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아저씨의 꿈 웅진 우리그림책 18
엄혜숙 글, 이광익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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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품고 보살피는 하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8] 이광익·엄혜숙, 《세탁소 아저씨의 꿈》(웅진주니어,2012)

 


  나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대학교를 마치지 않았고, 사진 배우는 강의나 글 배우는 수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배우지 않았어도 스스로 사진기를 장만해서 사진을 찍었고, 배우지 않았지만 스스로 연필을 쥐어 글을 썼어요.


  누구한테서 배운 사진이나 글이 아니기에, 나는 사진동무나 글동무가 따로 없기도 하고, 사진스승이나 글스승 또한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대로 사진을 찍고, 가장 즐기는 대로 글을 씁니다. 내가 즐겨찾는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고, 내가 즐겁게 타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옮기며, 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사진을 빚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글로 쓰고, 내가 즐겨읽는 책을 글로 엮으며, 나와 한솥밥 먹는 살붙이 삶자락을 글로 빚어요.


  가을날 한들한들 춤추는 갈대와 억새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따순 남녘땅 논둑에서 가을날 꽃을 피우는 갓과 유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마당에서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하늘을 훨훨 나는 멧새를 올려다봅니다. 저 새는 어떤 새일까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는, 또 밤하늘 가득한 별을 올려다보며 무슨 별일까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는, 또 휭휭 부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들풀이 어떤 풀일까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기웃하다가는, 내 마음 가는 대로 이름을 붙여 봅니다. 멧자락 위를 지나가다가 멧등성이에 걸려 꼼짝 않는 구름을 바라볼 때에는 ‘구름이 멧등성이에 앉아서 쉬는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아이들 재우는 저녁나절에는 예쁜 아이 착한 아이 멋진 아이 고운 아이,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이 차면 찬 대로 반가운 하루입니다. 햇살이 따스하면 따스한 대로 고마운 하루입니다. 가을이 다가오며 겨울을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며 봄을 꿈꿉니다. 봄이 찾아올 무렵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이 깃들면서 가을을 떠올려요. 삶이 온통 웃음이요, 웃음은 고스란히 사진으로 거듭나고 글로 다시 태어납니다.

 


.. 친한 친구도 없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내게 동물들은 가장 먼저 마음을 열어 준 친구였습니다 ..  (10쪽)


  아름다운 말 한 마디는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삶을 아름다이 누릴 적에는, 내가 쓰는 어느 말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삶을 슬프게 깎아내리거나 얄궂게 뒤틀 적에는, 내 입에서 나오는 어느 말이든 모두 슬프거나 얄궂습니다. 낱말만 예쁘장하게 꾸민대서 내 말마디가 예쁘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말투만 그럴듯하게 치레한대서 내 말본새가 그럴듯하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들판을 마주하는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살붙이와 부대끼고 빨래를 복복 비비는 마음을 다스립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지는 꿈이란 없어요. 선물처럼 짠 하고 찾아오는 꿈이란 없어요. 어떠한 꿈이든 생각으로 빚습니다. 모든 꿈은 마음으로 일굽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에서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큽니다. 스스로 누리는 삶에서 생각이 빛나고 마음이 부풉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셔요. 저녁에 지는 해를 보셔요. 봄날 해가 어느 쪽에서 떠서 어느 쪽으로 지는가를 살펴보셔요. 여름날 해가 뜨는 높이와 가을과 겨울에 해가 뜨는 높이를 가늠해 보셔요. 한겨레 옛사람이 집을 지으며 남녘을 등에 지고 마루와 마당에서는 동녘과 서녘을 바라보도록 한 까닭을 헤아려 보셔요.


  해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빨래대를 달리 놓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빨래대 놓는 자리가 바뀝니다. 봄과 여름에는 빨래가 쉬 마르고, 가을과 겨울에는 빨래가 천천히 마릅니다. 철에 맞추어 삶을 맞추고, 삶에 맞추어 생각을 맞추며, 생각에 맞추어 말을 맞춥니다. 내가 읊는 말마디는 내 삶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즐기며 가꾸고 보듬는 삶에 맞추어 말 한 마디 싱그러이 태어납니다.

 


.. 나는 동물을 좋아해서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사육사가 될 수는 없었어요. 사육사는 공무원인데, 재일 조선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었거든요 ..  (20쪽)


  아침밥을 짓고 저녁밥을 짓습니다. 한솥밥을 지어 다 함께 먹습니다. 밥짓는 내 손길은 사랑을 담아 목숨을 건사하는 손길입니다. 숨결을 푸르게 북돋우고 마음결을 곱게 살찌웁니다.


  후끈후끈 뜨거운 국물을 마십니다. 김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따스한 밥을 먹고, 따스한 밥을 먹입니다. 무를 썰고 오이를 썹니다. 날푸성귀를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빼내고서 톡톡 썹니다. 알맞게 썬 날푸성귀를 골고루 섞으며 된장이나 양념장으로 버무립니다. 때때로 감자와 양파를 볶거나 버섯이나 양배추를 볶습니다. 푸성귀는 날로 먹어도 맛나고, 감자와 양파를 볶은 다음 떡볶이떡을 넣어 자글자글 끓인 다음 함께 넣어 먹을 때에도 맛납니다.


  졸린 아이를 재우고 이불깃을 여밉니다. 나란히 드러누워 하루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고, 어른들은 나날이 새롭게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내 몸을 씻기고 아이들 몸을 씻깁니다. 내 머리를 감고 아이들 머리를 감깁니다. 아이들 뒤를 닦고 나도 뒤를 눕니다. 다섯 살 큰아이는 스스로 양말을 꿰고 옷을 입을 뿐 아니라, 식구들 옷가지를 혼자서 척척 갭니다. 두 살 작은아이는 스스로 양말을 꿰거나 단추를 꿰거나 신을 꿰려면 좀 멉니다. 그래도 오래지 않아 작은아이 스스로 옷을 꿰고 신을 꿸 텔지요. 자꾸자꾸 옷을 새로 꺼내어 입고 자꾸자꾸 옷더미를 만들는지 모릅니다. 누나하고 둘이서 끝없이 뛰고 기고 날고 하면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품고 보살피는 하루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품는 하루요, 스스로 기쁘게 맞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예쁘게 마무리하는 하루요, 스스로 곱게 돌아보는 하루예요.

 


.. 아저씨가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나는 사육사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어. 그렇지만 넌 꼭 훌륭한 사육사가 되길 바란다.” 아저씨 손은 참 크고 따뜻했다. 세탁소에서 늘 다림질을 하고 있어서 손이 크고 따뜻한가 보다 ..  (32쪽)


  이광익 님이 그리고, 엄혜숙 님이 글을 쓴 《세탁소 아저씨의 꿈》(웅진주니어,2012)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김황’이라는 분 이야기를 적바림한 그림책입니다. 재일조선인으로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쁨으로도 슬픔으로도 금긋지 않고 차분하게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김황 님이 남녘이나 북녘에서 태어났으면 어떠한 삶을 꾸렸을까요. 김황 님이 일본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어떠한 나날을 보냈을까요. 재일조선인으로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하루란 어떤 뜻과 값과 보람과 빛과 웃음이 될까요.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기에, ‘삶을 돌보는’ 글쓰기를 하며 하루를 빛내는 김황 님이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듯 들짐승을 아끼고 사랑하는 넋을 건사하기에, 세탁소 일꾼으로 지내면서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삶을 북돋우는구나 싶습니다.


  예쁘게 살고 싶으면 예쁘게 꿈을 꿉니다. 참답게 살고 싶으면 참답게 꿈을 꿉니다. 생각이 꿈으로 거듭납니다. 꿈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삶은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이야기는 널리널리 퍼지며 두루두루 즐거운 노래로 흘러넘칩니다. (4345.11.7.물.ㅎㄲㅅㄱ)

 


― 세탁소 아저씨의 꿈 (이광익 그림,엄혜숙 글,웅진주니어 펴냄,2012.7.30./11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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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8 19:22   좋아요 0 | URL
요즘 동화책에 빠져 있어요. 재밌어요.
된장 님도 동화를 쓴다면 잘 쓰실 것 같은데... ㅋ
위와 같은 동화그림도 좋아합니다.

숲노래 2012-11-08 20:05   좋아요 0 | URL
음... 언젠가 쓰리라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