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씨 주부 전업중! 1
하나코 마츠야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회사원 말고 가정주부 되셔요
 [만화책 즐겨읽기 150] 마츠야마 하나코, 《쇼코 씨 주부전업중! (1)》

 


  내가 퍽 어려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언제나 ‘장래 직업 조사’를 했습니다. 해마다 한 차례씩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 하고 물었습니다. 6학년쯤이었나, ‘직업 적성 검사’를 받기도 했다고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마치고 들어갈 중학교를 어디로 골라야 하는가를 따지는 검사였을 텐데, 이런 검사를 중학교 3학년 때에도 했는지 아리송하지만, 아마 이런저런 비슷한 검사와 조사는 참 많았겠지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하고 묻는 자리에서는, 이를테면 ‘공장 일꾼’이라든지 ‘시골 일꾼’은 아예 목록에조차 들지 않습니다. 도시 학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길을 말하지도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도시 학교는 김을 맨다든지 씨앗을 심는다든지 나무를 사랑한다든지 하는 삶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도시라는 곳이 움직이자면 공장이 꼭 있어야 하는데, 막상 공장에서 일할 아이들한테 어떤 마음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 또한 살피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요. 으레 하는 말이란 ‘회사원’이나 ‘공무원’입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겠다고 적는 일은 교사들한테 트집을 잡히지 않으며, 어버이들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를 적는 아이들은 좀 엉뚱하다 여기다가는, 나이 들면 알아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바뀌겠거니 여기곤 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가시내 가운데 ‘주부’를 적는 아이가 더러 있었습니다. 아마 이 아이 어버이가 ‘가시내이기 때문에 더 학교 보낼 뜻이 없다’고 늘 밝히니 주부라 적었구나 싶어요. 가시내 가운데에는 주부를 적는 아이가 있는데, 사내 가운데에는 주부를 적는 아이가 없습니다. 사내가 ‘장래 희망’이나 ‘장래 직업’으로 주부라 적으면 무슨 미친 짓이느냐며 꾸짖거나 두들겨팼습니다.


- “여보, 일 열심히 하고 와. 우리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니까, 내가 내던지고 온 커리어와 사회적 지위를 대신해 내 몫까지 열심히 하고 와!” (5쪽)
- “글쎄, 우리 남편이! 전업주부는 남자한테 기생해 사는 존재일 뿐이래요!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그렇게 따지면, 남편 분도 회사에 기생해 사는 것뿐이잖아요.” (18쪽)

 

 


  나는 국민학교 마친 지 스물다섯 해가 흘렀습니다. 고등학교 마친 지 열아홉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와 예전 일과 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내가 열두 해 다닌 학교에서는 나한테든 동무한테든 ‘집안일’ 하기를 가르친 적이 따로 없습니다. ‘집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아니, ‘집이란 어떤 곳인가’부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집은 어떻게 보살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집 바깥인 ‘사회’가 어떠한 곳이며,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가르치거나 이야기했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학교는 오직 시험공부와 시험성적만 따졌을 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나 넋이나 뜻이나 꿈은 하나도 안 건드리는 데라고 느껴요.


  회사원으로 일하는 분은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은 공공기관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회사는 회사원한테 어떻게 일삯을 줄 수 있을까요. 공공기관은 공무원한테 어떻게 일삯을 주고 연금을 줄 수 있을까요.


  회사가 없거나 공공기관이 없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회사가 있거나 공공기관이 있는 이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멋지거나 좋거나 훌륭할까요.


  운동선수나 연예인은 이 나라를 얼마나 빛내는가 궁금합니다. 예술가나 문학가는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궁금합니다. 교사나 학자는 이 나라를 얼마나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은 이 나라를 얼마나 살찌우는가 궁금합니다.

 

 


- “결혼을 결심한 건, 밖에서 잠깐 만나는 것만으로는 그에 대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전 그를 보고 늘 생각했어요. ‘왜 늘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걸까?’ 알고 보니 같은 옷을 몇 벌씩 갖고 있는 거더라고요.” (9쪽)
- “전업주부란 말씀이신가요? 그, 가사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 남성지에서 분류상 ‘일을 하지 않는 여성’이라 표기하며 남녀의 ‘협력’ 하에 만들어 가야 할 가정임에도 어째선지 남편만을 ‘가장’이라 부르고, 컴퓨터로 가계부를 쓸 정도로 하이테크 가전을 잘 사용하고 있지만, 무조건 기계치로 단정지을 뿐 아니라, 없어지면 바로 곤란해 하면서도 보통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도 낮은 바로 그, 전업주부라고요?” “응. 바로 그거.” (75쪽)


  오늘날 한국땅에는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이웃나라에도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낱낱이 살핀다면, 직업군인 숫자는 꽤 많습니다. 직업군인이란 ‘군인을 직업으로 삼는’ 셈인데, 군인이 하는 일이란 ‘사람 죽이기’입니다. 적으로 삼는 사람을 죽이는 짓을 갈고닦거나 배우는 데가 군대입니다. 곧, 적군이든 아군이든 사람을 죽여야 비로소 군인 노릇을 잘 하는 셈이요, 군인이 된 사람이라면 ‘사람을 잘 죽여’야 ‘좋은(?)’ 군인이라 할 만합니다.


  직업군인은 어떤 일을 할까요. 직업군인은 이 나라를 지킬까요. 직업군인은 평화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만한가요. 직업군인으로 일하면서 한 집안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이이 직업군인은 살붙이와 아이들을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어여삐 보살필 만한가요.


  회사원으로 일하는 어버이는 살붙이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과 믿음과 꿈을 들려줄까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버이는 살붙이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과 믿음과 꿈을 나눌 만할까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이어 회사원이 되면 좋은가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따라 공무원이 되거나 직업군인이 되면 좋은가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좇아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면 좋은가요.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야 좋은가요.

 

 


- “여보세요? 취급설명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 끝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주부라도 가능하다’란 말의 뜻은 뭔가요? 요즘 나온 가전은 취급상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간단히 조립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요?” (23쪽)
- “남편 혼자 (집에) 둬도 괜찮아?” “저녁 준비 해 놨으니까 데우기만 하면 돼.” “그, 그 뒤에 그릇은 어떻게 해?” “자기가 씻어 두는데?” “굉장하다! 세상에 그런 남자도 있구나.” “…….” (93쪽)


  마츠야마 하나코 님 만화책 《쇼코 씨 주부전업중!》(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회사에서 ‘부장’ 자리에 있던 아가씨가 ‘혼인을 한다’면서 부장 자리를 덜컥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됩니다. 부장이었던 쇼코 씨는 이제껏 전업주부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겪지 못했다면서, 새롭게 살아가고픈 꿈을 키웁니다. 마지못해 전업주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전업주부가 됩니다. 밥을 차리며 언제나 새롭게 손맛을 북돋웁니다. 집안을 가다듬고 돌보며 새롭게 살림을 빛냅니다. 다만,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대서 아이를 낳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랑 하나를 빼고는, 쇼코 씨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스스로 가장 즐겁게 걷습니다.


- ‘쇼코 씨를 지키고 싶다. 그런 일념으로 마코토는 복싱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 프로 라이센스 획득.’ “프로의 주먹은 흉기니까, 경기 외엔 사용하지 말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냥 같이 도망가 줘.” (88쪽)
- “아무튼 내가 가사일을 하지 않는 건, 아내를 외조하는 남자가 남자답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생물의 생명활동의 주된 임무는 번식이잖아요. 다시 말해, 아이가 있는 부부의 일은 육아가 훨씬 더 중요하고, 그걸 보조하기 위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닌가요?” “좋아. 그럼 내가 주부를 하겠어!” (114쪽)

 


  2010년대 한국땅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 아이를 둘 낳으면 돈을 더 주고, 아이를 셋이나 넷쯤 낳으면 ‘애국자’라는 이름표까지 붙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넋이나 아끼는 손길이 아닌, 아이를 돈으로 여기는 나라 정책입니다. 왜 갓난쟁이마다 돈셈을 해야 할까요. 왜 갓난쟁이를 돈으로 사고팔려 할까요.


  가만히 보면, 2010년대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웃나라에서 ‘색시’를 돈으로 사들입니다. 중국에서 색시를 사들이고, 베트남과 필리핀에서 색시를 사들입니다. ‘혼인해서 아이를 낳으려는 한국 여자’가 너무 적다며, ‘혼인해서 아이를 낳아 줄 여자’를 이웃나라에서 돈을 치러 사들입니다.


  사랑을 빛내며 혼인하는 삶이 차츰 시듭니다. 사랑을 빛내며 혼인하여 살다가 사랑을 꿈꾸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은 자꾸 멀어집니다.


  나라에서 ‘아이를 하나만 낳으라’고 외치기에 아이를 하나만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얼른 혼인해서 아이들 쑥쑥 낳으라’고 외치니까 아이를 여럿 쑥쑥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될 두 사람이 아름다이 사랑하면서 낳을 뿐입니다. 혼인은 가시내와 사내가 서로 곱게 사랑하면서 맺을 뿐입니다. 일이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스스로 가장 곱게 밝히면서 찾을 뿐입니다. 직업이란 돈만 버는 일거리가 아니라, 내 삶을 가장 예쁘게 누리면서 좋아할 만한 자리입니다.


  만화책 쇼코 씨는 즐겁게 전업주부가 됩니다. 스스로 전업주부가 되어, 전업주부란 어떻게 좋은가를 느낍니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나날은 어떠한 ‘살림꾼’ 노릇을 하면서 이녁 삶을 빛내는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 또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때, 나는 내 ‘장래 희망 설문조사’ 종이에는 다른 이름을 적어 넣었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가정주부’라는 말을 아로새겼습니다. ‘희망 직업’ 1순위나 2순위에는 다른 이름을 적어 넣었고, 3순위쯤에는 ‘살림꾼’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주부’라 적었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반듯하게 ‘살림꾼’이라고 적었습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집일을 도맡는 내 모습을 되새기니, 내 삶자리는 벌써 어린 나날부터 나 스스로 이렇게 가닥을 잡으며 이어왔구나 싶습니다. ‘가사노동’이나 ‘육아노동’이 아니라 ‘집살림 누리는 삶’입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 쇼코 씨 주부전업중! 1 (마츠야마 하나코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6.15./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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