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강운구 지음 / 열화당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내 동무 삶에 사진을
 [찾아 읽는 사진책 113] 강운구, 《저녁에》(열화당,2008)

 


  어른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노래를 짓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보여주려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교과서나 책을 엮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먹일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아이들 누구나 좋은 글을 읽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좋은 그림과 사진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나쁜 밥이나 옷이나 집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어른들 누구나 아이들한테 좋은 밥과 옷과 집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글이나 밥이나 집이란 무엇일까요. ‘좋은’ 책이나 옷이나 노래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좋다고 할 만할까요. 어떤 모습이기에 좋다고 여겨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이어줄 만할까요.


  어른들이 써서 다른 어른들한테 읽히는 글을 떠올립니다. 어른들은 ‘19금’이라든지 ‘아직 어린 사람은 못 읽는다’ 하는 틀을 스스로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아직 열아홉 살 밑이라 하더라도 이내 열아홉을 넘어요. 아직 ‘어리기에 못 읽을’ 글이라 하지만, 머잖아 아이들은 ‘이런저런 글을 읽을 나이’에 이릅니다. 어른들이 쓰는 모든 글은 ‘둘레 어른만 읽’는 글이 아니라 ‘둘레 아이들 누구’나 앞으로 읽을 글이 돼요. 무슨 말인가 하면, 아직 아이들이 읽을 만한 글이 아니라 하더라도 곧 아이들이 읽을 나이가 되는 만큼, 어떤 글을 쓰더라도 ‘아이들이 읽을 글’이 되고, 어른들은 무슨 글을 쓰든 아이들 눈높이와 눈길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에요. 어른들끼리 문학이니 역사이니 철학이니 예술이니 과학이니 종교이니 할 이야기란 없어요. 다 함께 생각하며 나눌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예술과 과학과 종교가 있을 뿐이에요.

 

 


  사진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슨무슨 예술이니 기록이니 문화라느니 작품이라느니 하고 말하는데, 이러한 ‘새 이름’을 얻는 사진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사진답게 깃들 수 있을까 가만히 헤아립니다. 어른들이 골목동네를 찍은 사진은 골목동네 사람들 삶에 어떻게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어른들이 공장 노동자를 찍은 사진은 공장 노동자인 사람들한테 어떻게 얼마나 깃들 만할까요. 어른들이 시골 농사꾼을 찍은 사진은 시골 농사꾼과 이웃들한테 어떻게 얼마나 파고들 만할까요.


  새로운 사진이 되든 현대예술과 같은 사진이 되든 그닥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요. ‘오늘 여기 있는 어른’한테는 이런 이름과 저런 값이 있을는지 모르나, ‘모레 여기 있을 아이’한테는 이런 이름도 저런 값도 덧없을 테니까요.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며칠이나 몇 달이나 몇 해 읽히고 사라져도 좋을 만한 삶자락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두고두고 즐기며 오래오래 사랑할 사진이요 그림이며 글이라고 느껴요.


  강운구 님 사진책 《저녁에》(열화당,2008)를 읽습니다. 머리말을 〈발견과 공유〉라는 이름으로 이문재 시인이 씁니다. 19쪽에 “얼마 전, 광화문에 있는 선생의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선생은 ‘시인이 뭐가 그리 바빠?’라고 물으셨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뼈가 들어 있어서 듣는 나는 조금 아팠다. 시인이 바쁜 것은 큰 문제다. 약속과 마감에 시달리는 시인, 그래서 시를 잘 못 쓰는 시인이 어찌 시인이겠는가. 바쁜 시인은 나쁜 시인이다. 강운구 선생은 나쁜 시인을 꾸짖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선생은 평생 사진가로서 자기 자신을 지켜 왔기 때문이다. ‘한 작가를 지켜 줄 것은 그 작가 외에는 결코 없습니다. 스스로가 지키는 수밖에요.’ 선생이 후배 사진가들에게 들려준 충고이다. ‘나는 무면허 작가예요. 그러나 작가는 스스로 호칭을 붙일 권리가 있어요 … 근본적으로 작가는 외톨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작가로서 살 수 없어요. ’”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퍽 길게 붙은 머리말이요, 시인이 쓴 머리말이기에 꽤 남다르다 여기며 읽습니다. 그러면서 어딘가 아리송하다고 느낍니다. 바쁘대서 나쁠 사람이 있을까 싶고, 나쁘대서 시인이 아니라 할 만한가 궁금합니다. 사진 한길을 꼿꼿이 지켰대서 누구를 나무랄 만한지 궁금하고, 누구를 나무란다 한들 아프게 여기라는 뜻에서 나무랄까 궁금해요.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바빠요. 아이들 또한 스스로 좋아하는 놀이를 즐기느라 바빠요. 서로 바쁘지만, 바쁜 틈을 쪼개거나 바쁜 일손과 놀잇감을 내려놓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잘 쓰는 시와 잘 못 쓰는 시는 가를 수 없어요. 스스로 좋아서 쓰는 시라면 넉넉해요. 스스로 좋아서 즐기는 놀이일 뿐, 잘 해야 좋은 놀이가 되지 않아요. 곧, 잘 찍어야 좋은 사진이 되지 않아요. 잘 찍으려고 사진 한길을 걷지 않아요. 스스로 삶으로 녹여내며 즐기려고 한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뿐이에요.


  그러니까, 운전면허증이 있대서 자동차를 잘 몰지 않습니다. 운전면허증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아름답게 몰지 않습니다. 면허증은 아무것 아니에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사진을 찍을까요. 사진학과 수강증이 있어야 사진으로 작품을 빚을까요. 나라밖 어디로 유학을 다녀왔든, 이름난 사진쟁이 아무개한테서 무언가 배웠든, 사진길을 걷는 삶하고는 조금도 이어지지 않아요. 사진기를 손에 쥐어 들여다보는 사람도 나요, 사진기 단추를 눌러 사진 한 장 빚는 사람도 나예요. 더 배웠건 덜 배웠건, 나이가 많건 적건, 이름이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사진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사진기를 쥔 사람 삶 그대로 사진을 빚어요. 사진기를 움켜쥔 사람 생각 그대로 사진이 태어나요. 사진기를 감싸고 보듬는 사람 눈길과 눈높이 그대로 사진이 거듭나요.


  강운구 님은 사진책 《저녁에》를 내놓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저녁에’ 느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동무들을 불러 막걸리 한 잔 돌리며 사진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거나 눕혀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줄 수 있습니다. 저녁에 일찌감치 잠들며 이듬날 새 하루를 그릴 수 있습니다. 저녁에 맛난 밥 한 그릇 지어 먹고 기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저녁에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저녁에 내 한삶을 찬찬히 짚을 수 있습니다. 저녁에 도시 한복판을 거닐 수 있고, 저녁에 시골 들길에 조용히 설 수 있어요.


  나는 저녁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한가을이거든요. 한여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던 저녁이에요. 한봄에는 제비들 처마 밑에서 지저귀다 잠드는 소리를 듣던 저녁이에요. 겨울 저녁에는 어떤 소리가 나한테 찾아올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더 먹으며 저녁에 어떤 소리를 주고받을 만할까요.


  좋은 저녁도 궂은 저녁도 없습니다. 멋진 저녁도 슬픈 저녁도 없습니다. 해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기웁니다. 달은 늘 천천히 떠오릅니다. 어스름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찾아듭니다. 별빛은 한결같이 온누리를 감쌉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일 사람한테만 다를 수 있는 저녁입니다. 끝없이 문명을 좇고 개발을 일으키는 사람 스스로 다르게 여기는 저녁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도시에는 저녁이 없습니다. 오늘날 도시에는 ‘시계 초침 분침 시침’만 있어요. 오늘날 도시에는 저녁도 밤도 새벽도 아침도 낮도 없습니다. 오로지 ‘숫자’만 있어요. 저녁 없는 저녁이 되는 도시예요. 저녁 잃은 저녁을 맞이하는 도시사람이에요. 도시에서 살아가며 저녁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을 돌아다니며 어떤 저녁을 맞이할까요. 도시에서 지내며 저녁을 잊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하고 놀며 어떤 저녁을 생각할까요.


  내 동무 삶에 이야기 하나 있습니다. 내 삶에 꿈 하나 있습니다. 내 동무 삶에 스며들어 빙그레 웃습니다. 내 삶에 씨앗 하나 심어 꿈을 키웁니다.


  스스로 눈을 뜨며 바라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사진을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잃으면서 사진을 잃습니다. 이야기를 사랑하면서 사진을 사랑합니다. 이야기를 등지면서 사진을 등집니다. 사진책 《저녁에》에 담긴 이야기를 저녁에 곰곰이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나, 우리 아이들한테 동무가 될 아이들 누구나, 새로우며 좋고 즐거운 저녁을 누릴 수 있는 지구별을 꿈꿉니다. (4345.9.26.물.ㅎㄲㅅㄱ)

 


― 저녁에 (강운구 사진,열화당 펴냄,2008.9.20./3만 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