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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새는 나무 자고 ㅣ 우리시 그림책 7
전래동요, 정순희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예쁜 삶 노래하는 하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6] 정순희·전래동요, 《새는 새는 나무 자고》(창비,2006)
내 국민학생 때를 떠올립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었기에 국민학교로 떠올립니다.
나는 국민학교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리 먼 길이 아니기도 했지만, 걸어서 다니고 싶었기에 걸어서 다녔습니다.
내 동네 동무들 가운데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서 다닌 아이는 없습니다. 동무들은 학교에서 집을 오가며 늘 버스를 탔습니다. 나 혼자 길을 걸었습니다. 동무들이랑 동네에서 놀기로 한 날, 나는 달리기를 합니다. 학교부터 집이 있는 동네까지 쉬잖고 달립니다. 땀을 비죽비죽 내며 달리는데, 동무들은 버스를 기다린다며 정류장에 선 동안 내가 먼저 동네에 닿기도 하고, 동무들이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며 달린 때에도,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면 내가 앞지르기도 하는 만큼, 내가 동무들보다 동네에 늦게 닿는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걸어서 동네로 돌아와도 늦지 않는데,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서 돌아가자고 하던 동무가 없었어요. 모두들 그냥저냥 버스를 탑니다. 모두들 버스삯 120원(편도 버스삯은 60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이무렵 라면 한 봉지가 100원이었고, 편지 한 통 우표값이 30원이었는데, 이런저런 돈값을 헤아리는 동무가 꽤 드물었습니다.
.. 자장자장 잘 자거라 .. (10쪽)
혼자 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고, 혼자 동네를 바라보며, 혼자 땅을 내려다봅니다. 내가 국민학생 때에 걷던 길은 도시 한복판인 터라, 풀이나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온통 아스팔트이고 온통 시멘트입니다. 빈터가 마땅히 없고, 흙땅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길에서 느낄 날씨나 철이 없습니다. 햇살이나 바람으로 느끼는 하루가 아니라, 달력으로 느끼는 하루입니다.
국민학교를 마친 지 스물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나는 시골마을에서 살아가고,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서 자라나는 삶입니다. 내가 어릴 적 걷던 길은 철이나 날씨를 알 수 없던 길이지만, 이제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은 철 따라 냄새와 빛깔과 무늬와 소리가 온통 다른 길입니다.
새벽 세 시부터 일어나서 움직입니다. 첫째 아이가 새벽 세 시에 쉬 마렵다며 아버지를 불렀기에 일어납니다. 이윽고 둘째 아이는 기저귀에 오줌을 푸지게 눕니다. 새벽에 일어난 김에 아이 오줌을 누이고 기저귀를 갑니다. 눈이 번쩍 뜨여 잠이 다시 오지 않으니 셈틀을 켜고 글을 씁니다.
지난날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가 새벽 서너 시, 또는 두어 시부터 일어나 지낸 지 얼마나 되었나 헤아립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신문배달을 하며 밥벌이를 했으니, 이무렵부터 새벽 일찍 하루를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고단하게 잠들며 쉴 두어 시가 나로서는 두 눈 번쩍 뜨고 말짱한 넋으로 일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부시시 잠을 깨기 앞서인 새벽 너덧 시 무렵이 내가 하루 일을 마치고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가 몸을 씻고 아침신문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 무렵입니다.
.. 새는 새는 나무 자고 .. (14쪽)
도시에서 신문배달 일을 하던 새벽 두어 시는 아주 조용합니다. 찻길을 오가는 자동차가 없으면, 도시는 그야말로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그렇다고 별이 흐르는 소리나 달이 구르는 소리를 듣지는 못해요. 참말 몽땅 잠들었다 싶은 한밤이요 깊은 새벽이에요.
네 식구 시골에서 살아가는 요즈음을 떠올립니다. 시골에서는 밤낮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낮에는 바람소리, 풀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여기에 이웃 할매 할배 일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밤에는 별소리, 도랑물 흐르는 소리, 개구리소리, 여기에 새소리와 나뭇잎 소리를 듣습니다. 나뭇잎 소리가 무언가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 텐데, 겨울을 난 잎사귀가 봄을 맞이해 톡톡 떨어져 가랑잎이 되어 마당에서 구르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앞뒤로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은 새벽 네 시 오십칠 분부터 들새와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 다섯 시 십 분 무렵에는 이웃 할배가 경운기 몰며 들일 하러 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 우리 아기 어디 자나 / 엄마 품에 잠을 자지 .. (32∼34쪽)
지난날 신문배달 일을 하며 먹고살던 때, 나는 새벽 두어 시에 자전거를 몰며 신문을 돌릴 때에 노래를 불렀습니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는 고요한 도시 한복판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슥슥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는 자동차 바퀴소리에 파묻히기 일쑤입니다. 전봇대에 걸친 전깃줄에서 내는 웅웅 소리보다 크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첫째 아이를 낳았을 무렵, 우리 식구는 날마다 전철 오가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창문을 꼭꼭 닫고 새로 덧창을 달아도 전철 소리는 무척 큽니다. 데시벨로 치면 100을 넘어갈 만한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립니다. 전철 소리 때문에 말소리도 주고받기 힘드니, 도시에서 아이들과 지낼 때에는 저녁에 잠들며 아이들한테 고즈넉히 자장노래 불러 주기 힘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살림은, 저녁을 맞이하여 아이들을 꿈나라로 보낼 때에 목청껏 자장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음대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마치고 나도 고단한 몸을 쉴라치면, 창호종이문을 거쳐 개구리소리와 새소리를 듣습니다. 벌레소리와 별소리와 달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와 풀소리를 들어요.
온통 노래예요. 온통 사랑이에요. 온통 즐거운 이야기예요.
..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몸소 보여주던 어머니들께 드립니다 .. (3쪽)
그림책 《새는 새는 나무 자고》(창비,2006)를 읽습니다. 정순희 님이 전래동요에 맞추어 그림을 넣은 그림책을 읽습니다. 새는 새는 참말 나무에 둥지를 마련해 잠을 잡니다. 이 가운데 제비는 처마에 둥지를 마련해 잠을 잡니다. 들쥐도 다람쥐도 저희 보금자리에서 잠을 잡니다. 메뚜기도 사마귀도 저희 보금자리에서 잠을 잘 테지요. 개구리도 뱀도 저희 보금자리에서 잠을 잘 테고요.
고요한 저녁나절,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과 어버이들은 풀과 바람과 해와 달과 물과 흙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서로서로 고운 벗이 되어 한삶을 누렸습니다.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논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짓고 아기를 업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따로 텔레비전이 없더라도 노래를 부릅니다. 애써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노래를 부릅니다.
좋은 삶이기에 좋은 노래를 부릅니다. 좋지만 고단한 삶이라 좋지만 고단한 노래를 부릅니다. 좋으면서 기쁜 삶이기에 좋으면서 기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에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노래에 실리는 이야기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모든 꿈이자 사랑입니다. 꿈은 맑은 빛깔이곤 합니다. 사랑은 지친 땀방울이곤 합니다. 꿈은 푸른 들판이곤 합니다. 사랑은 너른 바다이곤 합니다.
들길을 거닐면 저절로 노래가 샘솟습니다. 텃밭에서 일하면 저절로 노래가 솟구칩니다. 아이들과 복닥이고 옆지기와 부대끼며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귀에 걸거치는 소리가 없기에 노래를 부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으니 마음껏 노래합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사랑을 노래합니다. 꿈을 노래합니다. 아이들이랑 오순도순 놀며 노래합니다. 한 아이는 무릎에 누이다가 가슴에 얹어 재우고, 한 아이는 팔베개를 하며 재우며 노래합니다. 고단하지만 즐겁고 기쁜 하루를 노래합니다. 예쁜 아이처럼 예쁜 어버이 삶을 누리는 하루를 노래합니다. (4345.5.18.쇠.ㅎㄲㅅㄱ)
― 새는 새는 나무 자고 (정순희 그림,전래동요,창비 펴냄,2006.5.30./9500원)