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6) 향하다向 15 : 위를 향하고 있었다
먼저 화분의 풀을 둘러봤더니 놀랍게도 낮에는 축 늘어져 있던 잎들이 꼿꼿하게 위를 향하고 있었다
《우오즈미 나오코/오근영 옮김-원예반 소년들》(양철북,2012) 19쪽
“화분(花盆)의 풀을 둘러봤더니”는 “화분에 있는 풀을 둘러봤더니”나 “꽃그릇에서 자라는 풀을 둘러봤더니”나 “꽃그릇에 난 풀을 둘러봤더니”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축 늘어져 있던”은 “축 늘어졌던”으로 손질하고, “-하고 있었다”는 “-했다”로 손질합니다.
익숙하게 쓰는 말투를 굳이 다듬거나 손질하지 않아도 된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하게 쓰는 말투인 만큼 사랑스레 다듬거나 어여삐 손질할 때에 한결 빛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주 쓰는 말투이기에 이냥저냥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자주 쓰는 말투인 만큼 한껏 싱그러이 빛나도록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어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바뀝니다. 고칠 수 없다고 여기면 고칠 수 없습니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비틀린 정치나 사회를 고칠 수 없다고 여기면 고칠 수 없으나, 슬픈 굴레와 틀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칠 수 있어요.
잎들이 꼿꼿하게 위를 향하고 있었다
→ 잎들이 꼿꼿하게 섰다
→ 잎들이 꼿꼿하게 위로 뻗었다
→ 잎들이 꼿꼿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 잎들이 꼿꼿하게 하늘로 곧게 뻗었다
→ 잎들이 꼿꼿하게 하늘을 보았다
…
‘向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이야 이냥저냥 쓸 수 있습니다. 이 한 마디를 가다듬을 줄 안대서 더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향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은 얼마든지 씻을 수 있습니다. 이 한 마디를 비롯해 숱한 얄궂은 외마디 한자말을 말끔히 털 수 있습니다.
이냥저냥 쓴대서 나쁜 말투는 아닙니다. 그저, 생각이 모자랄 뿐입니다.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니 그대로 둘 뿐이요, 스스로 더 널리 헤아리지 못하니 그냥 쓸 뿐입니다.
생각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어야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생각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삶을 낳으며 삶은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낳지 못하고,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나라말을 지킨다거나 겨레말을 북돋운다는 거룩한 뜻 때문에 글다듬기나 말다듬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생각하고 내 넋을 사랑하면서 내 하루를 아름다이 누리고 싶으니 글다듬기나 말다듬기를 합니다. (4345.7.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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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꽃그릇에서 자라는 풀을 둘러봤더니, 놀랍게도 낮에는 축 늘어졌던 잎들이 꼿꼿하게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