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0.11.
 : 꽃을 든 어린이와 자전거

 


- 아이들 어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간다. 꽃을 보러 가자며 두 아이를 이끌고 천천히 걷는다. 논밭이 따로 없는 우리 식구는 가을에도 느긋하게 마실을 다닌다. 논밭을 일구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가을걷이와 나락 말리기로 바쁘다. 모두들 바쁘게 일손을 놀리면서 논둑이나 밭둑에서 흐드러지는 꽃을 바라보실까. 꽃내음을 함께 맡으며 나락내음을 맡으실까. 이렇게 한가을에 비지땀 쏟으며 온몸이 나락먼지로 뒤덮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먹는 쌀이 태어난다.

 

- 아이들 어머니는 여느 코스모스보다 훨씬 큰 꽃이 잔뜩 핀 곳에서 멈춘다. 아이들은 꽃을 보랴 논둑길을 달리랴 바쁘다. 큰아이는 꽃이 예쁘다고 만지작거리다가 잎사귀 하나를 그만 똑 끊는다. 꽃아, 미안해, 하면서 떨어진 잎사귀를 꽃잎 위쪽에 얹는다. 한참 놀고 나서 자전거를 태운다. 작은아이는 낮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노는 터라 자전거를 태우면 곧 잠들리라 생각했다. 참말, 자전거에 태우고 1분을 채 달리지 않았는데 작은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면 소재지까지 달렸다가 돌아오려 했는데, 이래서는 작은아이를 데려가면 안 되겠구나 싶다.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간다.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작은아이를 안는다. 천천히 잠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대고는 이불을 덮는다. 잘 놀고 잘 뛰고 잘 보낸 하루이니? 이따 저녁 먹을 무렵 배고파서 일어나겠지? 그때까지 새근새근 잘 잠들어 주렴.

 

- 큰아이하고 면내로 간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텃밭 돗나물이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제 텃밭에서 돗나물 뜯어서 먹는 기쁨은 거의 끝난 듯하다. 그래도 집 둘레로 가을쑥은 씩씩하게 자란다. 가을쑥은 날마다 내키는 대로 뜯어서 여러 푸성귀하고 무쳐서 먹는다. 쑥은 날쑥으로 먹을 때에 가장 향긋하면서 고소하리라 생각한다. 이러저러해서 면내 가게에서 시금치랑 푸성귀 한두 가지를 장만한다. 면내 가게에는 푸성귀가 몇 가지 없다. 이듬날 읍내로 가서 큰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푸성귀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할 적까지 먹을 푸성귀는 모두 이웃 시골마을 비닐집에서 거둔 푸성귀일 테지. 맨땅에서 거두는 푸성귀는 이제 마지막일까. 올가을까지 기쁘게 즐겼으니 이듬해 봄을 다시금 기쁘게 기다리자.

 

- 큰아이는 머리에 꽃을 꽂는다. 꽃을 들다가 꽂다가 꽃순이가 되며 달린다. 꽃순이를 태운 자전거는 꽃자전거가 된다. 꽃자전거는 꽃길을 달린다. 이제 가을걷이에 바쁜 할머니 할아버지는 논둑이나 밭둑 풀을 베지 않는다. 논둑이나 밭둑에서는 가을꽃이 흐드러진다. 내가 이름을 아는 꽃, 내가 이름을 모르는 꽃, 누군가 이름을 붙인 꽃, 누군가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음직한 꽃, 온갖 꽃이 저희 마음껏 자라며 한들거린다. 꽃내음을 듬뿍 마시면서 시골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