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8.31.
 : 자전거 손질하러 읍내마실

 


- 시골마을에서 자전거를 손질하기는 몹시 힘들다. 좀 깊이 들어간 시골자락이라면 더 힘들다. 스스로 손질하고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내 자전거를 손질하러 읍내 자전거집으로 가 보기로 한다. 갈아야 할 부속이 있고, 두 아이를 태우고 읍내까지 15킬로미터 길을 달려 버릇해야, 고흥 이곳저곳 신나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한여름도 늦여름도 모두 저무는 가을 어귀이기에 날이 좋다.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이런 날은 삼십 킬로미터쯤 달려도 괜찮겠지. 물과 먹을거리를 챙긴다. 수레는 여러 가지 챙길 자리가 넉넉해 좋다. 다만, 아이 둘과 수레와 짐을 기운차게 끌 수 있다면야 좋다.

 

- 첫 고개 비봉산 기슭을 오른다. 아이 둘 태우고 몇 차례 넘어서 그런지 오늘은 가뿐하다. 가뿐하네, 하고 생각하면서, 나이와 자전거는 그리 대단한 일 아니라고 느낀다. 스스로 즐길 줄 아느냐가 대단한 일이 되리라.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추스르면 된다. 마음을 좋게 돌보고 몸을 사랑스레 보살피면 된다.

 

- 봉서마을과 봉동마을, 또 고당마을을 지나며 비로소 내리막이 된다. 뒷거울을 보니 작은아이가 어느새 잠들었다. 집에서 개구지게 놀더니 기운이 다한 듯하다. 너는 아버지가 고갯길을 영차영차 오르는 줄 아느냐 모르느냐.

 

- 포두면을 달린다. 내리막이 좋다. 포두면 소재지를 지나면 바야흐로 오르막이 천천히 펼쳐진다. 여기부터 읍내까지 오륙 킬로미터 비스듬히 오르막이다가는 포두면에서 고흥읍으로 바뀌는 고갯마루 언저리에서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된다. 잠든 작은아이가 안 깨기를 바라며 씩씩하게 장수마을 지나 호형마을 넘어가는 고갯마루를 달리는데 가쁜 숨이 턱에 닿는다. 그냥 더 달리느냐 쉬느냐 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살짝 쉬기로 한다. 나는 안 쉬고 고갯마루를 넘을 수 있지만, 수레에 탄 아이는 햇볕을 고스란히 쬐며 고갯길을 천천히 지나야 한다. 목이 타리라. 마침 작은아이도 잠에서 깬다. 두 아이한테 물을 먹이고 주전부리를 조금 준다. 나는 숨을 고르려고 물을 마시지 않는다.

 

- 고갯마루를 넘으니 살 만하다. 오르막을 지나며 다리가 굳는다면 내리막을 달리며 다리가 풀린다. 고갯길은 고개라서 천천히 달린다. 내리막은 내리막이니 시원스레 싱싱 달린다. 올라가기란 얼마나 오래 걸리며 힘든가. 내려가기란 얼마나 빠르며 수월한가. 멧자락 타는 사람은, 또 무언가 목표를 세우며 달리는 사람은, 왜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 할까. 더 빨리 내려오고 싶어서 그렇게 높이 올라가려고 할까. 얼마를 올라갈 수 있든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하나도 안 반가우리라 느낀다.

 

- ‘박지성공설운동장’ 알림판을 본다. 이제 읍내에 거의 다 왔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고흥사람이라며 공설운동장 이름에 ‘박지성’을 넣는다. 고흥에는 김일체육관도 있고, 천경자미술관도 있다. 다만,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기는 하되 얼마나 문화와 예술과 삶을 곱게 맺거나 잇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와 푸름이와 어린이가 고흥에 뿌리내리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마련하는 정책이나 모습은 거의 안 보인다. 모두들 서울에 있는 대학교나 회사나 공장으로 가려 한다. 시골 고흥에 남아 시골살이를 누리며 시골마을을 알차며 튼튼히 일구려는 젊은 빛은 잘 안 보인다.

 

- 자전거집에 닿는다. 자전거를 손질한다. 오래된 손잡이를 간다. 하도 오래되어 고무가 다 녹던 옛 손잡이를 뗀다. 여덟 해째 내 손과 하나되어 숱한 길을 달린 손잡이여, 이제 고이 쉬려무나.

 

- 읍내 과일집에 들른다.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슬슬 집으로 돌아간다. 아까 내리막이던 길은 오르막이 된다. 오르막이던 길은 내리막이 된다. 길가에 잠자리와 나비 주검이 매우 많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이여, 잠자리와 나비가 당신 찻머리와 유리창에 부딪혀 얼마나 많이 숨을 거두는 줄 아는가. 당신 차바퀴에 사마귀와 메뚜기와 방아깨비와 개구리와 뱀이 얼마나 많이 밟혀 숨을 거두는 줄 아는가. 작은 짐승과 벌레들 주검을 내 자전거까지 밟지 않으려고 비껴 달리느라 애먹는다.

 

- 포두면 길두리 끝자락에 선 ‘POSCO 패밀리수련원’ 안내팻말을 본다. 아주아주 자그맣게 세운 안내팻말은 뭘까 궁금하다. 안내팻말 구실을 하자면 커다랗게 세워야 하지 않나. 거의 안 보이도록 작게, 또 자잘한 글씨로 세운 안내팻말은 무얼까. 포스코 회사는 포항사람이 반대해서 포항에 지으려 하던 화력발전소를 전남 고흥과 해남에 나누어 지으려는 정책을 꾀하는데, 이 ‘포스코 패밀리수련원’과 화력발전소 정책은 서로 어떻게 이어졌을까.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에 발전소를 세워서 써야지,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해맑은 시골마을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세우고 송전탑을 끝없이 박으려 할까. 포항은 발전소 공해가 없어야 하고, 고흥이랑 해남은 발전소 공해가 있어도 되나. 해맑은 시골마을 한복판에 화력발전소와 송전탑이 서면, 이제 도시사람은 김도 바지락도 꼬막도 조개도 해삼도 멍게도 전어도 복어도 갑오징어도 장어도, 또 유자도 석류도 서숙도 유기농곡식도 더는 먹을 수 없는 줄 모르는가. 시골마을 물과 바람과 흙이 더러워지면, 도시사람 먹을 모든 것이 더러워지는 줄 모르는가.

 

- 작은아이는 다시 잠든다. 큰아이도 아주 졸린 눈치이지만 졸음을 꾹 참는다. 집에 닿는다. 두 아이 태운 자전거는 삼십 킬로미터 길을 두 시간 동안 달렸다. 잘 달렸다. 집부터 발포 바닷가까지는 칠 킬로미터이니까, 아이들 데리고 바다로 마실 다녀오는 길은 한결 수월할 수 있겠지. 아이들아, 다음에는 바다로 데려가 줄게. 오늘처럼 읍내 다녀오는 길은 괜히 자동차하고 많이 부대껴야 해서 썩 재미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