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글쓰기

 


  아이들 옷은 상표딱지가 으레 옷 뒤쪽 바깥에 붙는다. 아이들한테는 상표딱지 하나조차 몸에 거슬릴 뿐 아니라, 자칫 두드러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어른들 옷은 상표딱지가 옷 안쪽에 붙는다. 어른이 되면 이런 상표딱지 하나가 거슬리지 않거나 두드러기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일까.


  곰곰이 돌이킨다. 먼먼 옛날까지 아니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어 살아가던 때에는 어느 옷에든 상표딱지가 붙지 않았다. 상표딱지가 안 붙는 옷이었으니, 이런 것 때문에 걸거칠 까닭이 없었다. 상표딱지를 드러낼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옷 앞이나 뒤나 옆 어디에도 ‘옷 만드는 공장이나 회사 이름’을 알리거나 보여줄 까닭 또한 없다. 그예 예쁘게 짓고, 그저 튼튼하게 빚는 옷 한 벌이었다.


  나는 어린 날부터 형한테서 옷을 물려입고, 이웃한테서 옷을 얻어입었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가끔 새 옷을 사 주기도 했지만, 동생은 으레 헌옷을 받아서 입는 흐름이었고, 나는 이렇게 받아서 입는 옷이 좋았다. 나는 새 옷을 입을 때마다 몸이 간질간질 힘들었다. 동무들은 새 옷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새 옷이 달갑지 않았다. 나는 퍽 닳거나 낡은 옷이 내 몸에 잘 맞는다고 느꼈다. 이제 와 헤아리자면, 공장에서 만든 옷은 몽땅 화학섬유이기 때문에 내 살결이 이런 화학섬유를 안 좋아한 셈이다. 퍽 닳거나 낡은 옷 또한 화학섬유이지만, 여러모로 닳거나 낡으면서 화학섬유 결이 많이 누그러졌으니 내 몸에서도 이럭저럭 받아들여 주었으리라 느낀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시골에서 호젓하게 살아가며 들판에서 얻은 풀이나 나무로 실을 잣고 천을 마름해 옷을 지으며 입어야 가장 어울린다고 하리라. 또, 나 같은 사람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렇게 자연한테서 선물받은 옷을 자연스럽게 입을 때에 가장 홀가분하면서 빛나겠지.


  그러고 보니까, 내가 갓 나온 새책보다 한참 묵은 헌책을 한결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까닭도, 오늘날 모든 책종이는 화학처리를 한 종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책을 마다 할 까닭이 없고, 굳이 헌책으로 찾아 읽을 까닭 또한 없다. 그렇지만, 헌책방 헌책은 숱한 사람들 손길을 거치면서 화학처리 된 종이 느낌이 거의 사라지거나 아주 누그러들면서 따사로우며 보드라운 결이 싱그럽다.


  어여쁜 아이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이 아이가 언제 잠들려나 기다리다가 아이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내 삶을 돌이킨다. (4345.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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