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
 [책읽기 삶읽기 116]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144쪽).”고 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를 읽습니다. 신영복 님은 당신 글씨가 걸린 ‘변방’을 찾아 먼길 나들이를 했다는데, ‘변방(邊方)’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 (괴산) 거리의 가로등에도 고추와 임꺽정이 올라서 있다. 정작 소설 《임꺽정》의 문학적 위상이 어떤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고추를 먹으면 임꺽정처럼 힘이 넘친다는 마케팅의 소재로 남아 있을 뿐이다 ..  (11쪽)


  신영복 님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들어갔고, 감옥에서 스무 해를 살다가 나온 다음에는, 내처 서울 쪽에서 살아가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곧, 신영복 님한테 ‘한복판(중심)’은 서울이 되고, 고향 밀양은 ‘변두리’가 되었겠지요.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한동안 대학교를 다니거나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이내 대학교는 그만두고 책일 또한 모두 접고서 고향 인천으로 돌아갔다가, 고향에서도 멀어진 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곧, 나한테 한복판은 시골이 되고, 서울이나 인천은 변두리가 됩니다.


.. 우리가 찾아간 서정분교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놀라운 것은 학교 전체에서 풍겨 오는 풋풋한 흙냄새였다. 서울의 학교 운동장에는 없는 냄새였다 … (오대산 상원사)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  (40, 100쪽)


  서울이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내 삶터’는 변두리입니다. 부산에서든 대전에서든, 또는 춘천이나 순천이나 광주나 여수에서조차 ‘내 삶터 시골’은 변두리예요. 더욱이,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칠 때에, 고흥읍에서 보아도 우리 식구 깃든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은 한참 깊숙하게 들어간 ‘외딴 곳(변두리)’이에요. 이제 우리 마을 앞으로도 군내버스가 다니지만, 그리 멀지 않던 예전까지 우리 마을 앞에는 찻길이 없어 어떠한 자동차도 못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우리들한테 시골자락은 ‘한복판’입니다. 우리들한테 서울이나 도시는 ‘외딴 곳(변두리)’입니다. 우리 식구는 한복판인 시골자락에서 웃고 떠들며 노래하며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굳이 외딴 데까지 찾아갈 일이 없어요.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며 냇물을 즐기는 한복판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풀을 뜯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멧새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시골자락 한복판 보금자리가 예쁘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을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자라나는 새 목소리를 헤아립니다. 시골에서 무럭무럭 크는 새 사랑을 그립니다. 시골에서 시나브로 일구는 새 손길과 눈길을 돌아봅니다.


  깊은 가을날 좋은 볕과 바람과 소리와 빛깔과 내음을 마시고 먹습니다. 마을마다 천천히 익는 감알을 바라보며 배부릅니다. 날마다 더 짙고 환하게 무르익는 나락을 바라보며 흐뭇합니다. 내가 안 심고 내가 안 베는 나락이지만,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나락논이 참 곱다고 느낍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을 빻아 밥을 지어 먹겠지요.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에 깃든 해님과 달님과 물님과 별님과 바람님과 흙님을 몸으로 받아들이겠지요. 시골에서 지내든 도시에서 지내든, 모든 고운 넋 깃든 나락 한 알을 먹으며 스스로 우주가 되고 스스로 빛이 되겠지요.


..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오죽헌은 그 규모부터 대궐같이 성역화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홍명희) 문학비는 주차장이 되어 있는 텅 빈 제월대 광장 가장자리에서 혼자 가을볕을 안고 있었다 ..  (56, 79쪽)


  이야기책 《변방을 찾아서》는 ‘변방’ 또는 ‘변두리’를 찾아간다고 글을 쓰지만, 시골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그예 ‘시골’ 나들이를 하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요, 시골 나들이예요. “시골을 찾아서” 도시를 떠나요. 아주 살짝 시골에 머물다 도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흙내음’을 맡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마시다가는 ‘냇물’에 손을 적시고 ‘나무그늘’을 누리려고 시골로 와요. 시골에 참말 살짝 머물다가 이내 도시로 간다 하지만, 시골에서 슬기를 깨우치고 생각을 빛내요.


..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뜻있는 이들이 참다운 한복판에 삶터를 꾸리면 기쁜 일이 되리라 생각해요. 겉치레나 겉꾸밈 같은 한복판이 아니라, 참답고 착하며 아름다운 한복판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뜻있는 이들 좋은 보금자리가 좋은 마을이 되고 좋은 지구별 쉼터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기쁘리라 생각해요.


  도시가 복닥거리고 어수선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복닥거리면서 어수선하게 살아가잖아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툰다 하면서, 막상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투면서 살아가고 말아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믿고 아끼며 지내기를 빌어요. 서로 돕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좋아하고 서로 웃으며 지내기를 빌어요.


  시골에서 만나요. 나는 이쪽 시골에서 살아갈 테니, 당신은 저쪽 시골에서 살아가셔요. 서로서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실을 다녀요. 나는 오늘 걸어서 당신한테 찾아갈 테니, 당신은 모레에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오셔요. 나는 또 글피에 당신한테 자전거수레에 아이들 태우고 마실을 갈 테니, 당신은 또 이레 뒤에 식구들과 들길을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서 찾아오셔요. 환하게 밝는 아침햇살 맞으며 길을 나서요. 어둑어둑 땅거미 느끼며 밥 한 그릇 나누어요. (4345.9.25.불.ㅎㄲㅅㄱ)


―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글,돌베개 펴냄,2012.5.21./9000원)

 

(최종규 . 20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2-09-2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의 책인가요? 이 책 좋았는데...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그런거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 행복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

숲노래 2012-09-25 18: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밑줄을 그은 대목 몇 군데를 빼고는
'글쓴이가 있는 이곳(중심)'과 '글쓴이가 없는 저곳(변방)'이
어떻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좋은 삶을 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시골(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중심)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데,
시골(변방)에 올 때면 다들 시골(변방)이 좋거나 훌륭하다 말하지만,
정작 도시(중심)를 떠나 시골(변방)로 삶터나 일터를
옮기는 일은 없어요.

언제나 '여행 이야기'로만 남는다고 할까요.

여행 뒷이야기를 넘어
스스로 어떤 삶을 새롭게 빚는다 하는 느낌과 마음을
글에 드러내지 못한다면...
가볍게 읽고 덮은 다음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