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천천히 알아보며 즐긴다
나는 2000년부터 해마다 부산을 찾아갑니다. 부산에 아는 얼굴이 여럿 있기도 하지만, 아는 얼굴을 보러 찾아가는 부산은 아닙니다. 부산에는 골목골목 어여쁜 헌책방이 있기도 하고, 보수동에는 헌책방골목이 있습니다. 나는 보수동에 있는 헌책방골목을 비롯해서, 골목골목 깃든 어여쁜 헌책방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 부산을 찾아갑니다.
해마다 한 차례나 두 차례 찾아가면서 사진을 조금씩 찍습니다. 한 해에 필름사진 백오십 장에서 이백 장 즈음? 어느새 열 해 남짓 부산 나들이를 하니까 필름사진이 이천 장 즈음 모입니다. 나로서는 뜻한 일은 아니었으나 열 해 남짓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달라진 모습을 느낍니다. 어느 헌책방은 간판이 바뀌고, 어느 헌책방은 문을 닫습니다. 어느 헌책방은 새로 문을 열고, 헌책방마다 일꾼들 매무새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해마다 나이를 먹으니까요.
자리를 옮기는 헌책방을 봅니다. 어느 헌책방 할배는 그만 숨을 거둡니다. 어느 헌책방은 책꽂이를 바꾸고, 어느 헌책방은 새 일꾼이 들어옵니다. 이쪽 헌책방에서 여느 일꾼으로 일하다가 저쪽 골목에서 씩씩하게 새 가게를 차려 사장님이 된 분을 만납니다. 헌책방골목 이름이 차츰 널리 알려지면서 부산시청인지 중구청에서 골목 거님돌을 새로 깔아 줍니다. 이동안 보수동 한켠에 ‘헌책방 빌딩’이 하나 서며, 헌책방골목을 기리는 전시관이 생깁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좋아하는 무엇 하나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열 해이든 스무 해이든, 또 서른 해이든 마흔 해이든 줄기차게 찍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겠지요. 빛을 보고 그림자를 보겠지요. 맑은 날을 보고 흐린 날을 보겠지요.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을 보겠지요.
아이들 자라나는 흐름을 찍는 여느 어버이도 다큐멘터리 사진쟁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감 하나를 씩씩하게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가’, 곧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올해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사진잔치를 열며 붙일 사진을 고르다가, 2009년에 찍은 사진 한 장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그예 문을 닫은 헌책방 간판을 떼는 사진입니다. 옛 헌책방 한 곳 문을 닫으며 퍽 오랫동안 빈자리가 되었는데, 이 텅 빈 곳에 젊은 분이 새 헌책방을 열었어요. 그래서 나는 옛 헌책방 모습과 헐린 모습과 새 헌책방 모습을 여러 해에 걸쳐 몇 장씩 찍습니다. (4345.9.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