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린 맛난 밥

 


  나는 내가 차린 밥이 참 맛납니다. 내가 차린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참 맛있네.’ 하고 말할 때면 어쩐지 사랑이 새롭게 샘솟아 다음에 밥을 차리면서 한결 맛나게 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내 밥을 스스로 차려 먹은 지 이제 열여덟 해쯤 됩니다. 1995년에 제금을 난 뒤로, 밥이랑 옷은 언제나 스스로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밥을 차리며 ‘밥을 맛나게 해야지’ 하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저 ‘밥을 하자’고만 생각합니다. 내가 할 줄 아는 밥을 하고,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한테서 듣거나 배운 대로 조금씩 새롭게 밥을 해 보면서, 차츰차츰 밥맛이 돌게 살아왔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나는 1995년부터 내 옷가지를 스스로 빨면서 살았습니다. 2012년 봄에 처음으로 빨래기계를 들여서 가끔 기계빨래를 하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쯤 기계빨래를 할 뿐, 으레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빨래를 널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빨래를 걷고 개면서 또 한 번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내 빨래이지만, 내가 한 빨래는 참 깨끗하고 보송보송 좋구나, 하고 느낍니다.


  옆지기와 아이들도 느낄까요. 느끼겠지요. 어쩌면 못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딱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빨래를 하고 밥을 하는걸요. 내 모든 사랑과 꿈과 믿음과 생각을 쏟아서 밥 한 그릇 차리고, 빨래 한 가지 하는걸요.


  때로는 밥상에 찬거리가 얼마 없곤 합니다. 어느 때에는 국과 밥과 나물 한두 가지만 있곤 합니다. 어느 때에는 세 시간 즈음 품을 들여 여러 반찬을 올리기도 합니다.


  나는 늘 끼니마다 모든 밥과 국과 반찬을 새로 합니다. 묵은 밥이나 국이나 반찬은 거의 안 씁니다. 끼니에 먹을 만큼 밥과 국과 반찬을 해요. 요사이에는 아침에 한 밥을 저녁에 먹고 끝내기도 하지만, 으레 새 끼니 새 밥, 새 끼니 새 국, 새 끼니 새 반찬, 이렇게 생각해요. 그때그때 손품을 들이는 밥이 참말 맛있거든요. 내가 먹어 보기에 이러하니까, 나랑 같이 밥을 먹는 사람도 이 느낌을 함께 받아들이기를 바라요.


  빨래를 하루에 서너 차례 하면서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빨래인데, 참말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빨래이다 보니, 빨래를 하면서 마음씻기를 이루어요. 괴롭거나 힘들거나 슬프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빨래를 하며 사르르 사라져요. 밥을 할 적에도 그렇고요.


  아마 사라진다기보다 잊힌다고 해야 맞을 텐데, 사라지든 잊히든, 빨래하기와 밥하기는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 아이들하고 함께 놀거나 마실을 다니거나 잠을 재울 적에도 더없이 기쁘고 아름다운 숨결이 나한테 스며든다고 느껴요.


  나는 내가 차린 맛난 밥을 먹습니다. 나는 남이 차린 밥도 맛나게 먹습니다. 밥집에서 사먹는 바깥밥은 조미료 냄새에 수도물 냄새에 온갖 ‘이야 이렇게 나쁜 걸 잔뜩 집어넣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지만, 숟가락을 든 뒤로는 상긋방긋 웃으면서 먹어요. 내 숨결을 살리는 고마운 밥이거든요. 조미료 듬뿍 들어가든 말든 내 숨결이 되어요. 소시지이든 세겹살이든 내 몸이 되고 피가 되며 살이 되어요. 그래서, 이런 걸 먹든 저런 걸 먹든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똥으로 범벅이 된 아이들 옷을 빨든, 바닷가에서 놀며 온통 모래투성이 된 옷을 빨든, 나는 노상 기쁘게 옷을 빨래합니다. 옳거니, 이런 옷은 이렇게 빨아야 하는구나, 저런, 이런 옷은 이렇게 빨아도 때와 얼룩이 안 지네, 하고 깨닫습니다. 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던 손길을 떠올리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내 어머니를 사랑하던 눈길을 헤아립니다. 나는 나와 내 아이와 옆지기를 어떻게 사랑하며 하루를 빛낼까요. 밥을 먹습니다. 빨래를 합니다. 비질을 합니다. 하루가 어여쁩니다.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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