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08 : 백문불여일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
《박기성·심병우-울릉도》(대원사,1995) 81쪽

 

  ‘백문(百聞)’은 “여러 번 들음”을 뜻하고, ‘불여일견(不如一見)’은 “제 눈으로 직접 한 번 보는 것만 못함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 합니다. 흔히 두 한자말을 나란히 붙여서 쓰곤 하는데, 한국말로 쉽게 적자면 “여러 번 듣기보다, 스스로 한 번 볼 때에 더 낫다”가 됩니다.


  굳이 한자말을 빌어 말해야 하지 않을 텐데, 애써 이런 한자말을 빌어서 이녁 뜻이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쉽게 말할 때에는 내 뜻이나 생각을 못 나타낸다고 여길까요. 쉽게 주고받는 말마디로는 깊거나 너른 마음을 못 담는다고 여길까요. 어떤 허울을 입혀야 그럴듯한 말이 된다고 여길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예전에는 이렇게 한자말로 허울을 입혔고, 요즈음에는 영어로 허울을 입힙니다. 쉬운 한국말이 아닌 쉬운 한자말로 껍데기를 들씌우다가, 쉬운 영어로 겉치레를 합니다. 맑거나 밝은 생각하고는 자꾸 동떨어집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 여러 번 듣기보다 한 번 본다고
→ 귀보다 눈으로 안다고
→ 귀 아닌 눈으로 깨닫는다고
→ 스스로 보아야 한다고
→ 스스로 겪어야 안다고
 …

 

  보기글을 생각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비로소 한 번 보고서야,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라든지 “한 번 보고 난 뒤에,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번 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라든지 “몸소 지켜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려요.


  사람들마다 다 달리 풀어서 적을 만합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마다 다 다른 예쁜 말씨로 적을 만합니다. ‘스스로 본다’와 ‘한 번 본다’와 ‘눈으로 보다’와 ‘몸소 겪다’ 같은 말마디를 꾸밈없이 넣을 수 있고, 이러한 말뜻으로 여러모로 알맞게 적을 수 있어요.


  생각을 하면서 말을 살찌웁니다. 생각을 할 때에 말이 살아납니다.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이 빛납니다. 마음을 기울일 때에 글이 제 결을 찾습니다. (4345.7.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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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지켜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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