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 - 음식 유물 우리 유물 나들이 1
이명랑 지음, 신가영 그림, 윤숙자 감수 / 책내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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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밥 함께 먹는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3] 신가영·이명랑,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책내음,2011)

 


  밥을 차립니다. 집식구 함께 먹을 밥을 차립니다. 도마에 여러 푸성귀를 올려놓고 손질합니다. 나와 집식구는 딱히 고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먹고, 아주 드물게 장만해서 먹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서 먹지 않습니다. 뭍고기도 물고기도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푸성귀를 흐르는 물에 씻습니다. 물기를 텁니다. 썩둑썩둑 썰어 무침을 합니다. 아침에는 곧잘 풀물을 짭니다. 냄비 하나에는 밥이 끓습니다. 다른 냄비 하나에는 국이 끓습니다. 갓난쟁이한테 먹일 죽을 하려고 밥그릇 하나에 곡식가루를 담았습니다. 국이 끓으면 간을 하기 앞서 뜨거운 국물을 국자로 떠서 죽그릇에 살짝살짝 붓습니다. 조금씩 부으며 작은 숟가락으로 곡식가루를 녹입니다. 되지도 묽지도 않게 둘째 죽을 마련합니다. 둘째 죽이 다 되면 이제 간을 하고 국냄비 불을 끕니다.


  오이가 있으면 오이를 썹니다. 연뿌리가 있으면 연뿌리를 썹니다. 면내 가게에서는 곤약을 안 팔아 요 한 달 즈음 곤약을 썰지 못합니다. 읍내에 나갈 때에 살펴야 하는데, 아이들과 읍내로 마실을 가노라면 아이들 치레하다가 그만 잊곤 합니다.

 

 

 


.. 주룩주룩 비가 와요. 지글지글 엄마가 부꾸미 부치는 소리……. 이제나 저제나 부꾸미 먹을 생각에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있는데, “메주같이 생긴 게 먹을 것만 밝히고!” 누나가 나를 놀리지 뭐예요 ..  (6쪽)


  밥상에 밥이며 국이며 반찬이며 하나하나 올리지만 수저는 안 올립니다. 수저는 아이를 불러 아이더러 올리도록 합니다. 아이가 왜 수저는 없느냐고 물으면, 수저는 스스로 놓으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아이 수저만 달랑 놓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 수저도 함께 놓으라고 말합니다.


  예부터 밥이든 국이든 어른 몫을 먼저 푼다 했는데, 나는 아이 몫을 먼저 푸거나 뜹니다. 먼저 푸거나 뜨는 밥이랑 국은 먼저 식습니다. 나중 푸거나 뜨는 밥이랑 국은 더 오래 뜨거워요. 아이는 아직 뜨거운 밥을 잘 못 먹으니, 아이 밥이랑 국을 먼저 푸거나 뜬 다음 조금 더 빨리 식어 알맞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곰곰이 따지면, 둘째 아이 죽을 가장 먼저 마무리지으니, 나이 어린 차례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셈입니다. 더 헤아린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 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밥이랑 국을 먼저 푸거나 뜰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밥이랑 국은 조금 식혀서 먹어야 하니까 먼저 푸거나 떠야지 싶어요.


.. 나는 아직 눈곱도 안 떼었는데 달그락달그락 엄마가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려요 ..  (13쪽)

 

 

 

 


  고픈 몸속에 밥이 들어옵니다. 하루에 한 끼니이든 두 끼니이든 세 끼니이든, 꾸준하게 밥을 먹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착하다는 사람이건 나쁘다는 사람이건, 때 맞추어 밥을 먹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한다는 사람이든 짓궂다는 일을 한다는 사람이든, 누구나 배고프기 마련이요 누구라도 밥을 먹으면 배부르기 마련이에요. 누구한테나 고마운 목숨 잇도록 이끄는 고마운 밥입니다. 쌀밥이든 콩밥이든 묵밥이든 나물밥이든 고기밥이든, 밥 한 그릇 먹습니다. 밥그릇 비우는 누구나, 한결 힘내어 살아갈 꿈을 키웁니다.


  들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경기장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청와대에서든 국회의사당에서든 밥을 먹습니다. 햇볕 안 드는 지하방에서도 햇볕 뜨거운 옥탑방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아파트에서도 골목집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호텔에서도 작은 밥집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누구한테나 사랑스러운 밥이요, 누구한테나 반가운 밥입니다. 제비이든 직박구리이든 종달새이든 밥을 먹으려고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떱니다. 문득 돌아보면, 시골마을 새벽녘 제비들 노랫소리에 따라 이웃집 할아버지 경운기 소리 함께 듣습니다. 뭇 들새 노랫가락에 맞추어 이웃집 할머니 구부정한 걸음 옮기는 소리 고샅길에 나란히 들립니다.


  좋은 밥 함께 먹는 삶입니다. 나는 나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신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제비는 제비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까치는 까치한테 좋은 밥을 먹고, 개구리는 개구리한테 좋은 밥을 먹어요.

 

 

 

 

 


.. “메주 쑤는 날에 울면 못쓴다. 메주가 잘 되어야 된장이든 간장이든 맛있게 만들지.” 날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날벼락 대신 엄마가 엿으로 다식을 만들어 주신대요 ..  (19쪽)


  골짜기 따라 골짝물이 흐릅니다. 숲 밑으로 맑은 물이 흐릅니다. 지구별 어느 사람이든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면서 목숨을 맑게 빛냅니다. 까만 아스팔트 깔린 고속도로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람한 아파트 마을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광 핵발전소나 고리 핵발전소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주섬 파란 빛깔 바다를 맞아들이면서 푸른 숲이 우거진 데에서 뽑아올린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동해 깊은 바다에서 뽑아올린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지리산이든 오대산이든 계룡산이든 치악산이든 설악산이든 속리산이든 …… 아름드리 나무와 짙푸른 풀이 얼크러진 데에서 좋은 햇살과 좋은 바람과 좋은 기운 가득 묻어나며 흐르는 맑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해요.


  그런데 도시는 자꾸자꾸 커집니다. 도시가 커지며 시골 들판은 시멘트로 덮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이 늘어납니다. 냇바닥까지 시멘트로 덮습니다. 큰 냇물도 작은 냇물도 냇둑이 사라지고 시멘트둑으로 바뀝니다.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맑은 샘물을 바라면서 정작 도시나 시골이나 왜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이다지도 끌어당길까요. 맑은 물에 쌀을 안쳐 밥을 먹고 싶으면서, 왜 맑은 물과 맑은 바람으로 벼와 곡식과 푸성귀가 맑게 자라도록 하지 않을까요.


  돈이 있으면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을 제값 치러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돈이 있으면 사료나 항생제 아닌 들판 풀을 뜯은 소나 돼지를 잡은 고기를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그래요, 돈만 있으면 애써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굳이 아파트를 더 짓거나 고속도로랑 고속철도를 자꾸 내지 않아도 돼요. 우리한테 넉넉한 돈으로 숲을 더 푸르게 가꾸면 돼요. 우리한테 즐거운 돈으로 들판을 한결 푸르게 보살피면 돼요.

 

 

 

 


.. “그럼 진짜 못생긴 메주 하나 더 만들까? 밭으로 일 나가신 아빠 대신 우락부락 아빠 닮은 메주로 하나 더!” 오순도순 우리 식구처럼 다정한 메주 네 덩이! 처마에 시렁에 메주 꽃이 활짝 피었어요 ..  (35쪽)


  2008년에 중앙출판사에서 처음 나오고 2011년에 책내음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은 그림책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를 읽습니다. 앙증맞은 그림과 보드라운 글이 잘 어우러집니다. 메주에 피는 곰팡이꽃이 메주를 한결 어여쁘게 빚는다는 이야기를 슬기롭게 풀어냅니다. 된장도 고추장도 간장도 어떠한 손길과 마음길로 빚을 때에 맛나며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예쁘게 보여줍니다.


  참말, 메주 하나를 놓고도, 된장 하나를 놓고도,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 담는 그림책 하나 여밀 만합니다. 한겨레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를 즐겁게 꽃피울 수 있습니다. 굳이 궁중음식을 말하지 않아도 예뻐요. 누구나 흔히 먹는 가장 수수하며 가장 투박한 밥을 말할 때에도 예뻐요.


  흔히들 호박꽃이 못생긴 꽃이라도 되는 듯 말하지만, ‘호박’ 아닌 ‘박’을 떠올리며 박꽃이 어떠한 꽃인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아요. 박꽃과 나란히 오이꽃을 생각하고, 참외꽃을 생각하며, 토마토꽃이나 당근꽃이나 배추꽃이나 무꽃이나 파꽃이나 유채꽃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아요.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어요. 열매를 맺어야 씨가 영글어요. 씨를 얻어야 이듬해에 새롭게 심어 기쁘게 얻어요.


  콩꽃이 피어야 꼬투리가 열립니다. 딸기꽃이 피어야 딸기알이 맺힙니다. 메주도 고운 밥인 만큼 즐겁게 꽃이 피어야 구수하게 먹을 보배가 태어나요.


  예쁘지 않은 꽃이란 없어요. 아니, 꽃을 바라보며 예쁘다 안 예쁘다 할 까닭이 없어요. 어느 꽃이든 바라보며 즐거운데요. 아기들이든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누구나 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사르르 해맑게 녹는데요. ‘메주가 못생겼’을 수 없고, 서로서로 ‘메주처럼 생겼다’고 놀릴 수 없어요. 예쁜 그림책이 더할 나위 없이 예쁠 수 있지만, 이만큼 땀과 품을 들였으니, 앞으로 한결 슬기롭게 곰삭혀 더 빛날 새 그림책 삶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믿어요. (4345.6.15.쇠.ㅎㄲㅅㄱ)

 


―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 (신가영 그림,이명랑 글,책내음 펴냄,2011.10.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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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15 17:03   좋아요 0 | URL
와, 이명랑 이분 소설 쓰시는 분인데 이런 책도 쓰셨군요. 그림이 참 좋습니다. 제목보며 짐작을 했지만 곰팡이를 꽃으로 표현했군요.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라 윤숙자님께서 감수까지 하셨고, 정성이 들어간 책 같아서 사고 싶어지는데요? ^^

숲노래 2012-06-15 17:25   좋아요 0 | URL
네, 여러모로 참 잘 빚었어요.

다만, 티가 있는데,
(ㄱ) '이명랑 님이 어른소설 쓰던 눈높이로 어린이 그림책을 썼다'는 대목
(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나이가 제법 많은데 집일을 모른다'는 대목
(ㄷ) '메주를 딱 네덩이만 띄운다'는 대목......

그렇지만, 저는 이런저런 '옥 티'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참말 이만큼 우리 여느 살림살이를 다루는 그림책이
너무 드물고, 예쁘게 그려 주는 그림책도 너무 드물거든요.

다만, 앞으로는 이런저런 아쉬운 대목을 잘 가다듬고 추슬러
더 아름다우며 빛나는 슬기로운 그림책을 베풀어 주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