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99] 땡볕

 

  아이들 누구나 ‘땡볕’ 말밑이 어떻게 이루어진 줄 모르더라도 땡볕이 어떤 날씨인지 압니다. 어른들 누구나 ‘뙤약볕’ 말밑을 깊이 헤아리지 않더라도 뙤약볕이 어떤 날씨인 줄 알아요. ‘무더위’나 ‘강추위’가 왜 무더위요 강추위인가를 살피지 않지만, 이런 날씨 저런 날씨 환하게 살갗으로 느낍니다. 이와 달리, ‘폭염(暴炎)’이나 ‘폭서(暴暑)’는 아이도 어른도 쉬 알아채지 못해요. 한자를 밝혀 알려주어도 쉬 깨닫지 못해요. 한국말로 ‘불볕더위’라 말해야 비로소 누구나 환하게 알아들어요. 그런데, 알아차리기까지 퍽 여러 날이 걸리고 이래저래 따로 더 배워야 한다지만, 어른들이 날마다 ‘폭염’이니 ‘폭서’이니 하고 말하면, 둘레에 있는 아이들은 이 낱말이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차츰차츰 익숙해져요. 곧, 아이들은 ‘안녕(安寧)’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면서 이 말을 써요. ‘바이바이(byebye)’가 영어인 줄 알아차리려면 따로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이 으레 ‘안녕’과 ‘바이바이’를 읊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이 말을 받아들여서 마음껏 써요. 서로 인사할 때에 쓰는 말이로구나 하고 여겨요. 아이들한테 말을 온몸으로 물려주는 어른들이 말삶을 깊이 돌아본다면,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지 못해요. 아이들은 ‘어느 자리에 어떻게 언제 쓰는가’를 느끼기만 하거든요. 어른들부터 스스로 맑게 생각하며 말을 해야 즐거워요. 맑게 생각하며 말하는 어른 곁에는 맑게 생각하며 말하는 아이들이 자라요. 생각없는 어른 곁에서는 생각없는 아이들이 자라요. 오뉴월 땡볕 한복판에서 삶을 생각합니다. (4345.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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