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이마을 사람들 - 실향민의 섬, 속초 청호동
엄상빈 지음 / 눈빛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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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은 역사이자 기록
 [찾아 읽는 사진책 106] 엄상빈, 《아바이마을 사람들》(눈빛,2012)

 


  모든 사진은 역사이자 기록입니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를 찍었건, 이 사진 하나는 역사이자 기록이 됩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대통령 아무개 씨를 2012년에 찍은 사진이더라도, 이 사진 하나는 2022년이나 2032년이나 2112년에 역사이자 기록으로 드러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아이들 어버이가 값싼 사진기로 아이들 노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더라도, 이 사진 하나는 2042년이든 2052년이든 언제가 되든 역사이자 기록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사진작가가 찍었기에 기록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자가 찍었기에 사건이나 역사나 사회나 보도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찍어도 사진이고, 누가 찍은 사진이더라도 기록이며, 누가 찍어 기록이 된 사진이더라도 역사입니다.


  누군가 1950년대에 찍은 사진도 기록이요 역사입니다.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이나 1970년대에 찍은 사진뿐 아니라, 1980년대나 1990년대에 찍은 사진도 기록이자 역사입니다. 더욱이, 2000년대나 2010년대에 찍은 사진도 기록이자 역사예요. 아니, 바로 어제 찍은 사진도, 바로 오늘 찍는 사진도, 모두 기록이자 역사예요.

 


  다만,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생각할 때에 기록이나 역사가 됩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고 찍는다면 ‘사진’조차 되지 않습니다. 동무하고 즐겁게 놀면서 찍는 사진 한 장일 때에 비로소 좋은 이야기이자 기록이며 역사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들하고 살가이 부대끼며 찍는 사진 한 장일 때에 바야흐로 좋은 이야기이면서 기록이 되고 역사로 거듭나요.


  대통령 취임식을 찍는대서 기록이나 역사는 아니에요. 새만금이나 4대강을 찍었기에 기록이나 역사이지는 않아요. 내 마음속으로 샘솟는 이야기에 사랑 한 자락 담아서 사진기를 손에 쥘 때에 비로소 이야기가 태어나요. 비로소 이야기가 태어날 때에 시나브로 기록이나 역사라는 옷을 입어요.


  엄상빈 님이 빚은 사진책 《아바이마을 사람들》(눈빛,2012)을 읽습니다. 사진쟁이 엄상빈 님은 책끝에 “1983년부터 청호동의 무엇을 어떻게 사진에 담아내느냐 하는 숙제를 안은 채, 사진 촬영을 위해 청호동을 건너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호동 구석구석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그곳의 손때 묻은 흔적들은 사진이 되기에 충분했다(148쪽).” 하고 말합니다. 강원도 속초 청호동을 찍었기에 그곳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담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청호동 옆 다른 마을을 찍었어도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담기 마련입니다. 그저,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스스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엄상빈 님으로서는 강원도 속초 청호동에서 당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느꼈기에, 이곳 어디를 가더라도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며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서울 종로에서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며 사진기를 쥘 테지요. 누군가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누군가는 인천 골목길에서, 누군가는 제주섬 오름에서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테지요.


  경기 수원에서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사람이 있고, 경기 수원에 있으나 아무 냄새를 못 느낄 사람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진천에서, 경상북도 문경에서, 전라남도 구례에서, 경상남도 통영에서,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냄새를 느낍니다. 또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냄새를 못 느낍니다.


  냄새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빚고 이야기를 빚으며 사랑을 빚습니다. 냄새를 못 느끼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홀가분하게 사진기를 손에 쥐지 못하고 말아, 사진도 이야기도 사랑도 못 빚어요.


  엄상빈 님은 “그때(1980년대) 힘들게 찍어 둔 이발소, 담배 가게, 오징어 덕장, 양복점, 가게 간판, 갯배, 좁은 골목길, 안방, 부엌 그리고 손바닥만 한 조개잡이 목선 등 오래전 사진들이 청호동의 진짜 모습 같아 정겹다(149쪽).”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참모습’이란 따로 없어요. 1980년대에 찍은 사진이라서 2010년대에 더 돋보일 만한 사진이지는 않아요. 1980년대에 청호동을 드나들며 느낀 사랑과 믿음과 꿈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기에, 그무렵 찍은 사진이 ‘참모습’이라 느끼도록 좋습니다. 곧, 2010년대인 오늘 청호동에서 마을사람들 사랑과 믿음과 꿈을 느끼며 사진을 찍는다면, 바로 오늘 찍는 사진이 ‘참모습’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좋아요.

 

 

 


  가만히 보면, 옛날도 오늘도 따로 없어요. 어제와 모레가 따로 없어요. 예순 해를 살아온 분한테 1980년대와 2010년대는 무엇이 다를까요. 여든 해를 살아온 분한테 1970년대와 2000년대는 어떻게 다를까요.


  애써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굴사진으로 담아야 하지 않아요. 1980년대이든 199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늘 마주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를 얼굴사진으로 담아도 돼요. 애써 벽에 세워 얼굴사진으로 담지 않아도 돼요. 바다에서 일하고 골목에서 뛰놀며 집에서 살림하는 모습을 삶사진으로 담아도 돼요.


  꼭 어떤 틀을 맞추어 담아야 ‘기록사진’이나 ‘역사사진’ 노릇을 하지는 않아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가 하고 느끼면서 찬찬히 생각할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며 역사를 남겨요. 사진쟁이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느끼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진기 아닌 촬영기로 마을 구석구석 다리품을 팔면서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도 영화도 다큐도 기록도 역사도 나타나지 않아요.

 


  엄상빈 님은 “이제는 ‘관광’이라는 경제 논리에 힘입어 예전 모습의 철조망은 대부분 철거되었다. 앞을 향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케케묵은 40∼50년 전 무장공비 사건을 내세워 반공과 안보의 명분으로 삼던 부끄러운 과거를 이제는 사진으로나 볼 일이다(150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이 나라 정치권력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을 가로막기 일쑤였어요. 남녘과 북녘이 서로 으르렁거리도록 내몰았어요. 남녘 안쪽에서도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학교와 학교 사이에서,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는 결보다는 툭탁툭탁 치고받으며 겨루는 울타리를 쌓았어요. 지난날에는 ‘반공’과 ‘안보’였으면 이제는 ‘관광’과 ‘경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바보로 내몰아요. 바보스러운 구렁텅이에서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며 ‘사랑하는 삶’을 찾아 사진을 찍기란 무척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데, 내 사진에 담기는 이웃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예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웃 삶은 남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사진으로 담는 모습은 멋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놀라운 모습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삶 모습이에요. 곧, 내가 살아가며 꿈꾸는 모습을 내 사진으로 새롭게 빚어요.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꿈을 사진기를 빌어 새삼스레 나타내요.


  누군가는 이것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저것을 보여주겠지요. 사진책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보여줄까요. 사진책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삶 어떠한 사랑 어떠한 길을 보여줄까요.


  ‘실향민의 섬’이라 느끼면 참말 ‘실향민의 섬’입니다.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리며 사랑을 꽃피우는 마을’이라 느끼면 참말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리며 사랑을 꽃피우는 마을’입니다. 나는 내 사랑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 꿈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 사진에 담긴 사람들과 마을은 늘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4345.7.25.물.ㅎㄲㅅㄱ)

 


― 아바이마을 사람들, 실향민의 섬 속초 청호동 (엄상빈 사진,눈빛 펴냄,2012.3.26./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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