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두꺼비 장가간 이야기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4
박영만 지음, 이미애 엮음, 김세현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 사라진 자리에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2] 박영만·김세현, 《옴두꺼비 장가간 이야기》(사파리,2009)

 


  어릴 적에 옛이야기를 참 자주 많이 흔하게 들었습니다. 어디에서나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는 이야기마당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내가 몇 살 적부터 옛이야기를 들었는지 잘 모르나, 아주 어릴 적에도 형이나 누나 틈바구니에 끼어 옛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으랴 싶어요.


  오늘날 옛이야기를 들을 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옛이야기를 읊는 어른이 드뭅니다. 옛이야기를 되새기는 어른이 잘 안 보입니다. 오늘날 어른은 으레 손전화 기계를 손에 쥡니다. 오늘날 어른은 ㅍ이라느니 s라느니 무어라느니 하는 것만 합니다. 그때그때 곧바로 주고받는 손전화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옛이야기를 구수하게 꽃피우지는 않아요.


  옛이야기 나누지 않는 오늘날 어른들이니, 오늘날 아이들도 옛이야기 들을 자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동화책으로 읽거나 그림책으로 만나거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바라봐요. 어른들마다 다 다른 목소리와 다 다른 숨결과 다 다른 몸짓으로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그예 싹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얘야, 사람도 아닌 두꺼비 몸으로 동네 제일가는 양반집 딸과 혼인이라니 될 말이냐?” “그러면 저는 촛불을 켜 잡고 검을 들고 제가 나온 곳으로 도로 들어가겠습니다.” ..  (5쪽)


  옛이야기 뿌리가 끊긴 오늘날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말이 좋아 ‘옛이야기 뿌리가 끊긴 삶’이지, 찬찬히 짚으면 ‘이야기 뿌리가 송두리째 사라진 삶’이 아닌가 싶어요. 서로서로 애틋하게 주고받을 이야기가 사라져요. 다 함께 웃고 울며 나눌 이야기가 자취를 감추어요.


  요즈음 어른이나 아이는 모두 ‘현실 걱정’입니다. 대학입시를 걱정하고 학원과 교과서 진도를 걱정합니다. 시험과 등수와 성적을 걱정합니다. 얼굴과 옷차림과 몸매를 걱정합니다. 삶을 생각하거나 마음을 돌아보거나 사랑에 눈길을 두는 아이도 어른도 웬만해서는 만나기 힘들어요. 삶을 살피거나 마음을 살찌우거나 사랑을 북돋우려는 아이도 어른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요.


  다들 무엇을 하느라 바쁠까요. 다들 어디에서 살아간다며 부산스러울까요. 다들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다들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이룬다며 허둥지둥할까요.


  먹고사는 일 때문에 옛이야기는 잊을까 궁금합니다. 빠른 인터넷과 손전화가 있으니, 옛이야기는 등질 만한가 궁금합니다. 대학입시와 자격증과 영어에 매달리느라 모든 기운을 쏟기 때문에, 옛이야기란 한물 두물 석물 간 퀘퀘한 이야기인가 궁금합니다.

 


..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죽으면 죽었지, 옴두꺼비에게 시집갈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었어. 하지만 속 깊은 막내딸은 차분히 대답했어. “아버지께서 옴두꺼비한테 시집가라고 하시면 그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  (14쪽)


  어린이에서 푸름이로 살다가 어른이라는 길을 걸어가며 만난 옆지기하고 때때로 ‘옛이야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어릴 적 듣던 옛이야기하고 옆지기가 어릴 적 들은 옛이야기는 사뭇 다르곤 합니다. 내가 어릴 적 즐기던 골목놀이랑 옆지기가 어릴 적 즐기던 골목놀이 또한 사뭇 다르곤 해요.


  가만히 살피면, 내 고향에서도 우리 마을이랑 이웃한 마을 아이들 놀이가 사뭇 달라요. 삶자리가 다르니 놀이자리가 다를 테고, 놀이자리가 다른 만큼 이야기자리 또한 다르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다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꿈을 꾸면서 삶을 짓기에 다 다른 이야기가 생겨나요. 청개구리 이야기이든 두꺼비 이야기이든, 다 다른 모양새입니다. 내가 아는 옛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삶터에 걸맞게 그곳 어른들이 누리거나 빚은 삶에 따라 태어난 옛이야기입니다. 옆지기가 아는 옛이야기는 옆지기가 태어나고 자란 삶터에 걸맞게 그곳 어른들이 일구거나 세운 삶에 따라 생겨난 옛이야기예요.


  이제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새로운 옛이야기를 들려줄 테지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새로운 옛이야기를 저희 어버이한테서 들으며 자라다가는, 이 아이들도 무럭무럭 커서 어버이 자리에 설 때면, 또 다른 삶과 꿈과 사랑을 담아 ‘새 옛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지요.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처럼 씩씩하게 자라는 이야기입니다. 튼튼히 생각을 키우는 아이처럼 튼튼히 살을 입고 옷을 입는 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 자라는 곳은 삶이 자라는 곳이라고 느낍니다. 옛이야기 사라지는 자리는 삶이 사라지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옛이야기란, 심심풀이로 나누는 수다가 아니에요. 숱한 살림집이 오순도순 모여 이룬 마을에서 온갖 슬기와 꿈과 사랑을 담아서 북돋우는 숨결이 옛이야기 모습으로 나타나요. 옛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그러니까 몸에서 몸으로, 곧 삶에서 삶으로 물려줄 수 있을 때에 마을이 싱그럽습니다. 옛이야기 뿌리나 줄기나 고리가 톡 끊어진다면 마을살림이 메말라요. 마을이 무너지거나 온통 도시로 쏠리겠지요. 집집마다 시멘트 울타리를 세우면서 텔레비전 앞에 틀어박히겠지요. 모든 사람들한테 똑같은 지식과 정보를 집어넣으려 하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틀에 맞추어 길들이려 하겠지요.


.. 두 사위도 옴두꺼비를 깔보며 놀렸어. 옴두꺼비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서 잘 먹고 잘 마셨어. 그리고 제 색시를 부르더니 가위를 가져오라 일렀어 ..  (31쪽)


  박영만 님이 갈무리한 옛이야기에 김세현 님이 그림을 붙인 《옴두꺼비 장가간 이야기》(사파리,2009)를 읽습니다. 재미나고 어여쁜 빛깔을 입힌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에 이처럼 재미나게 엮은 그림책을 못 보았고, 이렇게 어여쁘게 빚은 그림책을 못 만났어요. 언제나 입으로 옛이야기를 들었고, 늘 귀로 옛이야기를 생각했어요.


  나한테 옛이야기란 ‘눈을 감고 그리는 꿈’이었어요.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와서 어떤 삶을 펼치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옷차림도 그리고 몸가짐도 그려요. 마을살이도 그리고 멧자락과 들판과 바다와 냇물도 그려요. 풀과 나무와 숲을 그려요. 짐승과 벌레를 그려요. 모든 모습을 나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려요. 옛이야기를 들을 적에는 먼먼 옛날, 아스라한 옛날, 지구가 별로 막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흐른 기나긴 나날 이야기가 영화처럼 촤르르 펼쳐져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나는 어른들이 들려준 옛이야기 한켠으로 빨려듭니다. 나도 옛이야기 어느 구석에서 달리고 뛰고 날고 노래합니다.


.. 옴두꺼비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좌수 영감 부부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어. 첫째 딸, 둘째 딸, 첫째 사위, 둘째 사위에게도 절을 했지. 그러고는 색시를 등에 업고 제 부모는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는 훨훨 날아서 하늘로 올라갔어 ..  (35쪽)


  옴두꺼비는 장가를 갔어요. 장가를 간 옴두꺼비는 색시와 이녁 어버이를 이끌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옛이야기를 듣는 나는 ‘꿈속에서 옴두꺼비 되어 내가 날아갈 하늘나라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립니다. 내가 옴두꺼비로 살아갈 적에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느낌이 되며 어떤 눈빛이 될까 하고 그립니다. 옴두꺼비 된 나를 바라보는 색시 마음이 되어 봅니다. 옴두꺼비 아이를 둔 어버이 마음이 되어 봅니다. 옴두꺼비 사위를 바라보는 색시네 식구 마음이 되어 봅니다.


  옛이야기는 재미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고 느껴요. 옛이야기는 재미난 말잔치를 빌어 오래오래 잇는 한겨레 슬기와 꿈과 사랑을 알려준다고 느껴요. 책에 담는 옛이야기가 아니요, 지식으로 돌아보는 옛이야기가 아니에요. 어른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을 입히는 옛이야기예요. 어른들이 스스로 삶을 일구면서 아이들한테 삶으로 물려주는 옛이야기예요.


  뜻있는 분들이 애써 그림책을 내고 동화책을 엮으니 ‘옛이야기 줄거리’는 안 사라지리라 느껴요. 다만, 줄거리는 남겠지만, 줄거리에 담던 뜻이나 넋은 얼마나 남을까 모르겠어요. 옛이야기 줄거리에 알알이 담던 꿈이나 사랑은 얼마나 돌아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오늘날 어른들이 조금 더 슬기롭게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오늘날 어른들이 너무 바쁜 쳇바퀴 일자리 아닌, 즐거우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을 아낄 수 있기를 빌어요. 다들 너무 바쁜 나머지 옛이야기를 책에 ‘글로 아로새기고’ 말아요. 다들 너무 고단하게 일하는 나머지 옛이야기를 삶이야기로 받아먹지 못해요. (4345.10.15.달.ㅎㄲㅅㄱ)

 


― 옴두꺼비 장가간 이야기 (박영만 글,김세현 그림,사파리 펴냄,2009.3.15./98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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