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2) 일루의 1 : 일루의 희망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일루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헬무트 뉴튼/이종인 옮김-헬무트 뉴튼,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을유문화사,2004) 85쪽

 

  “이런 상황(狀況)이었는데도”는 “이러했는데도”나 “이런 모습이었는데도”나 “이런 흐름이었는데도”로 손볼 수 있어요. “못하고 있었다”는 “못했다”로 손봅니다. ‘희망(希望)’은 그대로 써도 되고 ‘꿈’이나 ‘바람’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흔히 ‘꿈’과 ‘희망’은 다른 낱말로 여겨 버릇합니다만, 둘은 아주 다른 낱말은 아닙니다. ‘꿈’은 한국말이고 ‘희망’은 한자말이에요. ‘희망’ 말뜻은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입니다. ‘꿈’ 말뜻은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꿈 (2) = 희망’이에요. 한국말 ‘꿈’은 한결 깊으면서 넓은 낱말이라 할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꿈’으로 적을 만할 뿐 아니라, 이 대목에서는 ‘꿈 (3)’으로 보아야 한결 알맞으리라 느껴요.


  “일루의 희망”을 살펴봅니다. ‘일루(一縷)’ 뜻풀이를 찾아보면 “한 오리의 실이라는 뜻으로, 몹시 미약하거나 불확실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이르는 말. ‘한 올’로 순화”라 나옵니다. ‘한 올’로 고쳐써야 할 낱말이라는 소리인데, 가만히 생각하면,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이라는 뜻이고, ‘한 올’ 아닌 ‘일루’처럼 적바림하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일루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 한 가닥 꿈을 버리지 못하고
→ 가느다란 꿈을 버리지 못하고
→ 가느다란 줄을 버리지 못하고
 …

 

  국어사전을 살피면 “일루의 광명”이나 “일루의 잔명”이나 “현재로서 우리에게는 일루의 희망도 없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한국말로 알맞게 가다듬으면, “한 줄기 빛”과 “얼마 안 남은 목숨”이나 “이제 우리한테는 꿈이 조금도 없다”처럼 쓸 수 있어요.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이기는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고 두 번 거듭 헤아리면서 뜻과 느낌을 살릴 때에 슬기롭게 쓸 수 있습니다. 꿈이나 희망이 한 올조차 없다 하는 만큼, “한 줄기”조차 없거나 “한 가닥”조차 없습니다. 한 줄기나 한 가닥조차 없으니 “거의” 없거나 “제대로” 없거나 “조금도” 없는 셈입니다.

 

 보이지 않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잡을 수 없는 꿈을 잡으려 하고
 사라지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사라진 꿈을 붙잡으려 하고

 

  내 삶에 드리울 빛줄기를 생각합니다. 고운 삶줄기는 스스로 생각하며 빚습니다. 내 말에 비칠 빛줄기를 헤아립니다. 고운 말줄기는 스스로 헤아리며 이룹니다.


  덧없는 꿈이 아닌 맑은 꿈을 꿉니다. 부질없는 꿈이 아닌 사랑스러운 꿈을 꿉니다. 덧없는 말이 아닌 맑은 말을 바랍니다. 부질없는 말이 아닌 사랑스러운 말을 기다립니다. (4346.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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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이었는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한 줄기 꿈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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