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묶어 풀어내 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쓰든 다음을 쓰든 또 무엇을 쓰든, 나 스스로 이런저런 곳에 매일 까닭이 없고, 이런저런 사이트를 쓰는 사람들 누구나 얽힐 까닭이 없다. 언제나 가장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럽게 '내 서재'를 가장 예쁘게 돌보며 아끼면 될 뿐이다.

 


 자유롭게 글쓰기

 


  내가 느끼기로는,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홀가분하게 글을 쓰지 못한다. 오늘날처럼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때는 이제까지 없었으나, 막상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좀처럼 스스로 가장 홀가분하면서 가장 빛나는 넋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구나 싶다.


  대학교를 나오든, 대학원을 나오든, 나라밖에서 배우고 돌아오든, 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쳤든, 초등학교를 마쳤든, 이제 어느 누구라도 글을 쓸 만한데, 왜 글을 쓸 때에 ‘참다운 나’를 한껏 북돋우거나 어루만지면서 글을 쓰지 못할까.


  일본사람 이케다 아키코 님이 쓴 《열네 살의 철학》(민들레,2006)이라는 책을 뒷간에서 읽다가 ‘자유’를 말하는 대목이 보여 밑줄을 긋는다.


  “자기한테도 타인한테도 좋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언론은 자유로워야 해. 자기한테도 타인한테도 좋은 건 누구한테나 옳은 말이야. 누구한테나 옳은 말을 하는 경우에는 그 말을 할 ‘내 자유’를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돼. 곧, 사람은 옳은 말을 할 자유를 가지지, 옳지 않은 말을 할 자유를 갖고 있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서 보면 누군가 옳지 않은 말을 할 때면 꼭 ‘언론에는 자유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내 자유다.’ 하고 주장하곤 해(188쪽).”


  자유란 스스로를 사랑하는 넋이라고 느낀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넋일 때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곧 홀가분하게 살아간다고 느낀다. 홀가분하지 못한 넋일 때에는 삶뿐 아니라 사랑도 글도 노래도 춤도 모두 홀가분하지 못하며, 아름답지 못하고, 그윽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빛나지 못한다고 느낀다.


  배고프면 밥 달라 부르고, 졸리면 코를 골며 자며, 웃기면 까르르 웃다가는, 심심하면 하품을 하는, 아이들 마음을 어른이 되어도 한결같이 이어가면 서로서로 얼마나 좋은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될 수 있을까.


  홀가분한 사람은 맞춤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홀가분한 사람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에 갇히지 않는다. 홀가분한 사람은 지식이나 정보에 홀리지 않는다. 홀가분한 사람은 나이나 이름값이나 주먹힘에 흔들리지 않는다. 홀가분한 사람은 오직 가장 따스한 사랑과 가장 너그러운 믿음과 가장 착한 꿈을 갈무리해서 노래를 부르듯이 글을 쓴다. 시를 쓴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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