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 - 리지앙에서 라다크까지 이어지는 시간
박정호 글.사진 / 플럼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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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사진으로 안 찍어도 돼요
 [찾아 읽는 사진책 109] 박정호,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플럼북스,2009)

 


  사진을 찍는 까닭이 있다면, 굳이 사진으로 찍으면서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안 찍는 까닭이 있다면,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누리는 모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살아가며 누리는 숱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이야기는 내 눈을 거치고 내 마음을 지나 내 사진으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누리는 삶은 내 몸을 거치고 내 가슴을 지나 내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사진으로 몇 장 찍어서 남기기에 한결 돋보이는 모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름답게 누리는 삶일 때에는 사진으로 찍거나 안 찍거나 언제나 아름답다 느낄 삶이에요. 사진으로 보기에 예쁘장하대서 ‘아름다울 내 삶’이 되지는 않아요. 사진으로 남기기에 오래오래 이어가는 ‘좋은 기록’이 되지는 않아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 삶을 예쁘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 삶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으로 함께 찍으며 즐겁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과 함께 지내며 흐뭇하기에 사진기 단추를 꾸준하게 누릅니다.

  큰아이가 글씨 쓰기를 날마다 꾸준히 한 끝에 이제 아이 이름을 스스로 또박또박 적을 줄 압니다. 아이 스스로 아이 이름을 예쁘게 적고 나니 아이 손에는 연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손에 연필을 쥐고, 어디에다가도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입니다. 아이는 손으로 빚는 꿈과 삶과 사랑을 느끼며 즐겁습니다.

 

 

 


  박정호 님 여행사진책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플럼북스,2009)을 읽습니다. 박정호 님은 지구별 곳곳을 오래도록 돌아다닙니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기에 이렇게 지구별 곳곳을 오래도록 돌아다니는지 궁금합니다. 예쁜 모습을 보고 싶을까요? 이제껏 안 알려진 모습을 보고 싶을까요? 오래된 삶을 오늘날까지 고이 잇는 모습을 보고 싶을까요?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짓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싶을까요?


  박정호 님은 “하루 종일 자금성을 돌았지만 남는 건 입장권분. 고궁이 따분하다는 건 세계 어디나 똑같아(25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경복궁을 거닐 때에도 똑같이 따분하다고 느낄까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누군가는 옛궁궐에서 아름다움을 읽으며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리고, 박정호 님처럼 누군가는 옛궁궐에서 따분함을 읽으며 아무것도 사진으로 안 담아요. 옛궁궐을 짓도록 숱한 사람을 부리던 권력자들 삶과 넋에서도 아름다움을 읽는 사람이 있고, 옛궁궐을 으리으리하게 지으며 권력을 부리던 이들 삶과 넋에서는 아름다움 아닌 슬픔이나 어리석음을 읽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중국 자금성이 돌로 지은 권력자 앞마당이 아니라 사람들 누구나 즐겁게 쉬거나 놀며 살아가는 숲이었다면, 권력자 아니고는 발을 디딜 수 없던 땅이 아니라, 사람과 풀과 나무와 짐승 모두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숲이었다면,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을까요.


  박정호 님은 “좋은 산을 만나면 걸었다. 어디를 간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85쪽).” 하고 말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좋은’ 산을 따로 살핍니다. 그러면, 박정호 님한테 ‘좋은’ 산은 어떤 산이 될까요. 어떻게 이루어진 숲이 있을 때에, 어떤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갈 때에, 어떤 나무가 자라고 어떤 새가 살며 어떤 해와 달이 뜰 적에 ‘좋은’ 산이라 가리킬 만할까요.

 

 


  어디를 가더라도 대수롭지 않다면, 굳이 나라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땅 곳곳을 누벼도 좋습니다. 섬을 돌고 멧자락을 돌아도 좋습니다. 도시를 돌고 시골을 돌아도 좋아요. 아파트 사이를 걷거나 골목길을 걸어도 좋아요. 저잣거리나 장마당을 찾아다닐 수 있어요. 구멍가게나 막걸리집을 찾아다닐 수 있어요. 예쁜 밭이나 우람한 나무를 만나러 다닐 수 있겠지요.


  꼭 ‘이름난’ 산을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꼭 ‘세계 오지’를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나한테 ‘느끼는 가슴’이 있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느껴요. 나한테 ‘생각하는 눈’이 있으면 어느 곳을 돌아다니더라도 생각이 샘솟아요.


  박정호 님은 “잘 모르니까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니까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는 것이다. 사진도 말과 같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찍히지도 않는다(243쪽).”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른 여행사진을 일컫는 말이 될 수 있지만, 박정호 님 사진을 스스로 밝히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박정호 님은 왜 사진을 찍을까요? 박정호 님은 왜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박정호 님은 왜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에 이런저런 말을 붙일까요? 박정호 님은 왜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이렇게 책까지 내놓을 생각을 할까요?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은 어떤 사진책이라 해야 좋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떤 삶을 밝히고, 어떤 삶을 사랑하며, 어떤 사람을 들려주려는 사진책이라 해야 좋을까 가누어 봅니다. 박정호 님은 “누구나 라다크에 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빛이 참 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린 동자승이나 나이 지긋한 노승이나 그들은 모두 같은 눈빛을 가졌습니다(326쪽).” 하고 말합니다. 곧 ‘맑은 눈빛’을 찾아 지구별을 여행하려는 뜻이요, 맑은 눈빛을 사진으로 곱게 담아서 사람들한테 맑은 숨결을 북돋우고 싶은 꿈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도 어른도 맑은 눈빛으로 살아갈 때에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도 글도 맑은 눈빛으로 이야기 한 자락 펼칠 때에 더없이 빛난다는 뜻을 드러내고 싶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내가 언제나 마주하면서 언제나 사진으로 담는 내 살붙이들 삶을 떠올리며 사진을 헤아립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대서 ‘이야기가 남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안 찍더라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애틋한 눈길일 때에 이야기가 남습니다. 내가 우리들이랑 부대끼는 하루를 글로 적는대서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고마우며 기쁜 나날인 줄 느끼거나 깨달으며 활짝 웃을 때에 비로소 새삼스러운 사랑이 샘솟고 아리따운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느낍니다.


  내 마음에 담습니다. 내 마음으로 읽습니다. 여기에서 살아가고 저기로 흐릅니다. 늘 같은 사람입니다. 서로 같은 사람입니다. 늘 같은 사랑입니다. 서로 같은 사랑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마을에서 저마다 다 같은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예쁜 목숨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가슴속에서 빛을 키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이 되어 사랑을 나눕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그저 찍을’ 뿐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면서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사진을 그저 찍을 뿐입니다. 멋진 모습을 따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거다!’ 할 때에 놓치지 않고 찍지 않습니다. 그저 찍을 뿐입니다. 활짝 웃으면서 찍습니다. 싱그러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저절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꿈이 참말 아름답다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4345.9.5.물.ㅎㄲㅅㄱ)

 


―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 (박정호 글·사진,플럼북스 펴냄,2009.5.10./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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