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과 ‘하늘’
[말사랑·글꽃·삶빛 28] 아이들과 즐겁게 쓸 말이란

 


  아이들한테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위를 올려다봅니다. 낮에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느끼고, 밤에는 까맣게 어두운 하늘을 느낍니다. 하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폴짝 뛰어올라 감나무 가지를 건드린 데부터 하늘일까요. 아버지 어깨에 올라타고 붙잡는 처마부터 하늘일까요.


  사람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과 개미가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개구리와 풀꽃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이랑 새들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나는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는 ‘하늘’이라는 낱말만 썼습니다.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여섯 해를 다니면서 ‘하늘’ 말고 ‘공중’하고 ‘허공’이라는 낱말을 어른들한테서 듣기는 들었으나, 이 낱말, 곧 한자말 ‘공중’이랑 ‘허공’이 하늘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모두 같은 하늘이지만, 굳이 이렇게 저렇게 금을 갈랐을 뿐 아닌가 싶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 세 해를 다니고, 또 세 해를 다닙니다. 이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두툼해지고 가짓수도 늘어납니다. 이제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문학을 가르칩니다. 우리들이 배우는 문학책에는 ‘하늘’이라는 낱말이 거의 안 나타납니다. ‘공중’과 ‘허공’이라는 한자말에 이어 ‘창공’이라는 한자말이 으레 나타납니다. 학교에서 한국문학을 배우며 더 궁금합니다. 왜 문학을 하는 어른들은 ‘하늘’이라는 낱말은 안 쓰고 이런저런 한자말만 자꾸 쓰려고 할까.


  어느 날 내 궁금함을 풀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맨 먼저 ‘하늘’을 찾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하늘’을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으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공중(空中)’을 찾아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곳”으로 풀이합니다. ‘허공(虛空)’을 찾아봅니다. “텅 빈 공중”으로 풀이합니다. ‘창공(蒼空)’을 찾아봅니다. “= 창천(蒼天)”으로 풀이합니다. ‘창천(蒼天)’을 찾아봅니다. “맑고 푸른 하늘”로 풀이합니다.


  이제 낱말뜻을 살피며 생각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곳이 ‘공중’인데, “텅 빈 공중”이 ‘허공’이라는군요. ‘공중’이라는 낱말부터 “빈 곳”을 가리키는데 “텅 빈 공중”이란 어떤 데일까요. 이와 같은 말풀이는 말이 되는 말풀이라 할 만할까 알쏭달쏭합니다. ‘창공’은 ‘창천’과 같은 낱말이라 하는데 “맑고 푸른 하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하늘이 맑을 때에는 ‘파란 빛깔’이 눈부십니다. 하늘이 파랗게 눈부실 때에는 ‘맑’습니다. 그러니까, “맑고 푸른 하늘”은 하늘이 아주 맑거나 아주 파랗다는 소리입니다. 그나저나, 하늘빛은 ‘파랑’이지 ‘푸름’이 아니에요. 그런데 국어사전에서는 ‘푸른’ 하늘이라고 적습니다.


  하나하나 간추립니다. 말풀이를 다른 듯 적지만, ‘공중’과 ‘허공’은 같은 낱말입니다. 그리고, 두 낱말은 ‘하늘’을 가리킬 뿐입니다. ‘창공’과 ‘창천’은 ‘파란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 날 나는 다시금 생각합니다. 쉽게 하면 될 말을 왜 어른들은 쉽게 안 할까. 이윽고 또 한 가지 생각합니다. 한자말로 ‘창공’이랑 ‘창천’이라고 적으면서, 왜 한국말로는 ‘파란하늘’이라 안 적을까. 한국말로도 ‘파란하늘’을 한 낱말로 삼아야 올바르지 않을까.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 쓴 《닐스의 신기한 여행》(오즈북스,2006) 1권을 읽다가 44쪽에서 “공중에서 들이마시는 공기가 이토록 신선하고, 좋은 땅 냄새와 소나무 냄새까지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같은 대목을 봅니다. 얼추 서른 해 앞서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 그무렵에는 이런 번역글을 옳게 가누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번역글 첫머리에는 “공중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라 말하고, 번역글 뒤쪽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이라 말해요. 그런데 이 글에서 ‘공중’과 ‘하늘’은 같은 데를 가리켜요. 같은 데를 가리키는 낱말인데 두 낱말을 섞어서 써요.


  아이들과 즐겁게 쓸 말은 어떤 말일 때에 참으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요. 어린이가 푸름이가 되고, 또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즐겁게 쓰면서 생각을 북돋우며 꿈을 가꾸도록 돕는 말은 어떤 말일 때에 더없이 즐거우면서 환하게 빛날까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며 늘 헤아려 봅니다. 두 아이와 날마다 아침하늘과 저녁하늘 올려다보며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나는 ‘하늘’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내 나름대로 ‘아침하늘’이나 ‘새벽하늘’이나 ‘밤하늘’ 같은 낱말을 지어서 씁니다. 밤에는 ‘별하늘’이라고도 하고, 구름이 많이 낀 날은 ‘구름하늘’이라고도 합니다. 동이 틀 무렵에는 ‘붉은하늘’도 되고 ‘노란하늘’도 되며 ‘보라하늘’도 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결에 따라 달라지는 빛깔을 헤아리며 하늘빛을 헤아립니다. 비오는 여름에는 ‘비하늘’이고, 눈오는 겨울에는 ‘눈하늘’이에요. 하늘을 바라보며 논둑을 걷습니다. 하늘을 마주보며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4345.9.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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