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소녀 푸야 - 일곱 살 소녀와 마흔아홉 살 코끼리의 아름다운 우정
푸야 마르스케 지음, 이미옥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으로 찍히는 숨결을 사랑하는 마음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6 : 푸야 마르스케, 《코끼리 소녀 푸야》(조화로운삶,2006)

 


  코끼리하고 살가이 지내는 독일 가시내 푸야 이야기는 《코끼리 소녀 푸야》(조화로운삶,2006)라는 사진책에 살포시 담깁니다. 빛깔 고운 사진이 그득 담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습니다. 어릴 적부터 코끼리를 동무로 삼고 이웃으로 여기며 지낸 푸야는 코끼리뿐 아니라 뭇 목숨과 나무와 풀도 제 동무로 삼거나 이웃으로 여기리라 느낍니다. 이름을 붙여 ‘코끼리 소녀’라 한다지만, 푸야는 한낱 ‘코끼리 소녀’가 아닌 ‘여느 소녀’나 ‘여느 가시내’요, 푸야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은 누구라도 다른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사랑하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니까요.


  푸야는 “나는 보통 때는 독일에서 지내다가 겨울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인도로 가서 지낸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며 살면 불편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인도까지 여행을 가던 도중에 태어났다(7쪽).” 하고 말합니다. 푸야한테 대수로운 일은 ‘살아가며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사랑하는가’입니다. 비행기로 먼길을 자주 오가야 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독일과 인도를 오가느라 ‘정규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힘든 대목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삶도 어른 삶도 ‘학교 졸업장’이 열어 주지 않아요. 아이 꿈도 어른 꿈도 교과서 지식이나 문명 사회가 일구어 주지 않아요. 오직 아이 스스로 빚는 생각이 아이 꿈이 됩니다. 오직 어른 스스로 일구는 마음이 어른 꿈이 돼요.


  사진을 하는 마음은 그예 ‘사진넋’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녀도 사진넋을 익힐 수 있을 테고,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와도 사진넋을 일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느 학교 어느 스승한테서 사진을 배운다 하더라도, 내 가슴속에서 샘솟는 꿈이 있어야 사진넋이 자라요. 대학교 몇 학기를 다니거나 나라밖 배움길 몇 해를 보내야 사진넋이 자라지 않아요. 손꼽히는 대학교나 이름난 스승이 있대서 사진넋이 자라지 않아요. 내 가슴속에 사랑이 있을 때에 사진넋이 자라요. 내 가슴속에 사랑씨앗을 곱게 뿌릴 때에 사진넋이 자라요.

 


  푸야는 코끼리를 사랑하려고 인도에 가지 않습니다. 푸야는 삶을 사랑하려고 인도에 갑니다. 푸야는 코끼리를 만나면서 삶을 헤아립니다. 코끼리를 둘러싼 숲을 살피며 삶을 읽습니다. 코끼리를 보살피거나 괴롭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느낍니다. 코끼리를 아끼는 인도 어른이 푸야한테 “들어 봐, 푸야! 사원은 대부분 도시 한가운데 있어. 그래서 이 코끼리들은 강에 들어가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목욕을 한 번도 안 해 본 코끼리도 있지. 하지만 자연에서 사는 코끼리들은 어디든 잘 다녀. 가파른 곳이 나오면 코끼리들은 코로 뭉툭한 가지를 꺾어서 지팡이처럼 사용하기도 한단다(1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슬기로운 생각을 듣고, 슬기로운 삶을 몸소 겪는 푸야는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푸야는 “수부 아저씨는 코끼리에게 화장하는 일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코끼리에 대해 아직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래서 수부 아저씨에게 자주 묻는다(27쪽).” 하고 생각을 키웁니다. 머잖아 “사랑으로 대할수록 코끼리들은 훨씬 온순해진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41쪽).” 하고 깨닫습니다.


  집에서 토끼를 돌보는 아이도 이 같은 대목을 느끼리라 생각해요. 꽃그릇에 콩 한 알 심어 돌보는 아이도 이 같은 대목을 느끼리라 생각해요. 들판에서 들새를 바라보는 아이도, 텃밭에서 푸성귀를 심어 돌보는 아이도, 냇가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는 아이도, 다 함께 이 같은 대목을 느끼리라 생각해요.

 


  사랑으로 마주할 때에 따순 눈길로 내 손을 맞잡는 동무입니다. 사랑으로 마주할 때에 ‘내 사진기 앞’에서 따숩게 웃으며 사진 한 장으로 담기는 동무입니다.


  사랑이 없는 몸가짐인 어버이가 이녁 아이가 해맑게 노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매무새인 어른이 마을 아이들 뛰노는 눈부신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내 반가운 동무를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내 고마운 어버이를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집식구나 살붙이를 찍는 사진에서만 이와 같지 않아요. 다큐사진에서도 이와 같아요. 패션사진에서든 상업사진에서든 이와 같아요. 어떤 사진이든 사진쟁이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또는 ‘보여주는 이와 보는 이’ 모두 즐거울 사진을 새롭게 빚어요.


  푸야는 “독일에서는 비가 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하늘의 선물처럼 여겨진다. 나는 환호하면서 빗속으로 뛰어나가 온몸이 흠뻑 젖도록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비는 금세 더욱 심하게 퍼부었다. 나는 입을 한껏 벌리고 굵은 빗방울을 삼켰다. 자연에서 샤워를 즐기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131쪽)?” 하고 말합니다. 푸야는 독일에서 지낼 적에 도시에서 지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푸야가 독일에서도 시골마을 삶을 누린다면, 독일에서 비를 맞이할 적에도 옷을 모두 벗고 맨몸으로 빗방울을 마시면서 뛰놀리라 느껴요. 푸야는 들판을 맨발로 달리고 싶고, 푸야는 숲속을 홀가분하게 뛰고 싶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푸야뿐 아니라 어느 어린이라 하더라도 빗속에서 신나게 놀고 싶을 테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라 하든 시골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라 하든, 어린이라면 으레 빗놀이를 즐기면서 비와 내가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으리라 느껴요.


  그렇잖아요. 사진이란 ‘나와 네가 하나되는 때’를 느끼며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빛놀이 아닌가요. 사진이란 ‘나와 숲(자연)이 하나되는 곳’을 즐거이 누리며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빛그림 아닌가요. 사진이란 ‘나와 온 숨결(생명)이 하나되는 마음’을 살뜰히 나누며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빛삶 아닌가요.

 


  어린이 푸야 마르스케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어린이 푸야 마르스케는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가 찍는 사진에 담길 뿐입니다. 어린이 푸야 마르스케는 사진에 찍히기만 하지만 ‘사진을 새롭게 빚’습니다. 사진에 담길 빛이 무엇이요, 사진에 담길 때에 아름다운 사랑이 무엇이며, 사진에 담기며 즐겁게 웃는 삶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보여주면서, 사진을 새롭게 빚습니다.


  사진은 사진쟁이가 찍어서 이룬다지만, 사진으로 찍히는 숨결이 있어야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숨결은 사람일 수 있고, 숲일 수 있으며, 벌레나 풀이나 짐승일 수 있어요. 돌이나 나무나 바다일 수 있어요.


  사진으로 찍히는 숨결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진을 함께 이룹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숨결을 아끼는 몸짓이 사진을 함께 빚습니다. 누가 사진기를 들든 좋습니다. 어떤 사진기를 쓰든 좋습니다.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든 좋습니다. 어느 때에 사진을 찍든 좋습니다.


  내 숨결을 느껴 주셔요. 내 동무 숨결을 헤아려 주셔요. 내 살붙이와 이웃 숨결을 읽어 주셔요. 우리들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둘러싼 숨결을 껴안아 주셔요. 이 모든 숨결을 고이 담아 사진 한 장으로 일구어 주셔요. (4345.10.12.쇠.ㅎㄲㅅㄱ)

 


― 코끼리 소녀 푸야 (푸야 마르스케 글,제시카 마르스케·카르스텐 프릭케 사진,이미옥 옮김,조화로운삶 펴냄,2006.12.20./109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