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98) 관하다關 1 : 모든 것들에 관해

 

숲 생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숲과 숲에 사는 모든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남효창-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청림출판,2004) 머리말

 

  “숲 생태(生態)의 이해(理解)를 돕기 위(爲)해”는 “숲 상태를 이해하도록 도우려고”로 손보며 토씨 ‘-의’를 덜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숲살이를 잘 알도록 도우려고”로 손볼 수 있고, “숲을 잘 알도록 도우려고”로 손보아도 됩니다. “숲 생태”란 “숲이 어떠한가”라든지 “숲살이”를 가리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란 “잘 알도록 도우려고”를 가리키니, “잘 알도록”이나 “잘 헤아리도록”처럼 단출하게 다듬어도 됩니다.


  ‘관(關)하다’는 “(주로 ‘관하여’, ‘관한’ 꼴로 쓰여) 말하거나 생각하는 대상으로 하다”를 뜻하는 외마디 한자말입니다. 국어사전을 살피면 “실업 대책에 관하여 쓴 글”이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하여 토론하도록”이나 “우리는 한글에 관해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나 “그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대(對)하다’와 거의 비슷하게 쓰는 외마디 한자말이에요. 영어를 가르칠 때에 흔히 ‘목적격’이라 하면서 이 말투를 이야기합니다. 이 말투가 한국 말투인가 아닌가를 따지거나 살피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말투를 쓸 때에 알맞나 알맞지 않나를 돌아보거나 헤아리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투가 한국 말투로 스며들어 아주 깊이 뿌리내립니다.

 

 숲에 사는 모든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 숲에 사는 모든 목숨들을 이야기하고
→ 숲에 사는 목숨들을 모두 이야기하고
→ 숲에 무엇이 사는지 모두 이야기하고
→ 숲에 누가 사는지 모두 이야기하고
 …

 

  국어사전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실업 대책을 글감으로 쓴 글”이나 “실업 대책을 다룬 글”처럼 손질할 만합니다. 아니, 한겨레는 예부터 이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인가를 얘기하도록”이나 “여성이 놓인 사회 지위를 얘기하도록”처럼 고쳐쓸 만합니다. 아니, 한국사람은 예부터 이와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참말 얼마만큼 아는가”나 “우리는 한글이 어떠한가를 참으로 얼마만큼 아는가”처럼 다듬을 만합니다. 아니, 이 나라 사람은 예부터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 문제를 놓고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나 “그 문제에 우리는 한 치도 물러날 수 없습니다”처럼 손볼 만해요. 아니, 이 땅에서는 예부터 이러한 말투로 이야기했어요.


  알맞고 바르게 나타내는 말투를 생각하기를 빕니다. 슬기롭고 환하게 나타내는 말마디를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4338.11.4.쇠./4345.11.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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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살이를 잘 알도록 도우려고 숲과 숲에 사는 모든 목숨들을 이야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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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878) 관하다關 7 : 디자인에 관한 나의 이야기

 

디자인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게 되다니 두려운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반반씩이다
《이나미-나의 디자인 이야기》(마음산책,2005) 책머리에

 

 “나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로 고쳐야 알맞습니다. “나의 노래”가 아닌 “내 노래”이고, “나의 물건”이 아닌 “내 물건”입니다. 그렇지만 “내 삶”이나 “내 동무”보다는 “나의 삶(인생)”이나 “나의 친구”라 말하는 이들이 자꾸 늘어나고 말아요. ‘세상(世上)에’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온누리에’나 ‘이렇게’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꺼내놓게 되다니”는 “꺼내놓으니”로 손질하고, ‘반반(半半)씩이다’ 또한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만, “나란히 엇갈린다”나 “똑같이 든다”나 “엇갈린다”로 손질해 봅니다.

 

 디자인에 관한 나의 이야기
→ 디자인에 얽힌 내 이야기
→ 디자인을 해 온 내 이야기
→ 디자인 일을 한 내 이야기
→ 디자인하며 살아온 내 이야기
→ 디자인을 말하는 내 책
 …

 

  ‘얽히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글쓴이가 이녁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고 밝히는 자리인 만큼, “디자인을 말하는 내 책”이라든지 “디자인 일을 해 온 이야기”쯤으로 풀어도 어울립니다. 하고픈 말을 생각하면서 알뜰살뜰 글살림을 여미기를 바랍니다. (4340.5.1.불./4345.11.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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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하며 살아온 내 이야기를 온누리에 꺼내놓으니, 두려운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똑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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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05) 관하다關 8 : 그에 관하여 이야기를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티쭈라고 불리운 어린 소년이 있었으니 ……. 그에 관하여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모리스 드리용/배성옥 옮김,최윤경 그림-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민음사,1991) 11쪽

 

  “어린 소년(少年)”은 “어린아이”나 “사내아이”로 고쳐 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티쭈라고 불리운”은 틀린 말투는 아니지만, 한겨레 말투로는 입음꼴이 그닥 어울리지 않는 만큼, “모든 사람들이 티쭈라고 부르던”으로 손봅니다.

 

 그에 관하여 이야기를
→ 그 이야기를
→ 그 아이 이야기를
→ 이와 얽힌 이야기를
 …

 

  이 자리에서는 ‘-에 관하여’를 통째로 덜어낼 때가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그 이야기를”이나 “이 이야기를”로 적어 주면 돼요. 살을 살며시 붙이고 싶으면, “그 아이 이야기를”이나 “이 아이 이야기를”로 적어 보고, “이와 얽힌 이야기를”이라든지 “이 아이와 얽힌 이야기를”이라고 적어도 어울립니다. “이 아이가 겪은 이야기를”이나 “이 아이가 살아온 이야기를”이라고 적어도 됩니다. (4341.5.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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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티쭈라고 부르던 사내아이가 있었으니 ……. 그 아이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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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9) 관하다關 9 : 라면에 관한 한

 

라면에 관한 한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서 최고다
《윤정모-누나의 오월》(산하,2005) 25쪽

 

  “이 세상(世上)에서”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땅에서”나 “온누리에서”로 손보면 한결 나아요. “최고(最高)다”는 “으뜸이다”나 “가장 훌륭하다”나 “가장 뛰어나다”로 손질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라면 끓이기를 말하니까, “우리 엄마가 온누리에서 가장 잘 끓인다”처럼 손질해 볼 수 있어요.

 

 라면에 관한 한
→ 라면만큼은
→ 라면은 누구보다
→ 라면 끓이기에서는
→ 라면은
 …

 

  “라면에 관한 한(限)”이라 하면 외마디 한자말이 겹으로 달라붙습니다. “라면에 관해서”와 똑같은 뜻으로 쓰는 말투가 될 테고요.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이러한 말투를 눈으로 배우고,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이렇게 읊는 말투를 귀로 배웁니다.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고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맞느냐 틀리느냐를 살피지 않고 오래오래 받아들여요.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으레 듣던 말투를 떠올려 봅니다. “라면 끓이기라면 말이야”라든지 “라면을 끓인다면”이라든지 “라면에서만큼은”이라든지 “라면에서는”이라든지 “라면을 끓이는 자리에서는”이라든지 “라면이라면” 같은 말투를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참으로 여러 말투를 들었어요. 둘레 어른들은 저마다 다른 말투로 이녁 생각을 나타냈어요. 그런데, 어느 무렵부터 다 다른 말투가 차츰 사라지면서 ‘-에 관한 한’이라든지 ‘-에 관해서는’ 같은 말투가 부쩍 늘어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잊어요. (4345.11.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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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우리 엄마가 온누리에서 가장 맛있게 끓인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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