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아파트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택시를 타고 보수아파트로 갑니다. 보수아파트로 가는 길은 꽤 가파릅니다. 이 골목 저 골목 구비구비 돕니다. 멧꼭대기라 할 만한 자리에 아파트가 섭니다. 퍽 낡았구나 싶은 건물은 계단뿐입니다. 무거운 짐을 인 채 힘겨운 아이들을 걸려서 맨 꼭대기층까지 오릅니다. 끝까지 씩씩하게 따라온 아이들이 더없이 대견합니다.
짐을 풀고 아이들을 씻깁니다. 더운물 없이 찬물만 있기에 아주 미안합니다. 다섯 살 큰아이가 춥다 춥다 말하면서도 잘 견디어 줍니다. 옷을 새로 갈아입히고 땀과 먼지에 절은 옷을 복복 꾹꾹 비벼서 빱니다. 밤새 잘 말라 주렴 노래하면서 툇마루에 넙니다.
살림집에 뒷간이 따로 없는 보수아파트입니다. 참말 이런 아파트가 있구나 싶어 놀랍지만, 나로서는 이제서야 놀랍게 여길 뿐, 이곳 보수아파트에서 옛날 옛적부터 살림을 꾸린 사람들이 많겠지요. 이곳을 거쳐 다른 데로 삶터를 옮긴 사람들이 많겠지요. 보수아파트 둘레에서 ‘살림집에 뒷간 없는 채’ 살아왔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제 하루 겪고 밤잠 하루 누리는 보수아파트 삶입니다. 이 아파트에 깃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거리·놀거리·삶거리를 찾을밖에 없을까 살짝 궁금합니다. 다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저런 시골마을에 보금자리(고향)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더 얻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돈을 더 벌면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도시에서 작은 살림집 건사하는 돈이라 한다면, 시골에서 작은 땅뙈기 건사하면서 스스로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살림을 누릴 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저 꿈 같은 뚱딴지 소리일 뿐일까요. 50만 원 100만 원 벌려고 달마다 하루 열 시간 안팎 회사와 길거리에서 보내는 겨를을 돌아본다면, 시골마을에서 흙과 하루 열 시간 안팎 씨름한다면 어떤 삶이 될까 하고, 사람들 스스로 가만히 그려 보기를 빌어요.
부자가 되어야 할 삶은 아니라고 느껴요. 아름답게 누릴 삶이라고 느껴요. 사랑스레 살아갈 삶이라고 느껴요. 예쁘게 노래하고, 멋지게 춤추며, 기운차게 활짝 웃을 삶이라고 느껴요.
아까, 큰아이가 고단한 몸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가파른 길을 걸으며 5동 건물이 어디인가 찾으며 걷다가, 보수아파트 한켠 재활용쓰레기 모으는 자리를 치우는 할머니를 보고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숙여 인사했습니다. 뜻밖에 인사를 받은 할머니는 아주 맑고 고운 목소리로, “그래, 너도 안녕하느냐.” 하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멧꼭대기에 깃들어 하느님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4345.10.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