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28) 차모임

 

레니와 헤크마이어는 오후의 차모임에 초대받았다
《오드리 설킬드/허진 옮김-레니 리펜슈탈 : 금지된 열정》(마티,2006) 425쪽

 

  “오후(午後)의 차모임에”는 “낮에 있을 차모임에”나 “낮에 있는 차모임에”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초대(招待)받았다’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부름을 받았다”나 “가게 되었다”로 손볼 수 있어요.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여 한결 알맞고 사랑스레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제도권교육에 길든 말투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하더라도, 둘레 사람들은 뜻을 헤아릴 수 있다지만, 사랑스러운 결을 헤아리며 글을 쓴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뜻읽기뿐 아니라 사랑읽기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티타임(teatime)’이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실렸을까 궁금했는데, 참말 실립니다. 어, 이런 영어를 국어사전에 실어도 되나 아리송한데, 아무튼 ‘티타임’ 말풀이는 “차 마시는 시간. ‘휴식 시간’으로 순화”라 적힙니다. 곧, ‘국어순화’를 해야 하는 낱말인 ‘티타임’인 셈인데, 고쳐써야 할 낱말이라면 국어사전에 안 올려야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낱말은 국어사전이 아닌 ‘국어순화사전’에 올릴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티브레이크(Tea Break)’ 같은 영어는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다만, ‘차모임’ 같은 낱말도 국어사전에 안 실려요. 차를 마시는 모임이라는 뜻에서 쓰는 ‘차모임’일 텐데, 국어사전에는 ‘티타임’이 아닌 ‘차모임’ 같은 낱말을 실으면서, 사람들 말매무새를 예쁘게 추스르도록 도와야 아름답지 않겠느냐 싶어요.


  그나저나, 책을 읽다가 깜짝 놀라서 밑줄을 긋고 책을 덮습니다. ‘차모임’이라는 낱말 하나 만나면서 ‘그래,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 참말, 이렇게 써도 되지. 더구나 이렇게 책에까지 어엿하게 실린 낱말이니, 우리도 이제는 이와 같이 말하면 되겠네.’ 하고 생각을 잇습니다.


  다시 책을 펼쳐 읽습니다. 한동안 책을 기쁘게 즐기다가 또다시 덮고는, 이제 셈틀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찾기창에 ‘차모임’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모임을 가리키는 ‘차모임’이 더러 눈에 뜨이지만, 거의 모든 ‘차모임’은 ‘계모임’과 마찬가지로, 퍽 예전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즐겨쓰는 낱말입니다. 나는 여태 몰랐지만, 사람들은 참 자주 흔히 으레 쓰는 낱말인 줄 처음으로 알아차립니다.

 

 차 마시는 모임 / 차 즐기는 모임
 차 마심이 모임 / 차 즐김이 모임

 

  인터넷에서 언제 글까지 찾아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1998년에 쓰인 ‘차모임’까지는 찾아보기가 됩니다. 아마, 1998년이 아닌 1991년에도 이 낱말을 쓴 사람이 있지 않았으랴 싶고, 1981년이나 1971년에도 이 낱말을 쓴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아마 예전에는 ‘차모임’처럼 붙이지 않고 ‘차 모임’처럼 띄어서 적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띄어서 ‘차 모임’이라 적으면, ‘보기글 모으기(용례 수집)’에 걸려들지 않아, 국어사전을 엮으며 새 낱말을 넣으려고 할 때에 그물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신나다’ 같은 낱말은 아직까지도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차모임’이나 ‘신나다’나 서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은데, 처음부터 이 낱말을 한 낱말로 삼아 국어사전에 싣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책과 신문에서 ‘신 나다’처럼 띄어서 썼습니다. 이러다 보니 ‘신 나다’로는 퍽 자주 쓰이기는 하나 ‘신나다’로 적힌 보기글이 없어서, 국어학자들은 “이 낱말 ‘신나다’는 쓰임새를 찾아볼 수 없으니 한 낱말로 삼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뚱딴지 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늘날까지 버젓이 이어지는 우리 모습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북돋우는 길을 가로막은 모양새이고, 새롭게 한국말을 빚어내어 쓰지 못하도록 하는 노릇입니다.

 

 찻집 . 찻값 . 찻잔
 차모임 . 차즐김 . 차때

 

 인터넷에서 ‘차모임’을 찾아니, ‘차모임(Tea Break)’처럼 적는 분들이 곧잘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티타임’이나 ‘티브레이크’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예전에 함께 어울리던 동아리 동무 하나는, “야, 우리 티타임 하자.” 하고 말하다가, “어? 우리, ‘우리 말 동아리’였잖아. ‘티타임’ 같은 말은 쓰면 안 되지. 그런데, 그럼 뭐라고 하지? ‘차 시간’? 그럼 버스 기다리는 시간하고 헷갈리잖아? ‘차 때’? 음, 이건 좀 이상한데. 아무래도 ‘티타임’은 그냥 ‘티타임’이라고 해야겠다. 안 그러냐?” 하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티타임’을 걸러낼 마땅한 낱말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차때’라는 말마디를 혀에 얹어 굴려 보지만, 영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말마디를 쓰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은 ‘티타임’이나 ‘티브레이크’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차때’ 같은 말마디를 쓸 일은 거의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차모임’이라 쓴다면, 조금씩 가지를 치고 줄기를 뻗을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 스스로 ‘차즐김이’라 말하고, 차를 즐기는 일을 가리켜 ‘차즐김’이라 해 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어느 분은 스스로를 ‘만화즐김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런 이름 그대로, 저는 저 스스로를 ‘사진즐김이’나 ‘책즐김이’라 일컬을 수 있고, ‘골목즐김이’나 ‘헌책방즐김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즐김이’처럼 제 삶을 이야기해도 어울릴 테지요.

 

 -모임 : 차모임 . 책모임 . 시모임 . 영화모임 . 춤모임 . 노래모임
 -즐김이 : 차즐김이 . 책즐김이 . 시즐김이 . 영화즐김이 . 춤즐김이 . 노래즐김이

 

  한 마디를 곱씹으면서 두 마디를 헤아려 봅니다. 두 마디를 헤아리며 세 마디를 되뇌어 봅니다. 세 마디를 되뇌면서 네 마디를 꿈꿉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빛낼 시원하고 깊은 샘물이 깃들어 늘 맑게 솟는다고 느낍니다. 사람들 누구한테나 제 겨레 글과 넋과 삶터를 북돋울 싱그럽고 너른 숨결이 잠든 채 깨워 주기를 기다린다고 느낍니다.


  따순 손길을 기다리는 말이 있습니다. 고운 마음길을 기다리는 글이 있습니다. 맑은 생각길을 뻗치면 맑은 말길 또한 뻗어나가고, 착한 삶길을 일구면 착한 글길 또한 기름지게 일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2.8.25.불./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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