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말 짓는 애틋한 틀
 (312) 옮겨심기

 

4월은 싹이 나는 달일 뿐만 아니라 이식(移植)하는 달이기도 하다 …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바라는 대로 곧 옮겨 심는 시기가 된다
《카렐 차페크/홍유선 옮김-원예가의 열두 달》(맑은소리,2002) 71, 99쪽

 

  ‘번역(飜譯)’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을 뜻합니다. 곧, 한국말은 ‘옮기다’요 한자말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로는 ‘飜譯’인 셈입니다. 한글로 ‘번역’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는 않아요. 그러나, ‘옮김꾼’ 같은 이름은 거의 안 쓰입니다. ‘번역가’라는 이름만 쓰입니다. 책을 살피면 간기에 ‘옮긴이’라고 적습니다만, 이 이름처럼 바깥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분들 스스로 이녁 일을 ‘옮긴이-옮김꾼’처럼 밝히는 분은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다시피 해요.


  국어사전에서 ‘이식(移植)’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뜻풀이에 “= 옮겨심기. ‘옮겨심기’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곧, ‘이식’이든 ‘移植’이든 한국사람한테는 알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옮겨심기’ 한 가지라는 소리입니다.

 

 옮겨살다 ← 이사(移徙)
 옮겨가다 ← 이전(移轉)
 옮겨적다(옮기다) ← 번역

 

  옮겨서 살고, 옮겨서 가며, 옮겨서 씁니다. 옮겨서 적고, 옮겨서 다니며, 옮겨서 말합니다. 생각해 보니, ‘통역(通譯)’이란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줌”을 뜻한다 하니, 이 한자말을 ‘옮겨말하다’처럼 새롭게 쓸 수 있어요. 한 낱말로 새롭게 쓰기 아직 낯설다면 ‘옮겨 말하다’처럼 써도 돼요. 스스로 익숙하게 쓰고, 스스로 밝게 쓰며, 스스로 즐겁게 쓰면, 차츰차츰 환하게 빛나는 낱말이 되리라 느껴요. (4345.1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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