가서 들과 메와 내와 숲을 바라본다면 무엇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살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신미식·이민 두 분이 쓰고 찍은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뜰,2010)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신미식·이민 두 분은 어느 마을 어느 보금자리에서 태어나 어떤 꿈과 사랑을 꽃피우면서 살아왔을까요. 두 분은 이 나라 국도1번을 거닐면서 어떤 꿈과 사랑을 즐기거나 누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을까요. “40년을 넘게 살면서(사실은 50에 가깝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던 밥이 있기나 했던가? 기억에 없다. 모든 밥상은 늘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33쪽).” 같은 글월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이제부터 ‘밥 한 그릇 즐겁게 먹으면서, 사진 한 장 즐겁게 찍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살아가는 즐거움’을 언제나 돌아보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즐거움’이 어디에 밑뿌리를 두는가를 슬기롭게 깨달을 수 있으려나요.


  아이들은 값비싼 놀잇감이 있어야 재미나게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값진 놀잇감이 여럿 있거나 잔뜩 있어냐 신나게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돌멩이 하나가 대단한 놀잇감입니다. 아이들로서는 모래밭이나 흙땅이 너른 놀이터입니다. 돌멩이를 만지작거리고 나뭇가지를 쥐면서 스스로 놀이를 빚습니다. 모래밭에서 뒹굴거나 흙땅에 돌멩이로 금을 죽죽 그리면서 저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즐겁게 놀기 때문에 굳이 놀잇감이 없어도 됩니다. 즐겁게 노는 만큼 어떤 규칙이나 원칙이나 틀이나 제도나 정책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을 이렇게 그리라는 법이 없고, 글을 저렇게 쓰라는 법이 없어요. 곧, 사진을 어찌저찌 찍어야 하는 법은 없어요. 스스로 가장 즐거울 때에 가장 즐겁게 찍는 사진이요, 스스로 가장 즐거이 누리는 삶일 적에 가장 즐겁게 읽는 사진이에요.

  어떤 장비가 있기에 어떤 사진을 찍지 않아요. 마음속으로 어떤 모습을 살가이 그리면서 어떤 삶을 일구느냐에 따라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려요. 어떤 사진스승을 만나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길을 어떤 사랑이 되어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사진을 스스로 이루고픈 대로 이룰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작고 깡마른 까까머리 경상도 아저씨가 휴일 아침, 유창한 경상도 말씨로 낯선 이에게 담배 한 개비를 청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장 전라도 같은 도시인 목포의 아침 풍경인 것을(26쪽).” 하고 느끼며 국도1번 나들이를 합니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발견한 옛것에 대한 흔적에 흠뻑 취한 우리의 걸음은 더디다. 잘 다듬어진 국도1번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담장을 세운 마을은 우리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고향, 시골, 시골스러운 것은 큰길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93쪽).” 하고 느끼며 국도1번을 걷다가는 국도1번에서 벗어나 걷습니다. 곧, 국도1번 나들이라 하더라도 국도1번만 걸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티벳을 걷는 나들이라 하더라도 네팔부터 티벳으로 걸어갈 수 있고, 티벳부터 몽골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푸름이(청소년)’를 찍는다고 생각해 보셔요. 딱 오늘 이 자리에서 푸름이인 아이만 찍어야 하지 않아요. 어제까지 어린이였다가 모레부터 푸름이가 될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어제까지 푸름이였고 오늘부터는 여느 어른이 된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틀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거나 누리면서 ‘바라보는 눈길’이 있습니다. 내 눈길에 따라 내 마음을 살포시 담는 글이요, 내 눈길에 따라 내 마음을 가만히 담는 사진입니다.


  “우리가 생각한 최초의 근대식 도로, 또는 근대사의 애환이 서린 향수 가득한 길, 낭만적인 고향 등 이런 것들은 대부분 국도1번과 조금씩은 벗어나 있다는 것. 그래서 무작정 국도1번을 따라 걸을 것이 아니라 국도1번의 언저리를 걸어야 당초 우리가 목적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94쪽).”과 같은 대목을 읽고, “이 마을 저 동네의 고삿과 담장을 기웃거리고 간혹 마을사람들 눈치 봐 가며 까치밥으로 남겨 둔 홍시도 슬쩍해 빨아먹고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에 눈도장도 찍고 논두렁 밭두렁에 발자국을 찍는다(235쪽).”와 같은 대목을 읽습니다. 마실길에 나선 사람은 이제껏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요.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앞으로는 어떤 마음으로 추스르며 살아가고 싶을까요.

  사진마실을 하든 그림마실을 하든 글마실을 하든, 마실길에 나선 이는 ‘다른 사람 삶’을 기웃기웃 구경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삶을 마주하면서 ‘내 삶이 여태껏 어떻게 흘렀는가’를 깨닫습니다. 나와 다른 곳에서 나와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 삶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느낍니다.


  멋스러운 길을 찾아보려는 마실길이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멋스럽게 바라보면서 내 보금자리를 어떠한 멋으로 보듬는가를 알아보려고 떠나는 마실길입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멋스러운 길이라 한다면 내가 늘 살아가는 마을길이어야 해요. 어쩌다 한 번, 또는 내 삶을 통틀어 꼭 한 번 찾아갈 만한 멋스러운 길이라면 ‘멋스러운’ 터가 되지 못해요. 내가 살아가고 싶을 뿐 아니라, 참말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데가 멋스러운 터입니다. 곧, 내가 살아가며 기쁘게 북돋우는 사진이 ‘내 사진’입니다. 내 온 사랑을 담는 사진일 때에 ‘내 사진’입니다. 내가 하루하루 찬찬히 이루면서 빛내는 꿈을 싣는 사진일 때에 ‘내 사진’이에요.


  국도1번은 왜 국도1번일까요. 국도1번이라는 숫자에는 어떤 뜻이 깃들까요. 국도2번이나 3번은, 4번이나 5번은, 11번이나 45번은, 111번이나 368번은, 1111번이나 2345번은 저마다 어떤 뜻이 깃들까요.


  국도1번이 아니더라도 지방도로 2745번 길을 찬찬히 거닐며 마을살이를 곱다시 돌아볼 수 있으면 됩니다. 이름이 붙지 않는 조그마한 골목길을 차근차근 거닐며 동네살이를 예쁘게 돌이켜볼 수 있으면 됩니다. 내 살림집에서 부엌과 마루를 오가며 누리는 하루를 곰곰이 되새길 수 있으면 됩니다.


  나는 어느 길에 서나요. 우리 아이는 어느 길에 서나요. 내 옆지기와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느 길에 서나요. 이 길에서 우리들은 어떤 꿈을 먹으며 하루를 누리는가요. 이 길에서 나는 어떤 사랑을 꽃피우면서 사진 하나에 웃음 한 조각 싣는가요.


  사람들은 누구나 날마다 ‘내 마음 돌아보는 사진마실’을 누립니다. 스스로 늘 느끼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언제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잣거리에 파 한 묶음 사러 다녀오는 길도 마실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오가는 길도 마실입니다. 바람을 쐬러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바라기를 하며 기지개를 켜는 길도 마실입니다. 밥을 차려 마루에 밥상을 내놓는 길도 마실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드는 길도 마실입니다. 삶은 언제나 마실입니다. 웃음이 피어나고 눈물이 젖기도 하는 고운 마실입니다. 4345.11.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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