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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시스터즈 5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무엇을 느낄 때에 웃으며 즐거울까
[만화책 즐겨읽기 132]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5)》
아침저녁으로 좋다고 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는 하루라 한다면, 내 넋은 언제나 좋은 결로 보드랍습니다.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모두 좋은 소리로 맞아들이면서 기쁜 노래잔치라 여깁니다. 이때에는 내 말소리 또한 노랫소리처럼 곱게 울릴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듣는 소리를 좋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내 마음이 말라붙습니다. 어느 때에는 골이 아프고, 어느 때에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를테면, 끽끽 붕붕 소리 시끄럽게 울리는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가 밤새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살아야 한다면, 느긋하게 잠들지 못하고 한갓지게 쉬지 못합니다. 이른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알쏭달쏭합니다. 자동차도 전철도 버스도 밤새 끝없이 달리는데, 이런 데에서 누가 어떤 삶을 살가이 일굴 만할까요.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와 벼와 푸성귀 또한 고속도로나 기찻길 옆에서는 제대로 못 자라는걸요.
그러고 보면, 송전탑이 선 들판에서도 벼는 힘을 잃습니다. 우람한 송전탑은 사람들 살아가는 집 둘레에 세우지 않습니다. 송전탑 전자파가 몹시 나쁘니까 사람들 살림집 둘레에는 안 세운다 할 텐데, 사람들이 먹는 벼가 자라는 들판 옆에는 어떻게 송전탑을 세울 수 있을까요. 사람들 살림집 곁에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를 내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먹는 벼와 열매와 푸성귀가 자라는 들판 옆으로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를 낼 수 있을까요.
- “다음엔 그 공장 뒤까지 가 볼까. 그 부근엔 아직 가 본 적이 없으니까. 필름이 더 있어야겠네.” (19쪽)
- “그 카메라 한동안 빌려 주마.” “정말요?” “난 별로 안 쓰니까. 필름은 네가 사려무나.” “가지가 나무가 되기도 하겠지.” (36쪽)
- “카메라 담당 힘들겠다.” “아냐. 도움이 되는 거 같아서 즐거워. 수학여행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뻐! 나, 여럿이 여행하는 거 처음이거든.” (115쪽)
- “너 정말 뻔뻔하다. 우리 사진 다 망쳐 놓고서. 지금부터 다시 찍자고?” “시, 시끄러워.” “찍자.” (150쪽)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뿐 아니라, 공항 또한 사람들한테 덧없으리라 느낍니다. 이런 찻길, 저런 기찻길, 그런 하늘길이 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오가며 살겠느냐고 따질는지 모르는데, 참말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가 없으면 서로서로 만나러 오갈 수 없을까요. 참말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움직여야만 서로서로 만나러 오갈 수 있을까요.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더 빨리 더 한갓지게 더 짐을 싣고 다닐 만하기에, 이 지구별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드나드는가요.
- ‘안 되겠다, 나. 중요한 일은 잊어버리고. 아무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긴 하지만.’ (24쪽)
- “미즈키. 이런 지팡이, 언젠가는 썩는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때 넌 어떻게 할 테냐?” (32쪽)
1950년 언저리에 한국땅에서 크나큰 전쟁이 터진 적 있습니다. 이무렵,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모든 학교는 문을 닫으면서, 모든 학교는 ‘군대 건물과 막사’가 되었습니다. 학교 교실은 군인 간부들 회의실이 되고, 운동장은 병사들 천막을 치는 막사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공항은 전투기와 폭격기가 드나드는 자리가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항구는 구축함이나 잠수함 같은 ‘무기 실은 배’가 드나드는 자리가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철길은 무기와 자원을 실어 나르는 길이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모든 찻길은 군대 짐차와 전차가 드나드는 길이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모든 옷공장은 군인옷을 짓습니다. 모든 다른 공장도 군대에서 쓸 물건을 만듭니다. 총을 만들고 총알을 만듭니다. 여느 사람들이 쓸 물건은 공장에서 만들지 못하기도 하지만, 만들 수도 없습니다. 낫이나 쟁기나 호미를 만든다 하면 중앙정부에서 큰소리로 나무라겠지요. 낫이나 쟁기나 호미를 들고 들판에 나간다 하면 군인들은 큰소리로 꾸짖겠지요. 연필을 들고 아름다운 사랑을 시로 짓는다든지, 아름다운 삶터를 그림으로 옮긴다 하면, 정부 공무원이나 군인들은 코웃음을 치며 무슨 짓을 하느냐고 깔보겠지요.
온통 전쟁통인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전쟁통인 나라에서는 겨우 학교를 다니더라도 아이들은 전쟁놀이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서로를 죽이면서 나도 죽는 전쟁인 줄 아직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다리가 잘리고 머리에 구멍이 나야 비로소, 아아 전쟁이었구나, 하고 깨닫다가 숨을 거둡니다. 깨달을 만하면 모두 죽습니다.
온통 전쟁투성이인 곳에서는 젊은 사내도 전쟁터로 끌려가고 젊은 가시내도 전쟁터에서 몸을 팔아야 합니다. 온통 전쟁판인 데에서는 웃음꽃이 피지 못합니다. 그예 눈물바다입니다. 내가 너를 죽여도 눈물바다요, 네가 나를 죽여도 눈물바다예요.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모두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총알과 미사일이 넘나드는 지구별은 아니라 할는지 모르나, 이 지구별은 우리 눈에만 잘 안 보인다 할 뿐, 수없이 온갖 총알과 미사일이 넘나드는 싸움별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믿으며 서로를 아끼는 길이 아니라, 서로서로 돈과 이름과 힘을 홀로 거머쥐려 하는 싸움누리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왜 대학교에 계급이 붙을까요. 왜 일자리마다 일삯이 다를까요. 왜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써서 흙을 일구어야 할까요. 왜 고등학교는 사람됨을 못 가르치고 입시문제만 집어넣을까요. 왜 어른들은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리지 못하면서, 그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에 집어넣은 채, 하루 내내 돈벌이에만 마음과 몸을 빼앗겨야 할까요. 왜 영어에 그토록 목매달아야 하나요. 왜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웃고 울어야 하나요. 왜 도시에는 숲이 없을까요. 왜 국립공원에까지 굴을 뚫고 케이블카를 놓을 뿐 아니라, 국립공원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며 밀어붙이기까지 할까요(포스코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인 고흥 바닷가에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합니다).
- “바보구나.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져.” (54쪽)
- “레이코. 레이코가 아픈 원인은 집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닐까?” “시즈루?”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은 신경쓰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아.” (95쪽)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 때에 웃으며 즐거울까 아리송합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때에 웃고, 어느 때에 즐거운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께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1등을 거머쥐거나 우등상을 타야 웃습니까. 아이들이 2등을 하거나 10등을 하거나 막등을 하면 찡그리거나 웁니까. 회사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께서는 어느 때에 웃고, 어느 때에 즐거운지 궁금합니다. 월급봉투가 두툼해야 웃습니까. 회사에서 계급이 높아져야 즐겁습니까.
- “우리는 쓸데없는 것까지 너무 느끼지. 그래서 녀석들이 들러붙는 거다. 남을 먹어버릴 만큼 비정해지거나 뻔뻔해지면 괜찮아.” “그 방법밖엔 없는 건가요?” “난 늘 그렇게 해 왔다. 자신이 찾는 거다. 혹시 너는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지.” (134∼135쪽)
- “앗! 어째서 또?” “말했지.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있는 거라고. 네가 접근하는 거야. …… 실망스럽겠구나.” “네에.” “하지만, 와서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잖아? 친구들과 함께 보낸 많은 시간들. 사진은 유감이지만, 그것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잖아. 넌 오길 잘한 게야.” (141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6) 다섯째 권을 읽으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이웃사람을 살피기 앞서 언제나 내 삶을 살필 노릇인데, 왜 우리들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기보다 ‘돈을 버는 삶’을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삶, 기쁜 웃음, 맑은 밥, 고마운 하루, 예쁜 이야기, 멋진 숲, 훌륭한 냇물, 따스한 보금자리, 넉넉한 마음씨, 고운 꿈, 밝은 사랑, 보드라운 손길, 그윽한 눈길, 씩씩한 가슴, 착한 말, 참된 글, …… 들을 아낄 때에 웃고 즐거울 만하지 않겠느냐 싶어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시골마을 들소리와 멧소리와 하늘소리와 물소리를 맞아들으며 즐겁습니다. 아이들 소리와 옆지기 소리를 들으며 즐겁습니다. 나 또한 좋은 소리로 우리 살붙이를 얼싸안고 싶습니다. 나부터 내 작은 시골집에서 작은 땅뙈기 아끼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를 누리며 좋은 웃음으로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5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대원씨아이 펴냄,2006.5.15./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