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98] 밀분

 

  네 식구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고추장을 찍어 먹다가, 문득, 고추장 담긴 통에 적힌 글월을 읽어 봅니다. 고추장 담긴 통에는 옛 손길을 되살리며 빚었다고 적힙니다. 이 고추장은 ‘고추분’으로 빚었다고 나란히 적혀요. 밥을 먹다가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고추분’이 뭔가? 이윽고,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구나. 과자 봉지를 보면 으레 ‘밀가루’라 안 하고 ‘소맥분(小麥粉)’이라 적더니, 이 고추장 빚은 이들은 ‘고춧가루’라 안 하고 ‘고추분’이라 적은 꼴이로군요. 밀가루를 밀가루라 하지 못하고 ‘소맥분’으로 적는 사람도 우습지만, ‘밀분’으로 적는다면 더욱 우습습니다. 미숫가루를 ‘미수분’이라 적으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누가 이런 말을 알아볼까요. 콩가루, 떡가루, 눈가루, 쌀가루, 꽃가루 들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꽃봉오리 들여다보며 꽃가루를 만져 보기도 하지만, 꽃을 살피는 학자나 전문가와 교사는 으레 ‘화분(花粉)’이라 읊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커서 스스로 이런 말을 듣고 저런 글을 읽을 때에 머릿속이 어떻게 될까 궁금합니다. 어지러운 사람들 어지러운 말과 글 사이에서 아이가 씩씩하며 사랑스레 말빛과 글사랑 보살피기를 빌며, 다시 밥술을 뜹니다. (4345.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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