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어버이일 뿐,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진보라서 젖을 물리고 보수라서 가루젖을 먹일까요. 어버이는 늘 사랑을 먹입니다.
빨래하는 나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나는 기계 안 쓰고 손으로 빨래한 지 열아홉 해째인데, 나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나는 그저 빨래하는 살림꾼일 뿐입니다. 식구들 옷을 아끼고 보듬으려는 아버지일 뿐입니다. 기계빨래를 하는 사람은 보수일까요, 진보일까요?
삶을 즐겁게 짓고 사랑스레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삶을 빛낼 때에 그야말로 환히 빛나는 사람일 뿐, 진보이기에 빛나거나 보수이기에 어둡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사람을 가르거나 금그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무개가 진보이면 어떻고, 저무개가 보수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저 들판 나락은 진보도 먹고 보수도 먹습니다. 유기농 곡식이든 화학농 과일이든, 진보와 보수 똑같이 누구나 먹습니다.
숲이 뿜는 푸른 바람과 햇살이 드리우는 따순 햇살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지 않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비도 눈도 모두 사람이나 짐승이나 푸나무를 가르지 않습니다.
금을 그을 때에는 바로 이때부터 사랑과 믿음과 꿈을 잃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람을 금긋지 않으려 하는 당신이라면, 정규·비정규직으로 사람을 가를 생각이 없는 당신이라면, 진보도 보수도 아닌 ‘한 사람’이 되길 빕니다. (4345.1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