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말사랑·글꽃·삶빛 21] 한국사람이 쓰는 ‘전문 낱말’

 


  신발 파는 가게는 ‘신집’입니다. 그러나 신발을 파는 어느 가게는 ‘신집’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습니다. ‘제화점(製靴店)’이라는 한자를 써서 이름을 달았습니다. 요즈음에는 ‘슈샵(shoe shop)’이나 ‘슈스토어(shoe store)’라는 영어를 써서 이름을 붙이는 곳이 꽤 많다 합니다.


  밥을 마련해 주기에 ‘밥집’입니다. 그러나 웬만한 여느 가게는 ‘식당(食堂)’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어느 가게는 ‘요리점(料理店)’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어느 가게는 ‘레스토랑(restaurant)’이나 ‘패밀리 레스토랑(family restaurant)’이라는 영어를 씁니다. 구실은 밥을 파는 가게이지만, 애써 한자말이나 영어를 빌어 무언가 전문스럽다 하는 대목을 가르곤 합니다.


  자동차는 ‘자동차’라 하지만, 날쌔고 갸름하게 만들었다는 자동차는 ‘스포츠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자동차를 한국 아닌 서양에서 만들었으니, 어딘가 다른 자동차라 할 때에, 서양에서는 서양말로 다른 이름을 붙였겠지요. 그런데,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붙인 ‘스포츠카(sports car)’라는 이름은 하나도 전문스럽지 않습니다. 영어를 쓰는 영국이든 미국이든 ‘스포츠’나 ‘카’라는 낱말은 아주 흔하며 너른 쉬운 낱말입니다.


  옷집에서 옷을 따로 맞춘다 할 때에는 내 몸 크기를 요리조리 줄자로 잽니다. 이른바 허리·가슴·엉덩이 크기를 잽니다. 그런데, 옷을 짓든 무언가 남다르다 하는 일을 하든, 스스로 전문 직업에 몸담았다 하는 이들은 ‘허리·가슴·엉덩이’ 같은 낱말을 안 씁니다. ‘웨이스트·바스트·히프(waist·bust·hip)’라는 영어를 씁니다. ‘웨이스트·바스트·히프’는 전문 낱말이 아닌 그저 영어일 뿐이나, 이 영어 낱말을 쓰는 이들은 ‘웨이스트·바스트·히프’를 꼭 전문 낱말처럼 삼습니다. 한국말 ‘허리·가슴·엉덩이’는 전문 낱말로 여기지 않습니다.


  《손석춘-10대와 통하는 미디어》(철수와영희,2012)라는 책을 읽다가 131쪽에서 “광고는 이미지와 글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행복 또는 이익을 약속하고”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이 글월을 한동안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글을 쓰신 분은 ‘이미지·글’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한 가지 낱말은 영어로 ‘이미지(image)’로 적고, 다른 한 가지 낱말은 한국말로 ‘글’이라 적습니다.


  어떤 분은 이 같은 대목에 ‘텍스트(text)’라는 영어를 쓰곤 합니다. ‘이미지·텍스트’처럼 적으면서, 두 낱말은 영어라기보다 전문 낱말이기 때문에, 딱히 번역할 만한 낱말이 없기도 하고, 따로 번역할 수도 없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야 아주 스스럼없이 ‘이미지·텍스트’처럼 쓸 테지만, 러시아말을 쓰거나 독일말을 쓰거나 네덜란드말을 쓰는 나라에서는 어떤 낱말을 쓸까요. 이들 나라에서도 영어로 생각과 마음을 나타낼까요.


  저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말로 생각과 마음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저는 ‘그림·글’이라는 한국말을 쓰고 싶습니다.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이미지·텍스트’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 저는 ‘그림·글’로 옮겨서 받아들입니다. 제가 쓰는 ‘그림·글’이라는 낱말은 영어로 옮기며 ‘이미지·텍스트’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이라는 낱말이나 ‘글’이라는 낱말은 무척 쉽고 널리 쓰는 낱말이면서, 어느 한 가지를 깊고 넓게 담는 낱말이기도 해요.


  종이에 붓으로 무언가를 그릴 때에 그림이 됩니다. 머리로 어떤 모습을 떠올릴 때에 그림이 됩니다. 앞으로 하고프거나 이루고픈 어떤 일을 가만히 살피면서 그림이 나타납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여러 가지 모습은 그림이라 할 만합니다. 더없이 보기 좋아 그림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종이에 연필로 무언가를 적을 때에 글이 됩니다. 글이 모여 책이 됩니다. 책은 글이 모인 이야기꾸러미이기에, ‘책 = 글’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글은 글씨를 가리키기도 하고 글발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말을 담아서 글이기도 하지만, 온누리에서 살아가며 배우거나 깨달은 여러 생각이나 슬기를 일컬어 글이라고도 합니다.


  무척 쉽게 쓰는 ‘그림·글’이지만, 영어 ‘이미지·텍스트’로는 이 한국말 두 가지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영어 ‘이미지·텍스트’가 나타내거나 가리키려는 테두리를 한국말 ‘그림·글’로는 살뜰히 담아내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이 서로 뜻과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번역’을 합니다. ‘그림’을 ‘이미지’로 옮기고, ‘텍스트’를 ‘글’로 옮깁니다. 서로서로 뜻을 나눕니다. 서로서로 가장 알맞고 바르게 쓸 낱말을 살펴 마음을 나눕니다. 어느 갈래에서만 쓴다는 전문 낱말이라 하더라도, 서로서로 뜻과 마음을 나누고 싶으니 번역을 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나날을 글로 빚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를 말로 엮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번역(飜譯)’이라는 한자말하고 ‘옮기다’라는 한국말을 나란히 썼는데, 일찍이 생각있는 한겨레 옛사람은 ‘옮긴이’라는 새 낱말을 빚어 책에 밝혀 적습니다. ‘지은이·글쓴이·그린이·엮은이·펴낸이’ 같은 새 낱말이 태어났어요. 이 결과 흐름에 맞추어 ‘꾸민이·도운이·만든이·힘쓴이(애쓴이)·부른이·찍은이’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을 수 있어요. ‘밝힌이·찾은이·이룬이·멋진이·좋은이’처럼 말나무 가지를 쑥쑥 뻗을 수 있습니다.


  전문 낱말은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전문 낱말은 사람들이 여느 자리에서 흔히 쓰는 낱말을 알맞게 엮거나 짜거나 이어서 빚습니다. 무언가를 찾으면서 ‘찾기’라 하고, 더 깊이 찾고 싶을 때에는 ‘깊이찾기’나 ‘꼼꼼찾기’나 ‘낱낱찾기’를 할 수 있어요. 더 찾겠다 할 때에는 ‘더찾기’를 할 수 있겠지요. ‘다시찾기’도 있을 테며, 오늘날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즐겨찾기’도 있어요. 여럿이 힘을 모아서 찾는다면 ‘함께찾기’가 돼요. 비슷하게 ‘서로찾기’나 ‘나란히찾기’나 ‘여럿이찾기’처럼 쓸 수 있어요. 어느 때에는 ‘한꺼번에찾기’라든지 ‘모두찾기’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새로찾기’라든지 ‘모아찾기’를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할 때에 전문 낱말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북돋울 때에 여느 자리 살림말, 곧 삶말이 환하게 빛납니다. (4345.7.17.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