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나물꽃 책읽기

 


  내 어릴 적 일을 돌이킬 때에 늘 부끄럽던 대목 하나는 ‘나물을 잘 알아보지 못하던 눈길’이었다. 어머니가 차린 밥상에 놓인 나물은 이름을 알아맞히더라도, 막상 이 나물 반찬이 되기 앞서 ‘흙땅에 뿌리내린 풀포기 모습’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둘레 밭뙈기나 논두렁을 찾아보기란 만만하지 않았고, 애써 찾아보았다 한들 얼마나 잘 헤아렸을까 궁금하다. 늘 곁에 두며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면 지식으로 그칠 뿐이라고 느낀다.


  잘 찍은 사진이나 잘 그린 그림으로 엮은 도감을 읽거나 외운다 해서 풀을 알지 못한다. 식물도감이나 세밀화 그림책을 살핀다 해서 풀을 알아보지 못한다. 풀을 알자면 풀하고 살아야 한다. 풀을 알아보자면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손수 풀을 뜯어 냄새를 맡고 이빨로 씹으며 혀로 느껴야 한다. 풀을 사랑하고 싶다면, 풀씨를 받아 스스로 씨앗을 뿌려 새싹부터 첫 줄기와 꽃과 열매까지 한해살이를 찬찬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일본사람 우오즈미 나오코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원예반 소년들》을 읽으면, 고등학교 1학년 아이 둘이 ‘페튜니아 꽃씨’가 얼마나 작은가 하고 처음으로 느낀 대목이 잘 나온다. 고등학교 남학생 둘은 꽃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흙 부스러기’나 ‘먼지 알갱이’와 같다고 느낀다. 참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여느 어린이나 푸름이라 한다면, ‘시금치 씨앗’이나 ‘쑥갓 씨앗’이나 ‘상추 씨앗’이나 ‘당근 씨앗’을 어떻게 느낄까. 아이들이 줄기를 똑 따서 날리는 민들레 씨앗을 헤아려 볼 노릇이다. 하늘하늘 잘 날도록 달린 웃몸을 뺀 아래쪽이 씨앗인데, 얼마나 자그마한가. 그러나, 민들레 씨앗도 여느 풀씨를 헤아리면 매우 크다. 여느 들풀이나 멧풀은 씨앗이 얼마나 작은가. 사람들이 먹는 푸성귀 또한 씨앗이 얼마나 작은가. 그나마 무씨나 배추씨는 크다 할 테지만, 이 또한 얼마나 작은가.


  돈나물은 씨앗 크기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돈나물 씨앗을 흰종이에 솔쏠 뿌려 놓는다면, 이 씨앗을 알아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언제쯤 풀씨를 옳게 알아보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풀씨가 따스히 깃드는 흙을 옳게 보듬으며 아낄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즐겁게 풀을 먹고 살피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논둑에서 돈나물꽃을 보고는 자전거를 세워 한참 들여다본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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