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얽힌 낱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나 스스로 안 좋아하는 책을 굳이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누가 선물해 주기 때문에 읽는 책은 없습니다. 내가 읽고 싶기에 읽는 책입니다.
나는 글로 된 책을 읽습니다. 그림으로 된 책도 읽습니다. 사진으로 된 책도 읽습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라는 울타리에 들지만,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엮었느냐에 따라 나눌 수 있고, 줄거리에 따라 나눌 수 있으며, 읽는 사람 나이에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새것인가 헌것인가에 따라 나누기도 하며, 쓰임새에 따라 나눌 수 있어요.
ㄱ. 헌책 그림책 만화책 잡지책 소설책 지도책 이야기책 역사책
ㄴ. 새책 사진책 인문책 철학책 어린이책 청소년책 노래책 수필책
책을 (ㄱ)과 (ㄴ)처럼 나누어 봅니다. 이렇게 나누는 뜻이 없다 할 수 있으나, 이렇게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굳이 이처럼 나누고 싶지 않지만,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ㄱ)과 (ㄴ)으로 나누어 봅니다. 그러니까, (ㄱ)은 ‘국어사전에 실린 책 낱말’입니다. (ㄴ)은 ‘국어사전에 안 실린 책 낱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국에서는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은 붙여서 적도록 하고, 국어사전에 안 실린 낱말은 띄어서 적도록 하는 맞춤법이 있어요. 그래서, (ㄱ)처럼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이라면 걱정없이 붙여서 쓰면 되는데, (ㄴ)처럼 국어사전에 안 실린 낱말일 때에는 골머리를 앓아요.
‘헌책’은 ‘헌책’처럼 붙여서 씁니다. 그런데 오래된 책과 갓 나온 책을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헌책과 새 책”처럼 띄어서 써야 한다면 어딘가 얄궂지 않나 궁금합니다. ‘그림책’과 ‘만화책’은 한 낱말이지만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은 한 낱말로 다루지 않으니 알쏭달쏭해요.
책을 말하는 적잖은 분들은 ‘그림책’이 한 낱말인 줄 모르고 ‘그림 책’처럼 띄어서 쓰기도 합니다. ‘이야기책’이 한 낱말인 줄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요즈막에 ‘인문책’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이 낱말 또한 국어사전에 안 실렸으니 ‘인문 책’처럼 적어야 올바르다 할 텐데, 이렇게 띄어서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문책’ 가운데 ‘역사책’은 붙여서 적도록 하나, ‘철학책’은 띄어서 적어야 올바르다고 해요. 문학을 다루는 책에서 ‘소설책’은 붙여서 적어야 올바르다 하면서, ‘수필책’은 띄어서 적어야 올바르다고 해요. 지도를 보여주는 ‘지도책’은 한 낱말이지만, 노래를 담은 ‘노래책’은 한 낱말이 아니라고 해요.
수많은 책이 나오고 온갖 책이 태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책을 가리키는 한국말 또한 새롭게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국어사전 한 권을 앞에 놓고 이 낱말은 이렇게 적고 저 낱말은 저렇게 적도록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일은 없어야지 싶습니다. 이제 ‘환경책’이라는 낱말을 널리 쓰고, ‘사진책’은 퍽 일찍부터 한 낱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씁니다. ‘과학책’이나 ‘놀이책’ 같은 낱말도 퍽 자주 써요.
‘-책’을 뒤에 붙이는 낱말도 날개를 달 노릇이요, ‘책-’을 앞에 붙이는 낱말도 날개를 달아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책날개’나 ‘책마을’부터, ‘책밭’이나 ‘책나라’나 ‘책누리’나 ‘책사랑’이나 ‘책마음’이나 ‘책씨’나 ‘책꽃’이나 ‘책지기’나 ‘책터’처럼, 마음을 북돋우고 생각을 여는 낱말을 알맞고 아름답게 쓰는 길이 환하게 터야지 싶어요. (4345.8.19.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