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름’을 못 알아듣는 ‘어른 마음’

 


  큰아이는 제 이름을 씩씩하게 말할 줄 알 뿐 아니라, 제 이름을 야무지게 쓸 줄 안다. 이제 큰아이는 동생 이름도 어느 만큼 쓰기는 하는데, 아직 동생 이름은 제 이름만큼 예쁘게 쓰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큰아이를 보며 이름을 묻는다. 큰아이는 “사름벼리!” 하고 얘기한다. 그러면 거의 모든 어른(사람)들은 이 이름을 못 알아듣는다. 큰아이만큼 어린 아이들도 이 이름을 잘 못 알아듣기 일쑤이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끊어서 들려주어도 못 알아듣는 어른이 아주 많다.


  어른들은 아이 이름을 못 알아듣는 까닭이 ‘아이가 말할 때에 소리가 새서 알아듣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어른들 스스로 ‘마음을 덜 열’거나 ‘마음을 안 연’ 탓인 줄 생각하지 못한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스스로 마음을 덜 열거나 안 열었을 적에는 이러한 밑틀 때문에 아이들 말소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이녁 모습을 깨닫지 못하기 마련이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제 이름을 말할 적에만 못 알아듣지 않는다. 다른 말을 할 적에도 잘 못 알아듣는다. 게다가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거나 생각하는지를 못 일기 일쑤이다. 곧, 아이들 생각과 마음과 꿈과 사랑을 읽지 못할 만큼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한’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읊는 말마디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읊는 말마디도 옳게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큰아이더러 제 이름을 종이에 적어 보라고 말한다. 아이는 놀이를 하듯 이름을 적어 본다. 한 번 쓰다가 그닥 예쁘지 않다 여겨 다시 쓰고 또 다시 쓴다. 처음에는 작은 칸에 맞추어 이름을 넣으려 하다 보니, ‘너무도 마땅하고 홀가분하’게 ‘한글 풀어쓰기’를 하며 ‘ㄹㅡㅁ’을 쓴다. 어쩜, 한글 풀어쓰기란 처음에 이렇게 태어났구나. 아이한테 얘기한다. 굳이 칸 안에 글이 다 들어가야 하지는 않아. 내가 종이에 아이 이름을 조금 크게 적으면서 ‘칸 벗어나기’를 해서 보인다. 이제 아이는 칸을 살피지 않고 제 이름 예쁘게 쓰는 데에 마음을 기울인다.


  어른들이 아이들 마음을 슬기롭게 읽기를 빈다. 아이들이 얼마나 놀고 싶어하는가를 어른들이 제대로 읽고, 아이들이 푸른 숲과 메와 내와 바다와 들을 얼마나 바라는가를 어른들이 곱게 읽으며, 아이들이 돈과 이름과 힘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면서 맑고 밝게 살아가는가를 어른들이 사랑스레 읽기를 빈다. 4345.1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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